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이란 그 민족이 유지하고 있는 생활양식이다. 그 생활양식 가운데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것들 중의 하나가 놀이다. 놀이는 민족이나 지역을 단위로 생활의 필요에 의해서 전승되고 발전이 된다. 이러한 놀이에는 자연스레 역사가 녹아있다. 또한 놀이에는 민간신앙의 종교적 행사기능이 있다. 놀이를 통해서 신에게 무사태평을 기원하고 감사하는 주술적 행위로서의 의례도 함께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천의 청단놀음은 놀이와 의례의 속성을 다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가면극은 후대로 올수록 공연의 목적이 풍요와 안녕을 비는 주술성에서 오락으로 바뀌어 졌다. 이러한 변화는 가면극 발전에 큰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가면극이 주술적인 효능은 잃었다고 해도 심적인 치유의 기능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고 본다. 가면극은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의 연기자가 가면으로 얼굴이나 머리 전체를 가리게 된다. 얼굴을 숨기고 본래의 얼굴과는 다른 인물이나 동물 또는 초자연적 존재 등으로 분장하여 극적인 장면을 연출을 하기 때문에 다루려는 내용과 풍자를 비롯해서 다양한 내용을 자유롭게 발산을 하게 되고, 이러한 연희를 보는 관객에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가면극은 재담, 노래, 춤, 몸짓 등의 동작으로 연희가 되는 종합예술이다. 예천의 청단놀음은 무언(無言)의 가면극으로 춤과 몸짓 등으로만 연희되고, 대사는 단 한 번만 나온다. 그 외에는 연희가 끝날 때까지 재담이나 노래가 없다. 이러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예천 청단놀음에 대해 역사와 전승배경, 그리고 내용을 비롯해서 특징과 그 문화적 가치를 살펴보고자 한다.

청단

예천 청단놀음은 경상북도 예천군 동본리에서 전승이 되어 왔다. 매년 정월 보름에 고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무언(無言)의 탈놀이다. 청단놀음과 관련된 기원 설화중 하나이다.

옛날 전라도 어느 고을에 한 늙은이의 젊은 첩이 가출을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젊은 첩은 늙은이가 싫증이 났는지 도망을 간다. 늙은이는 도망간 첩을 생각하다가 급기야 병이 들어서 앓아 눕게 된다.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효험이 없자, 이를 보다 못한 자식들이 놀이패를 꾸려 전국을 떠돌면서 아버지의 첩을 찾는다. 각지를 돌다 경상북도 예천읍 동본리에서 놀음을 할 때 구경꾼 사이에 있는 첩을 발견하게 된다. 자식들은 첩에게 아버지께서 계신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권유를 했지만 그 여인은 가지 않겠다고 냉정하게 돌아서고, 자식 일행은 결국 그 여인을 죽이고 떠난다. 

그 일이 있는 후부터 예천에는 재앙이 끊이지 않았고, 그러던 중 고을 원님의 꿈에 그 죽은 여인이 나타나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했다. 여인은 자신을 달래주려면 제사와 더불어 청단놀음을 벌여주면 된다고 했다. 

이에 원님이 이 여자를 위해서 제사를 올리고, 자식들이 연희했던 탈놀이를 하게 했더니 고을의 액운이 사라졌다. 그 이후 예천에서는 고을의 안녕을 위해 해마다 이 여인에 대한 제사와 청단놀음을 벌여왔다고 한다. 

또 다른 기원설화이다. 

전라도 지방에 이청단(李靑丹)이란 소년이 있었는데,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가난하게 살던 중 전쟁이 일어나 어머니와 헤어지게 되었다. 소년은 어머니를 찾겠다는 결심으로 자수성가 하여 큰돈을 벌게 되었고, 어머니를 찾기 위해 전국을 다니며 탈놀음을 벌이기로 했다. 탈놀음을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전재산을 들여 전국을 돌다가 마침내 예천에 이르러 어머니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설화로 미루어 볼 때 ‘청단’에 대한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 설화로 보면 ‘청단’이란 사람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도 있고, 청(靑)의 푸른색과 단(丹)의 붉은 색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다. 

또한『동국세시기』에도 청단이 등장한다.

함경도 풍속에 빙등(氷燈)을 베풀어 놓는데 마치 원주(圓柱) 안에 기름 심지를 박은 것 같다. 그것을 켜놓고 밤을 세워 징과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면서 나희(儺戲)을 행한다. 이를 청단(靑壇)이라고 한다.

위에서의 청단은 청단(靑丹)이 아니라 청단(靑壇)으로 새해에 귀신을 쫓는 의식을 의미한다. 청단은 연초에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행사로 볼거리와 놀거리가 풍부한 새해맞이 행사란 의미도 있다. 

이처럼 청단에 대한 의미와 기원이 다양하여 청단이 어떤 것이라고 한 마디로 명확하게 단정 짓기는 힘들다. 

