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김범선_이야기가 있는 문화탐방]신사리 동학군 이제발(李堤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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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있는 풍경
신사리 동학군 이제발(李堤潑)
글 김범선
“대접주님, 군량미가 삼일 치 밖에 없습니다.”
“그래, 큰일이군. 그렇다면, 이젠 더 미룰 수도 없겠군.”
“달포만 더 버텨도 병력이 많이 모일 텐데...”
동학 접주 마장달이 이제발 대접주에게 간청을 했다. 마장달은 신사리에서 한 달만 더 버티면 병력 10명을 더 모을 수가 있다고 했다. 고종 4년은 극심한 가뭄으로 흉년이 들었다. 장정들은 흉년이 들어 밥만 먹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왔다. 대접주는 전국에서 모여든 동학교도들과 청년들을 모아 동학군을 조직하였다. 10명을 1개조로 하며 그 수장을 조장이라고 불렀다. 조장들은 매일 조직원들과 칼과 활, 그리고 병장기로 무장을 하고 군사훈련을 했다.
“에헤이, 찌르고 막고 베고. 그렇게 해야제.”
이제발은 손수 장검을 빼들고 시범을 보이며 훈련을 독려하였다. 동학군들의 훈련장소인 신사리는 봉화산과 반변천 강물을 끼고 있어 외부인이 쉽게 접근 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 오지에서 2개조의 동학군들이 훈련을 받고 있으니 군량이 문제였다. 장정 20명이 먹어치우는 식량은 하루에도 엄청났다.
재작년 봄에 고향 신사리에 돌아온 마장달은 동학(東學)이라고 부르는 이상한 종교를 포교하였다. 그는 포(包)라고 부르는 곳을 세우고는 대접주라는 남자를 극진히 섬기며 그와 함께 동학 21자 주문을 외우면 혼란에 빠진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사람들을 설득했다.
입암면 신사리(新泗里)는 영양군 남면에 속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신촌(新村)과 사천(泗川)의 이름을 따서 신사리로 개칭하였다. 신사리는 반변천을 접하고 있어 강물을 따라 모인 웃사래와 중간사래, 아랫사래 3개의 마을이 신사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마장달은 고향에 돌아오자 어디서 돈이 생겼는지 소와 수레를 샀다. 그리고 인근 지역을 다니며 식량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당시 조선은 탐관오리의 행패와 과중한 세금, 그리고 강제수탈로 농민들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외세의 침략으로 조선은 위기가 가중되어 농민들의 저항과 사회의식이 급속도로 변하여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사회였다.
이제발은 경주 사람 최제우(崔濟遇)가 철종11년(1860년)에 서양종교(천주교)인 서학(西學)에 반대하여 민족 고유의 유불선(儒佛仙)사상의 장점을 융합하여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의 교리를 중심으로 동학(東學)이라는 신흥종교를 창시하자 그의 수하가 되었다. 동학은 처음에는 서학에 대항하여 세운 신흥종교였으나 당시 외우내환의 사회현상에 대항한 삼남의 농민저항 운동으로 점점 확대 되었으며 조선의 계급사회를 개혁하는 동학농민혁명으로 퍼져나갔다.
수비면 수하리 가난한 선비 출신 이제발은 최재우의 최측근으로 전국 동학의 포(지부)를 관리하는 대접주의 자리에 있었다. 1864년(고종1년) 최제우는 사도난정(邪道亂正)의 죄목으로 처형을 당하자 이제발은 당시 마장달이 포의 접주로 있는 입암면 신사리로 도망을 쳤다. 그곳에서 이제발은 접주 마장달과 동학교도들의 남은 무리들을 불러 모아 동학군의 군영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제발은 최제우 수하에서 훈련이 안된 농민들의 집단이 무기력하게 관군들에게 당하는 모습을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교주님의 억울한 죽음을 그냥 둘 수가 없네. 그놈이 교주님을 죽였어, 원수를 갚아야지.”
