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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라인_마을이 있는 풍경]왕실 자녀의 수복(壽福) 염원이 담긴 예천지역 `태실(胎室)`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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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자녀의 수복(壽福) 염원이 담긴 예천지역 `태실(胎室)` [Ⅱ]
글. 황지해(국립무형유산원 학예연구관)
‘왕실 자녀의 수복(壽福) 염원이 담긴 태실’은 태를 소중히 여겼던 전통시대의 생명 사상과 풍수관념이 담겨 있다. 나아가 궁중과 지방의 상호연계를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 태실이다. 지난 호에 이어 역사적·사료적·예술적·공간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으로서 예천태실을 통해 고려와 조선왕조 왕실의 독특한 장태문화와 지역사적 의의를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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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조(사도세자) 태봉도 | 국보 제177호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 |
또 하나의 축제, 안태(安胎)행렬
왕실 자녀의 태를 봉안할 태봉이 결정되면, 의례를 담당할 정2품 이상의 고위관료 가운데 안태사(安胎使)를 임명한다. 안태사는 안태의례의 책임을 지고, 산실에 보관되었던 태항아리를 받들어 내오는 의식을 행한 후, 도성을 떠나 지방에 위치한 장태지로 향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여러 군현을 통과하기 마련이다.
조선후기에는 중앙에서 파송되는 관원으로 안태사, 종사관(從事官), 서표관(書標官), 감역관(監役官), 배태관(陪胎官), 주시관(奏時官)을 각 1명씩 선정하여 태실조성 과정을 감독하게 하였다. 이 중에서 특히 주목할 역할은 감역관이다. 감역관을 중앙에서 파견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태실을 조성할 지역의 지방관에게 맡겼다. 이것은 태실이 왕실뿐 아니라 조성되는 지역에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말해준다.
왕실 자녀들의 태를 모셔서 도성을 떠나는 안태사 일행의 이동경로가 정해지면 경로에 속하는 도로와 교량은 해당 도에 명하여 새롭게 닦여진다. 도로 치수와 배행의 규모는 왕자녀의 출생순서, 남녀, 적서의 차이를 두지 않고 구성했다. 다만, 태어난 왕자녀의 왕위계승여부에 따라 배행인원을 정했다.
각 도의 도사(都事)들이 배행(陪行)하도록 하여 도의 경계에서 마중하고, 다음 도 경계에서 교체하였다. 안태행렬이 실록 봉행 때 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왕실의 경사를 축하하는 행렬이 너무 소략해서도 안 되어 그에 걸맞게 배행하도록 한 것이다.
태를 받들고 가는 안태행렬이 궁궐 대문을 나와 여러 고을을 지날 때, 각 고을에서는 *채붕(彩棚)을 세우고, 여러 가지 놀이를 베풀며 군용을 갖추어 맞이하였다. 안태행렬에는 지방 관료들뿐만 아니라 왕실의 경사를 축하하는 일반 백성들도 참여하였다. 지방민들의 입장에서 안태행렬은 보기 드문 왕실 경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즐거운 축제의 장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안태행렬을 통해 궁극적으로 왕실의 번영을 과시하고, 왕실의 영향력을 지역사회에 미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한편 세종실록에 따르면, 안태행렬이 지나가는 도로변에 사는 백성들이 자연스럽게 이 행렬에 참여해 바빠지면서 농사를 짓지 못하는 폐단이 발생하니 이를 염려한 세종이 군용(軍容)의 위의(威儀)를 갖추지 못하도록 명하기도 하였다.
* 채붕(彩棚) : 나무로 단을 만들고 오색 비단 장막을 덮은 일종의 가설 누각 형태의 장식무대
장조태실비 탁본
태실조성을 위한 예천 지역사회의 참여
안태행렬이 정해진 태봉에 도착하면 태를 안치할 태실을 만드는 공사를 시작하기 전과 태실을 완성한 후에 각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태실에 안치하고 나서는 태신에게도 따로 제사를 지낸다. 이 과정에 태실이 위치한 해당지역의 지방관과 지역유생들이 함께 격식을 갖춰 집사와 제관으로 직접 의례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하나의 태실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규모의 물질적 비용과 많은 사람들의 노동력과 시간을 필요로 했다. 왕실의 대규모 역사(役事) 중 하나인 셈이다. 이에 태실조성에 소요되는 다양한 잡물들을 태실이 조성될 해당 도에서 각 지방에 분배하여 소홀함이 없이 준비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었다.
