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김범선_이야기가 있는 문화탐방]삼지(三池)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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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있는 풍경
삼지(三池)연못
글. 김범선
사진. 김진수
신라시대 영양군은 고은현(古隱縣)이었다. 지금의 현리(縣里)에 영양현(英陽縣)의 관아(官衙)가 있었다. 관아의 강 건너편의 농지는 현(縣) 소재지의 식량을 공급하는 경작지였다. 그래서 양평(良坪)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고려 공민왕 7년 동쪽의 왜구들이 영해로 들어와 창수재를 넘어 영양현 관아를 습격하여 불태우고 노략질하였다. 지금 현리의 넓은 들판과 전답은 당시에는 영양현 관아와 수천호의 민가와 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현(縣)의 중심지였다. 그렇게 큰 현의 관아와 민가는 왜구들의 무자비한 방화와 분탕질로 영양현의 관아는 없어지고 폐현(廢縣)이 되었다. 지금도 현리의 논에서는 당시의 기와장이나 사기그릇 조각들이 나오고 있을 것이다.
창수재를 넘어온 왜구들이 현의 관아를 불태우고 소재지의 민가를 습격하여 노략질을 하던 때였다. 영양현의 청년들은 관아의 군사들과 힘을 합쳐 왜구들과 싸우고 있었다. 삼지리(三池里)에 살고 있는 상수도령은 키가 구척에 평소 무예가 출중하여 영양현에서는 잘 알려진 장수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전쟁놀이를 좋아했다. 그런데 상수는 전쟁놀이를 하는 방법이 남달랐다. 단순히 작대기로 칼싸움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매복을 하거나 기습을 하는 작전을 새워 놀이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읍내 사람들은 상수를 동산(東山)장군이라고 불렀다. 동산장군이라고 부른 까닭은 상수의 집 건너편의 산이 동산(東山)이었는데 그가 밤마다 동산에 올라가 무술을 연마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왜구들의 침략을 보고만 있었겠는가? 그는 읍내 청년들과 병장기를 들고 왜구들과 싸움을 벌였다. 그는 관아를 차지하고 현의 소재지를 노략질하는 왜구들을 매복과 기습으로 공격하였고, 수세에 몰린 왜구들이 창수재로 도망을 쳤다. 쫓고 쫓기는 싸움이 계속되던 어느 날 밤, 무창에서 매복으로 왜구들의 잔당을 소탕할 생각이었던 그가 잠시 틈을 내 연인을 만났다. 밤의 어둠 속에서 두 연인의 목소리는 간절했다. 연못가에 휘영청 늘어진 능수 버드나무만이 두 연인의 속삭이는 밀어를 들을 수 있었다.
“연화낭자, 왜구들을 물리치면 우리 결혼 합시다.”
상수도령은 연화낭자의 두 손을 꼭 잡으며 혼례를 올리자고 했다. 연화낭자는 탑밑마을에 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삼지리에 살고 있던 이웃사촌이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둘의 감정은 사랑으로 자라났다.
행정구역상 삼지(三池)연못은 경북 영양군 영양읍 삼지리에 있는 3개의 연못을 말한다. 삼지(三池)는 간지, 연지, 항지 3개의 연못이다. 이 3개의 연못은 삼지와 국개, 현리의 넓은 논에 물을 공급하는 농업용수이다. 원래는 일월산 뿌리샘이 발원지인 반변천 강물이 삼지리로 흘렀었다. 그런데 아주 먼 옛날 천지를 개벽하는 큰 홍수로 하원 옥선대 앞의 산맥이 끊어져 물길이 바뀌었다. 그리고 뒷산 앞으로 3개의 못이 생겼다고 한다. 그 3개의 연못을 사람들은 바대못(간지) 탑밑못(연지) 원댕이못(항지)이라고 불렀다. 바대못은 연못의 형태가 베틀의 바대처럼 생겼다고 하여 그렇게 불렀다. 삼지리는 사들, 사부랭이, 사평(沙坪)이라고도 불렀는데 강물 바닥의 토질이 사질토라 그렇게 불렀다. 옛날에 반변천 강물이 이곳으로 흘렀다는 속설이 여기에 근거한 이야기이다. 삼지리에서 읍내로 나오려면 오지고개나 앞산고개를 넘어야 한다.
