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정창식_마을이 있는 문경시]홍귀달선생과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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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있는 풍경
홍귀달선생과 신도비
글. 정창식 사진. 김정미
❘홍귀달 선생 신도비
• 신도비(神道脾)
영순면을 지나 풍양방면 923번 지방도로을 따라가면 오른편에 율곡마을이 위치해 있다. 그리고 왼편 언덕에는 조선시대 재상을 지낸 허백당 홍귀달(虛白堂 洪貴達 1438~1504)의 신도비와 묘가 있다. 신도비는 누각 안에 보호되어 있는데,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22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 신도비는 묘의 남동쪽에 자리하는데, 이곳을 찾은 교수님들이 그 위치가 정확하다고 합니다.”
언젠가 이곳을 찾았던 부림홍씨 문광공파 화수회 홍경진 사무국장이 비각(碑閣)안에 있는 비석의 귀부와 이수를 바라보며 한 말이었다. 신도비는 임금이나 종이품 이상 고관의 무덤 앞이나 근처 길목에 세워, 죽은 사람의 업적을 기린다. 이 비는 중종30년(1535년)에 세워졌다. 글은 대제학이었던 남곤이 짓고 글씨는 아들 홍언국이 썼다.
묘에 배례하고 내려왔다. 신도비 아래에는 사람들이 눈길도 주지 않을 작은 묘가 하나 있다. 그때, 홍국장은 신도비 아래에 있는 이 묘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홍귀달 선생 묘를 바라보고 있는 마부의 묘
• 홍귀달과 마부의 묘
“여기 작은 묘가 있어요. 허백당 할배께서 돌아가실 때 마지막을 지켜본 마부의 무덤이라고 합니다.”
허백당은 무오사화 때 연산군에게 잘못된 폐단을 간하는 상소를 올려 좌천을 당하였고, 이후 손녀를 궁중으로 들이라는 임금의 명을 거역하여 장형(杖刑)을 받고 경원으로 유배를 가는 길에 단천에 이르러 죽임을 당하였다.
그때 노복 두 명과 마부가 그의 곁을 지켰다고 한다. 훗날 마부가 죽자 이곳에 그의 무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세월의 풍화 탓인지, 처음부터 그랬는지 묘는 엎드리듯 낮았다. 마치 죽어서도 상전을 모시는 노복(奴僕)의 모습처럼 단출하였다. 옛 일이라서 자세히 알 수는 없겠지만 그의 묘를 이곳에 쓴 데는 사연이 있을 듯하다.
상하의 신분관계가 엄격한 때에, 평소 그들의 모습이 후세에 귀감이 되었을 수도 있겠고, 허백당을 향한 마부의 존경하는 마음이 사무쳤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자신을 이곳에 묻어달라고 간곡히 청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찌하였던 이 자리는, 그 시대의 윤리적 관점에서는 일반화를 넘은 가장 이상적인 전범(典範)의 결과임은 분명한 듯하다.
그러나 이 마부의 묘에서 우리가 엿볼 수 있는 것은 허백당이다.
그는 문장에 뛰어나고 글씨에 능했으며 성격이 강직하여 부정한 권력에 굴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혹자는 그를 문경을 대표하는 고집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기도 한다. 그가 연산군의 폭정에 목숨을 걸고 올린 상소는 상소문의 백미로 평가받는다. 우복(愚伏) 정경세는 그의 문집에서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형틀을 마치 편안한 수레처럼 생각하는 기상이 우리 눈앞에 보인다'라고 찬(讚)하였다. 결국 의(義)가 아니면 하지 않겠다는, 의(義)를 위해서는 목숨을 초개(草芥)처럼 여긴 고집이었다.
❘묘에서 바라본 신도비와 율곡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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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귀달 선생과 부인 묘 전경 ❘신도비와 홍귀달 선생 묘 전경
• 홍언충
그의 이러한 재능과 성품은 아들들에게도 이어졌다. 산북면 근암서원에 봉안된 홍언충을 비롯한 여러 아들들이 과거에 급제하여 이름을 알렸는데, 그들도 왕에게 간언(諫言)을 하는 등 누구 못지않은 충절을 실천하였다.