진면목을 갖추기까지

이제 청단놀음의 전승배경에 대해서 살펴보자. 

청단놀음은 매년 정월 초에 터서리당에서 당제를 지낸 뒤에 행해졌다. 터서리당에는 검덕부인이라는 여신을 모셨는데 그 여신은 전라도 사람들에게 살해를 당한 뒤 원님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제사와 놀음을 부탁하기 위해 꿈에 나타난 여자로 전해지고 있다.

청단놀음은 1937년 11월 예천경찰서 낙성식 공연을 마지막으로 중단이 되었다. 그 이후 故 강원희 선생이 1976년부터 복원하고자 노력을 하였다. 그 결과 청단놀음은 1981년 제22회와 제1987년 제2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문화공보부장관상을 두 번이나 수상을 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후 청단놀음 보존회의 노력과 지속적인 고증 작업 및 학술 대회 등을 통해서 청단놀음의 형태가 완성되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2017년 8월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42호로 지정이 되었다. 

“이 중놈아”

일반적으로 탈놀이의 구성은 주로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되어 있다. 각 장마다 독립성을 가진 주제들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가 없이 표현되나, 크게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탈놀음의 특징이다. 

청단놀음은 1981년에는 광대판놀이, 행의놀이, 주지놀이, 학춤, 지연광대놀이, 얼레방아놀이, 바라춤, 무동놀이로 구성되어 총 여덟 마당이 연희되었으며 갹출되는 경비에 따라 한 두 마당의 가감이 있었다고 한다. 여러 차례의 복원과정을 거치면서 현재는 광대북놀음, 양반놀음, 주지놀음, 지연광대놀음, 중놀음, 무동놀음으로 총 여섯 마당으로 탈놀음이 연희되며 용어도 ‘놀이’에서 ‘놀음’으로 바꿔 부른다.

청단놀음의 등장인물로는 북광대 2명, 양반과 사대부 각 1명, 여자 배역인 쪽박광대 1명, 주지광대 2명, 지연광대 4명, 중광대 1명, 얼레방아 1명, 무동 및 무동꾼 각 5명 등 모두 23명이다. 

각 마당을 알아보자. 먼저 광대북놀음이다. 

광대북놀음은 놀이판을 여는 마당으로, 두 명의 광대가 악사의 장단에 맞추어 놀이판을 휘젓고 다니면서 북을 두드리는 것으로 시작이 된다. 광대북놀음에서 광대들은 서로 북을 치면서 서로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며, 한 발 뛰기와 북치기, 자리 바꾸기 등을 반복을 하다가 퇴장을 한다.

둘째 마당인 양반놀음에서는 양반과 사대부를 비롯해서 쪽박광대가 등장한다. 문화재 지정 이전에는 양반과 사대부가 탈을 쓰고 연희하였지만 현재는 탈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양반놀음에서는 유일하게 쪽박광대만이 탈을 쓰고 등장한다.   

쪽박광대는 양반을 유혹하다가 여의치 않자 사대부를 유혹한다. 양반은 사대부와 쪽박광대가 대무를 하는 것을 보고 둘 사이를 끼어들어 쪽박광대와 춤을 추다가 퇴장을 한다. 이 마당에서 중요한 것은 양반이다. 양반은 상중을 의미하는 백립(白笠)을 쓰고 등장 하는데, 이는 상중에 쪽박광대와 춤을 추는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양반들의 위선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쪽박광대는 남성을 적극적으로 유혹하는데, 이는 다른 탈놀이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모습이다. 

셋째 마당은 주지놀음으로, 두 명의 주지광대가 주지판을 들고 나와 악사의 살풀이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춘다. 

주지광대는 서로 혹은 관중을 향해서 주지판을 부치면서 극적인 갈등이 없이 연희를 한다. 주지놀음에서는 주지판을 움직이는 동작이 중요한데, 주지광대는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고 혹은 좌우로 이동을 하면서 힘차게 움직이며 퇴장을 한다. 

네 명의 지연광대들이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며 등장하는 지연광대놀음은 넷째 마당이다. 

지연광대놀음에서 사용되는 탈은 전국의 탈춤 중 유일하게 키(箕)로 만든 탈이다. 4명의 지연광대는 동서남북(東西南北)과 춘하추동(春夏秋冬)을 상징한다. 지연광대들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한 곳으로 모였다가 흩어지고, 서로 자리를 바꾸어가면서 대형을 이루고, 좌우로 돌아가면서 춤을 춘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다섯째 마당은 중놀음이다. 

중놀음은 얼레방아가 처음으로 등장해서 무엇을 찾는 시늉을 하며 주위를 돌면서 신나게 놀고 나면, 쪽박광대가 등장하고 마지막으로 중이 등장한다. 쪽박광대가 중을 유혹하는데, 처음에는 넘어가지 않지만 끝내 쪽박광대의 유혹에 넘어가서 파계를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얼레방아 나와서 중과 쪽박광대가 놀아나는 것을 보고 큰소리로 “이 중놈아”하고 외마디 소리를 친다. 청단놀음 전체에서 말이라고는 얼레방아의 이 한 마디뿐이다. 

