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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식_마을이 있는 문경시]장승백이마을에서 토불(土佛)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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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있는 풍경
장승백이마을에서 토불(土佛)을 만나다.
글 정창식, 사진 김우용
장승백이를 찾았다. 장승백이는 행정상으로 문경시 점촌4동 공평4리에 있는 마을이다. 문경시내에서 이 마을로 가는 길은 두 가지이다. 점촌4동행정복지센터에서 약 2킬로 지점 도로 위 장승(長丞)이 있는 마을 입구의 좌측 길과 같은 동 진곡(辰谷)마을에서 우측 고갯길 너머로 가는 길이다.
장승백이는 장승배기라고도 부르는데 장승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일설에 의하면, 이 마을에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고 전사한 장군의 비석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 마을 입구 도로에 세워진 장승은 1999년도에 세운 것이다.
도로에서 바라본 마을은 낮은 구릉 아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아담한 모습이다. 가을의 볕들이 졸음을 재촉하고 있는 듯 남향을 향한 마을은 유독 한적한 평화로움이 묻어났다.
이 마을에 불상을 흙으로 빚고 새기는 황토탱화가 토불(土佛) 류종상 작가의 작업실과 차실이 있다. 그를 만나고 싶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5월이었다. 우리지역 유일의 사설 미술관 문화공감 소창다명(관장 현한근)에서 네 번째 초대전을 기획하던 중이었다. 작가는 목공예가 예림 박동수와 백두요의 김경수 도예가와 함께하는 콜라보 전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그와 그의 작품을 대면하였었다. 당시에 느낀 것은 작가와 작품이 서로 닮아 있다는 동질감이었다. 작가의 순박한 웃음과 꾸밈없는 말본새에서 우리가 황토에서 가지는 편안한 기시감(旣視感)이 느껴졌었다.
어린왕자 선정에 들다
그때 그의 작품 중에 황토로 만든 ‘어린왕자’가 눈에 띄었다. 어린왕자가 사막의 여우를 껴안고 서 있거나 반가사유상처럼 턱을 괴고 생각하고 있거나 앉아서 선정(禪靜)에 든 모습들이었다. 불가(佛家)에서는 어린왕자를 구도를 위해 선지식을 찾아가는 화엄경의 선재동자에 비유한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수십 년 내공의 불상조각가임에도 그는 맑은 얼굴과 선한 표정을 지닌 어린왕자와도 닮아 있었던 것이다.
“제가 황토를 사용하는 이유는 포근하면서 안온한 느낌이 좋아서예요.”
대전시 무형문화제 제6호 불상조각장 이수자 류종상
차실에서 그가 웃으며 하는 말이었다. 그랬다. 그는 처음부터 황토로 불상을 조각하지 않았다. 여느 불상조각가처럼 그도 구리와 동을 소재로 불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십 여 년을 대전시 무형문화재 불상조각장의 이수자로서 성실하게 자리를 지켰다. 그러면서 늘 황토를 떠올렸다. 고향의 품 같은 흙으로 불상을 만들고 싶었다. 어느 한여름, 성장(盛粧)한 나무가 가을이 되어 잎을 떼어내듯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된 그 자리를 미련 없이 뛰쳐나왔다. 그리고 그토록 원했던 토불(土佛)을 만들 곳을 찾았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배산임수와 같은 남향 마을 장승백이, 지금의 집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수월관음
차실을 둘러보았다. 벽에는 그가 밑그림을 직접 그려 뼈대를 만들고 황토를 붙여 대나무 끌로 세밀하게 하나하나 새긴 불상의 부조(浮彫)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수월관음도,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스님, 어린왕자 등이었다. 그 가운데 수월관음도에 눈이 갔다. 달빛이 내리는 물가에서 머리에 아름다운 보관을 쓴 관세음보살이 오른발을 왼 무릎에 올리고 선재동자를 바라보는 수월관음도는 고려불화의 정수이다. 정교하고 세밀한 기법과 풍부한 색감이 깃든 이 작품을 그는 황토로만 재현해낸 것이다. 보관(寶冠)의 작은 구슬 하나하나, 관세음보살의 머리털 한 올, 가녀린 옷의 세밀한 주름도 놓치지 않고 표현해낸 그는 이 작품만을 위해 4~5개월 동안 하루 8시간 이상씩 정성을 다했다고 한다. 소창다명 전시에서 관람객들의 감탄을 이끈 전시작들 중 가장 주목을 받은 작품이기도하다.
이처럼 그가 황토로 만든 작품에서는 토속적이면서 생래적인 고향 같은 안온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어쩌면,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 삶의 궤적을 불교적 심미안으로 표현하는데 황토만한 소재도 없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새로 짓는 사찰 등에서 그의 작품을 적지 않게 찾고 있다고 한다. 지금 그의 작품들은 오대산 월정사와 속리산 법주사, 희양산 봉암사 등 유명 사찰에 불상과 황토탱화로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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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탱화
“전시회를 하면서 불교신자가 아닌 이들도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도록 불상 외에 작품의 소재를 다양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황토조각의 대중화를 위해 불상 등 불교 관련 외의 작품도 구상 중에 있다고 한다.
“집 뒤의 산이 큰 바위로 연결되어 있는 데 집 뒤에서 멈췄어요. 그리고 도로 아래 밭에 옛 사람들이 사용했던 우물이 있어요. 사람들이 좋은 곳에 잘 마련했다고 해요.”
아마도 수십 여 년을 준비한 그에게 인연이 있는 곳에서 인연 닿는 사람을 부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장승백이 마을은 조선시대 찰방(察訪)이 있었던 유곡역(幽谷驛)마을과 가깝다. 그래서 영남대로였던 마을 앞길의 장승은 의미가 더 특별할듯하다. 관인(官人)들과 과거응시자들을 위해 길의 안녕과 여행자의 안전을 기원하는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살펴보면, 장승과 불상은 어느 면에서 맥이 닿아있다. 그것은 기원(祈願)이면서 기도(祈禱)가 바탕이 되는 신앙의 상징이다. 이제, 장승백이 마을에 황토로 불상과 탱화를 만드는 작가가 있음을 알았다. 선재동자와 같은 어린왕자의 모습으로 구도의 열정을 흙에 새기는 그가 이곳 장승백이 마을에서 불상을 빚고 있다.
그의 성취가 장승처럼 우뚝하기를 기대해본다.
따뜻한 가을볕이 어느 새 서산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어린왕자
- 글쓴이 : 정창식
- ▪ 현 문경문화원 이사 ▪ 안동대학교 문화산업전문대학원에서 스토리텔링을 전공하였다. [주간문경]에 문경문화와 관련된 글을 연재하고 있다. 문경의 자연과 마을, 유적과 문화재 그리고 오래된 이야기들을 새롭게 봄으로써 문경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싶어한다. ▪ 저서 수필집 "아름다운 선물 101" (2010) 에세이집 『아름다운 선물 101』 은 우리 인생에서 있어서 스치는 인연들과의 소중한 관계, 베풂의 마음 등 일상에서 느낀 감정들을 엮은 책이다. 수필집 "문경도처유상수" (2016) 주간문경에 2010년부터 연재하고 있는 문경문화와 관련된 글 중 57편을 선별해 책으로 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