이제발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비분강개 하여 소리쳤다.
“그럼요, 그놈은 그냥 둘 수가 없지요.”
접주 마장달이 분개하여 눈물을 흘렸다.
“방가 놈이 아직 거기 있제?”
“그럼요, 수시로 사람을 보내 염탐을 하고 있습죠.”
“방가 놈은 영해에서 뭘 하노?”
“그놈은 교주님을 밀고하여 죽이고 영해부로 도망을 쳐 관아의 종노릇을 하며 숨어살아요, 형제들이 그 놈을 감시하고 있습죠. 문제는 동학군이 영해까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어떻게 가느냐죠.”
“형제들은 보부상 차림으로 조 단위로 인적이 드믄 창수령을 넘도록 하세. 그리고 낮에 그곳에서 은신하다 깊은 밤에 그놈을 공격하도록.”
“대접주님,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제발이 접주 마장달에게 군령을 하달했다.
이재발이 영해부(寧海府)를 공격하기로 한 것은 동학의 교주인 최제우를 밀고하여 처형당하게 한, 밀고자 방세욱이 영해부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접주 이제발은 고종4년 동짓달 열 닷샛날 밤에 수하들과 함께 동학 교주 최제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영해부를 공격했다.
“샅샅이 뒤져 방세욱을 찾아라.”
동학군들은 영해부의 관아를 장악하고 방세욱을 찾아서 체포했다.
“이놈! 네 죄를 알렸다. 교주님을 밀고해 돌아가시게 한 배신자 이놈! 그러고도 네 놈의 목이 붙어 있을 줄 알았더냐?”
어둠속에서 횃불을 손에 든 동학군들이 살기등등하여 방세욱을 끌고 나오자 이제발이 추상같이 문초하였다.
“대접주님, 잘못 했습니다. 살려주세요, 제발!”
방세욱은 머리를 조아리며 살려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이제발은 “저놈을 참수하라!”하고 군령을 내렸다.
이제발이 지휘하는 동학군들은 방세욱을 죽이고 영해부를 완전히 장악하였다. 그러나 동학군 이제발은 인근지역의 관군들과 영해현의 현감 이복우(李福愚)가 지휘하는 많은 관군과의 전투에서 패해 비참하게 죽고 말았다.
수비면 사람인 이제발은 조선 후기의 격동기에 서학에 대항하여 설립한 동학 지도자의 일원이었다. 그는 외세의 침입에 저항한 민족자존의 혁명가로 영양군 입암면 신사리를 근거지로 활동한 이야기 속에 숨은 인물이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바탕에는 이런 인물들의 뜨거운 이야기가 녹아 있다. 이제발과 같은 인물들이 자신을 바쳐 만들어낸 작은 등불들이 하나씩 모여 동학농민혁명이라는 큰 횃불을 만들어냈다. 외세에 휘둘리거나 꺾이지 않고, 평범한 백성의 바람을 근본으로 삼아 오래 이어져 온 사회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보고자 진격했던 사람들.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은 어디쯤 도착해 있을까?
올해는 무겁고 혹독하며 조급한 겨울을 맞았다. 영양의 겨울은 가장 이르게 와 가장 늦게 떠난다. 추위에 기댈 것은 날이 찰수록 선명해지는 별빛의 온기뿐인데 그마저도 함께 볼 수 없으니, 영양의 숨은 영웅들을 꿰어보는 것으로 희망을 건네 본다. 부디 주고받는 희망이 그치지 않아서 봄날 입암의 은하수 아래에서는 손깍지를 낀 우리를 만나게 되길 바란다.
- 글쓴이 : 김범선
- 김범선(소설가) 경북고등학교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한국문인협회문단윤리위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회원 한국소설가협회중앙위원 작품 눈꽃열차, 비창1,2권. 황금지붕, 개미허리의 추억(상, 하권), 킬러밸리. 노루잠에 개꿈, 당콩밭에 여우들, 영혼중개사, 협곡열차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