그 가운데 홍언충은 홍귀달 못지않은 절개와 소신을 지녔다. 호는 우암(寓菴)이며 문장이 뛰어났고 이조좌랑을 지냈다. 어쩌면 그는 아버지를 넘어서는 또 다른 고집의 전범(典範)을 보여주었다. 연산군 10년 갑자사화로 모진 고문을 당하고 유배길에 올라, 문경새재에서 쉬던 중 중종반정의 소식을 들었다. 그때 그는 엎드려 몹시 슬피 울었다고 한다. 그것은 새로운 임금 중종에게 감사하는 울음이 아니라, 자신을 죽이려고 한 연산군을 위한 슬픈 울음이었다는 것이다.
언론인이이자 조선일보 칼럼리스트였던 이규태는 그의 칼럼에서 홍언충의 울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자기 자신의 인간적, 육체적인 것은 극소화하고, 의(義)나 절(節)이나 정신적 가치를 극대화한 데서 생겨난 위대한 정신의 개선문을 역사에 세워놓은 것이다.’
영순면 의곡마을에 그를 추모하는 청산재(靑山齋)가 있다. 오래되어 고졸(古拙)하나, 그의 성품에 맞는 듯 단출하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83호로 지정되었다. 청산(靑山)을 뒤로하고 낙동강을 굽어보는 자리에 있다.
❘묘 앞을 지키는 문인석
• 문경의 양반, 참 선비
“우리 문경은 인물이 없어. 양반, 양반하는데 문경에 양반이 어디 있노.”
언제인가 누군가 한 말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조선시대 오백년을 거쳐 오면서 근현대에 이르기 까지 우리 문경 사람들이 흠모하고 자랑스러워 할 훌륭한 인물이 이 고장에 없다는 선언은 사뭇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그때 동로 큰마을에서 동네터 농원을 운영하는 김규천 형이 이렇게 말하였다.
“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트렌드는 두 가지야. 하나는 영남과 한양을 잇는 ‘길’이고 또 하나는 ‘고집’이라. 그 고집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지 않는 소신을 말하는데 홍귀달이라는 분이 그 대표지
”
그렇다. 한낱 마부도 죽으면서 그 곁에 있고자 했던 홍귀달과 죽음을 초개같이 여기며 절의를 위해 자만사(自挽辭)를 남기고 유배를 떠났던 홍언충은 우리 문경의 참 양반이며, 참 선비이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 앞에 당당한, 그래서 어쩌면 고집쟁이라는 말을 듣기도 하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그런 어른들이 곁에 없는 것이 아쉽다.
마부의 묘에 고개를 숙이고 길을 나섰다.
- ※ 경상북도 문화원연합회에서 홍귀달선생을 ‘경상북도 역사인물 학술발표 대상자’로 선정하여 2018년 9월경 문경시 문희아트홀에서 위 학술발표대회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 글쓴이 : 정창식
- ▪ 현 문경문화원 이사 ▪ 안동대학교 문화산업전문대학원에서 스토리텔링을 전공하였다. [주간문경]에 문경문화와 관련된 글을 연재하고 있다. 문경의 자연과 마을, 유적과 문화재 그리고 오래된 이야기들을 새롭게 봄으로써 문경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싶어한다. ▪ 저서 수필집 "아름다운 선물 101" (2010) 에세이집 『아름다운 선물 101』 은 우리 인생에서 있어서 스치는 인연들과의 소중한 관계, 베풂의 마음 등 일상에서 느낀 감정들을 엮은 책이다. 수필집 "문경도처유상수" (2016) 주간문경에 2010년부터 연재하고 있는 문경문화와 관련된 글 중 57편을 선별해 책으로 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