삼지리 뒷산이 척금대(斥金臺)이다. 척금대 하류에는 2개의 동굴이 있다. 강물에 잠기지 않은 암석 동굴은 일제 강점기에 파놓은 동굴로 6.25전쟁 때는 곡강 사람들이 그곳으로 피난을 하기도 했다. 그 아래 암석 동굴은 일제강점기에 척금대로 흐르는 강물을 삼지 연못으로 보내기위해 지하수로를 만들다가 해방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당시에는 산 밑에 암반을 뚫고 지하수로를 만들어 그 물로 국개들과 현리들의 농업용수를 공급하려 했다. 그러나 해방이 되자 공사가 중단이 된 것을 1950년대 산 밑, 암반층을 다시 뚫어 척금대 하류의 반변천 강물을 안정적으로 삼지연못에 공급하였다. 그래서 삼지에서 공급하는 농업용수 덕에 영양읍의 논은 해마다 가뭄이 들지 않아 풍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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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자, 다녀오리다.”
“부디 몸조심 하세요.”
“낭자, 이거 받으시오.”
상수도령이 허리춤에서 무엇인가 한줌을 꺼내 연화 낭자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것은 까만 밤처럼 생긴 것이 양쪽에 뾰쪽한 가시가 돋아 있었다. 상수도령은 도토리처럼 생긴 열매를 까서 낭자에게 먹으라고 말했다. 통통한 열매는 아주 고소했다. 도토리처럼 생긴 것은 연꽃의 씨앗인 연밥이었다. 상수도령이 열매를 이로 깨물자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도령은 낭자에게 하얀 분말을 먹으라고 했다. 밀가루처럼 생긴 분말은 달고 고소했다.
“어머나, 이거 참 맛있네요.”
연화낭자가 까만 밤을 하얀 이로 깨물어 분말을 꺼내 먹으며 말했다.
“낭자, 다음 달 보름밤에 올 때 내 또 가져오리다.”
상수도령이 연화낭자를 와락 껴안으며 말했다. 휘영청 밝은 달이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다음은 없었다. 그날 밤 창수재로 돌아간 상수도령은 왜놈들이 쏜 화살을 가슴에 맞고 죽고 말았다. 탑밑마을에 살고 있는 연화낭자는 구월 보름밤에 바대못 둑에 서있는 버드나무 밑에서 상수도령을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상수도령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걱정이 된 연화낭자는 사람을 창수재로 보내 상수도령의 안위를 알아보게 하였지만 되돌아온 대답은 상수도령이 왜놈들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었다.
상수도령의 전사를 알게 된 연화낭자는 밤마다 버드나무 밑에 나와 연인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었다. 그리고 시월 보름날 밤에 상수도령이 준 연밥과 말밤 한 개를 손에 쥔 채 바대못에 몸을 던졌다.
이듬해 봄이 되자 사람들은 연못에 생전 처음 보는 넙실한 잎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여름이 되자 분홍색 꽃망울이 활짝 피었다. 사람들은 연화(蓮花) 낭자의 이름을 따서 연꽃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연못에는 생전 처음 보는 까만 밤처럼 생긴 것이 보였다. 이전에는 보지 못한 물건이었다. 이로 깨물자 하얀 분말이 나왔다. 사람들은 이것을 말밤이라고 불렀다. 말밤은 늪지대에 살고 있는 수생식물 마름의 열매이다. 영양읍 사람들은 흉년이 들면 삼지연못에 말밤을 주어 묵을 쒀 굶주림을 면했다.
삼지연못의 연꽃은 타 지역의 꽃과 모양이 조금 다르다.
몇 해 전, 고도 경주의 고분 항아리 속에서 연꽃의 씨앗이 출토 되었다. 연구용으로 천년 전에 씨앗을 배양하여 키웠는데 여름에 연꽃이 피었다. 이 연꽃의 꽃잎과 모양이 삼지연못에 연꽃과 똑 같았다. 삼지연못에 연잎 모양은 요즘의 연잎보다 더 크고 마치 우산을 활짝 편 것처럼 넙실하다. 그리고 연꽃도 지금의 꽃보다 더 크고 색깔이 진하다.
삼지리 사람들은 지금도 보름달이 동산 위에 두둥실 떠올라 푸른 달빛이 삼지연못을 대낮같이 환하게 밝게 비추면 바대못 둑에 서있는 소나무와 버드나무 아래 상수도령과 연화낭자가 서로 만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은 가슴으로 사랑하는 연인들의 눈에만 보인다고 한다.
- 글쓴이 : 김범선
- 김범선(소설가) 경북고등학교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한국문인협회문단윤리위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회원 한국소설가협회중앙위원 작품 눈꽃열차, 비창1,2권. 황금지붕, 개미허리의 추억(상, 하권), 킬러밸리. 노루잠에 개꿈, 당콩밭에 여우들, 영혼중개사, 협곡열차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