1783년(정조 7) 문효세자의 태실을 예천에 조성할 때에도 많은 인력과 물력이 뒷받침되었다. 예천에서는 역군 150명, 태봉소의 수직을 설 정군 30명, 태봉직 2명, 석수 2명, 야장 1명, 등록서사인 1명 등이 차출되었다. 감역관의 지공을 1일 제공하기도 했다. 물품으로 들기름 5되, 초둔 7장, 감탕, 붓 1자루, 빈가마니 200닢, 생칡, 교의 3좌, 숯 10섬을 준비하였다. 뿐만 아니라 안동, 개령, 용궁, 상주, 군위, 문경, 의성, 풍기, 금산, 순흥, 밀양, 동래, 청송, 영양, 진보, 영천, 경주, 봉화 등에서 삽과 종이 등 다양한 물품들을 제공하였다.
이와 같이 왕실의 태실을 조성하는 데에는 태봉이 위치한 해당 지역은 물론이고 그 주변 지역의 다양한 계층에 속한 지역민들이 직접적으로 참여하였다. 또한 태봉이 위치한 주변 지역은 태실을 조성하는데 사용되는 물품을 만들어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태실을 조성하는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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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대왕 태실 (사진. 예천문화원 제공)
태실을 매개로 한 예천지역의 위상 강화
일반적으로 태주가 왕으로 책봉되면 태실이 조성된 지역은 읍호가 승격되고, 승격된 행정단위의 격에 따라 지방관의 품계가 높아지는 등 고을의 위상이 높아지게 된다. 지역사회에 대한 왕실의 대규모 지원도 이루어지므로 지역사회에서 태실조성은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예천지역의 경우, 고려 강종의 태를 용문사에 안치함에 따라 안동부의 속현(屬縣)이었던 보주(예천)에 현령관을 파견하여 주현(主縣)으로 승격되었고, 기양(基陽)이라 하였다. 태실 봉안 후인 1173년에는 용문사에서 삼만승재를 열고 윤장대 2좌와 전각을 마련하였는데, 이러한 사실은 고려왕실의 대규모 지원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또한 조선 문종이 즉위한 1450년에는 그의 태가 안치된 은풍현(殷豐縣:지금의 예천)은 기천현을 합하여 풍기군(豐基郡)으로 승격되었다. 문종의 태가 안치된 명봉사는 문종대왕의 태실 봉안 후 재건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왕의 태실 안치는 해당고을 목민관의 품계가 상향되는 등 행정력이 강화되는 계기가 되며, 태실수호사찰은 대규모 지원이 이루어졌다. 태실공사를 주관하거나 참여한 이들에게도 승진과 포상이 주어졌다. 이렇듯 태실조성은 고을의 위상을 드높이고 왕실과의 연대를 통해 지역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반면 고을 수령에게는 태실의 보전과 관리의 책무가 부여되었다. 문종의 태실은 가봉이전부터 수호군을 두어 관리되었으며, 정조는 왕위등극과 함께 아버지 경모궁(사도세자) 태실을 가봉하여 수호군을 더하고 금표의 거리를 300보로 규정하는 등 왕의 격식으로 관리하게끔 하였다. 정조는 아버지 경모궁 가봉태실 공사를 수행한 관리들에게 품계를 올려주는 등의 상을 주었고, 경모궁이 손자의 태실을 통해 감응할 수 있도록 5㎞ 정도 떨어진 용문사에 문효세자의 태실을 조성했다. 한편 현종은 울산부사 남천택(南天澤)이 문종의 태실 구역 안에 전장(田莊)을 설치한 사실이 발각되어 파직시켰다. 이처럼 태실의 공사와 보존관리는 조정의 중요한 관심대상이었고, 이로 인해 태실은 관리들에게 신상필벌(信賞必罰)의 막중한 책임이 부여되는 중요한 시설물로 관리되었다.
이처럼 예천지역에 자리한 6곳의 태실〔고려 강종대왕(康宗大王, 1152년) 태실, 조선의 문종대왕(文宗大王, 1414), 폐비윤씨(廢妃尹氏, 1455), 장조대왕(莊祖大王: 사도세자, 1735) 문효세자(文孝世子, 1782), 오미봉(五美峰) 무명(無名)〕은 고려와 조선왕실의 자녀와 국운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왕실과 연대를 통한 예천지역의 위상을 보여주는 지역사적 의의가 돋보이는 문화유산이다.
백자 태항아리, 보물 제1055호
- 글쓴이 : 컬처라인
- 경상북도 북부권 11개 시군의 문화예술 관련 정보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