마지막 마당인 무동놀음은 몇 차례의 변화를 겪었다. 청단놀음을 고증한 안동대 한양명 교수에 따르면 1981년에는 이무동(二舞童) 4조, 삼무동(三舞童) 2조로 총 6조의 무동이 등장하였으나 1987년에는 이무동 3조, 삼무동 2조의 5조로 축소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1978년 강원희와 성병희 교수의 조사 결과와 1937년 경찰서 낙성식 공연을 본 노인들의 기억을 반영한 것이다. 그리고 현재는 이무동 5조가 등장한다. 

이 놀이는 어른의 어깨 위에 아이들이 올라서게 되는데 어른의 힘도 있어야하지만 아이들도 담이 필요한 놀이다. 무동놀음은 농작물의 속성과 풍요를 상징하는 춤으로 단결을 의미하는 놀이다.

청단놀음의 얼굴

청단놀음의 탈은 다양한 표정으로 인물을 표현한다. 청단놀음은 2017년 8월 14일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42호로 지정되었다. 지정 당시를 기준으로 탈놀음에 사용되는 탈은 북광대 2개, 쪽박광대 1개, 주지 2개, 지연광대 4개, 중 1개, 얼레방아 1개로 총 11개이다. 이중에서 박으로 만든 탈이 7개, 키(箕)로 만든 탈이 4개이다.

굿과 극

각각의 마당이 특색을 가진 청단놀음의 주제는 이야기의 구조를 통해서 드러난다. 이야기 속에는 주술(종교)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대개의 탈놀이는 굿에서 극으로 발전한다. 즉, 주술(종교)적 성격이 약화되고 사회성이 강화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청단놀음은 아직 굿의 성격을 많이 유지한 채 일정한 사회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특징은 양반놀음, 주지놀음, 지연광대놀음, 중놀음 등에서 주술(종교)적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양반과 중에 대한 풍자와 비판으로 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서낭신에 등장하는 원혼형 여신의 결핍된 성(性)을 충족시켜 해원하여 줌으로서 공동체의 평화를 기대하는 주술(종교)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탈놀이는 사건의 표현을 대사와 동작으로 구현한다. 대사는 사건을 전개시키고, 동작은 그것을 구체화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청단놀음은 무언극이다. 극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전개하는 역할인 말, 곧 대사가 없고 동작만 있다. 그 동작도 삶의 체험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사가 없이 행동에 의존해서 자신의 역할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동작이 그만큼 중요한 요소가 된다. 현전하는 가면극 중에서 완전한 무언극은 강릉관노탈놀이와 예천의 청단놀음 밖에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청단놀음은 무언극으로서 우리나라 가면극 형성과 발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같은 듯 다른, 그래서 더 빛나는..

청단놀음은 안동 하회별신굿탈놀이와 더불어 경북북부 지방의 대표적인 탈놀이다. 특히 무언극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그 의미가 크다. 무언극으로 각 놀음판의 사건이 단순하지만 극적으로 사건을 진행시키기 때문에 극적 긴장감을 느낄 수 있게 하여 관중들로 하여금 놀음에 더 몰입하게 한다.

한양명 교수는 탈놀이 가운데 당신화(堂神話)와 공동체 제의(祭儀), 그리고 놀이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사례로 하회별신굿탈놀이와 관노탈놀이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하회별신굿탈놀이의 경우 각시광대는 당신화와 관련은 있지만 허도령의 금기 위반을 초래한 경우이고, 관노탈놀이는 강릉단오굿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제의적 성격은 있지만 당신화와는 무관하다. 하지만 청단놀음의 쪽박광대는 당신화의 가출한 여인이자 예천읍 동본리 터서리당의 여신이기도 하다. 따라서 청단놀음은 당신화와 공동체 제의의 놀이적 상관물이 결합한 것으로 다른 탈놀이와 차별성을 가진다.

그리고 지연광대놀음에서 키탈은 매우 독특한 형식이다. 우리 탈놀이에서 키탈을 사용하는 경우는 통영오광대의 사자가 있다. 통영오광대는 키의 세로면을 활용하여 이목구비와 갈기를 덧붙인 형태로서 겉으로 봐서는 그 재료가 키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청단놀음의 지연광대탈은 키의 원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로 볼 때 키의 원형을 살린 경우는 청단놀음의 지연광대탈이 유일한 것으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청단놀음은 현재 예천군과 청단놀음보존회의 회원 및 청단놀음에 대해 관심이 있는 개인과 단체들에 의해 꾸준한 고증작업과 더불어 지역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머잖아 청단놀음은 지역의 문화적 자부심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역사문화유산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