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백소애_쑤세미의 골방에서 만화읽기]하늘도 높고 날씨도 좋은데, 나는 아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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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높고 날씨도 좋은데, 나는
백 소 애
“
살고 싶다. 정말 살고 싶다. 어떤 길을 향해.
내게 손짓하는 저 새로운 빛을 향해 떠나고 싶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도스토예프스키, 김연경 옮김, 민음사
몇 해 전 친구 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맞아 값비싼 종합건강검진권을 선물로 드렸는데 그만 암이 발견된 것이다. 손쓰기 힘든 말기였다. 별다른 증세가 없었던 친구 아버지는 암 진단을 받음과 동시에 앓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괴로워했고 친구의 아버지는 고통스러워했다. 온화하기 그지없던 분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손주를 보고도 짜증을 냈다. 육체의 고통은 정신까지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채 1년이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 그간 가족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다시 웃음을 찾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일이 걸렸다.
‘아만자’는 ‘암환자’를 뜻한다. 그러니까 ‘암환자’가 ‘아만자’가 된 유래는 ‘실땅님’만큼이나 웃픈 사연이 있다. 아침드라마에서 어떤 여배우가 눈물을 흘리며 “그래 나 아만자야 아만자라구!.”하자 아만자가 뭔지 궁금했던 한 사오정 같은 네티즌이 지식인에 물었던 것이 그 시작이다. ‘드라마에서 아만자, 아만자하면서 울던데 아만자가 뭔가요?’ 라고.
김보통의 <아만자>는 올레마켓 웹툰에서 2013년부터 2014년까지 1년여에 걸쳐 연재된 작품이다. 스물여섯 살 ‘아만자’가 암을 선고받은 이후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데뷔작 <아만자>를 통해 탄탄한 내공을 보여준 김보통은 평범한 회사원에서 만화가로 변신한 케이스다. 그의 아버지는 암환자였다. 아버지는 의식이 없는 와중에도 그에게 ‘출근해야 하니 얼른 가라’고 하셨다 한다.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던 그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맥락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홀로 죽음과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었던 아버지에게 보내는 반성문이자 편지인 이 만화는 스물여섯 청년의 암 투병기를 통해 그와 그의 삶 그리고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혹자들이 작가 스스로 암환자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작품은 사실적으로 투병생활기를 그려내고 있다.
하늘은 높고 날씨도 좋은데 나는 아만자, 라고 쓸쓸하고도 덤덤하게 고백하는 스물여섯의 청년. 그는 허리가 아파 병원에 들렀다가 위암 말기 진단을 받게 된다. 의사는 그에게 암이 척추에까지 전이되어 허리가 아픈 거라고 했다. 갓 제대했는데, 이렇게 억울할 수가! 의사의 입에서 “뻥이요!”라는 말이 나오길 기다렸지만 내일부터 입원하라는 소리만 듣게 된다.
어머니, 아버지, 동생과 함께 한 식탁에서 항암치료를 받기로 했다고 얘기하는 청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아무 일도 없을 것처럼,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함께 식사를 마치자고 부탁한다. 언제 또 이렇게 함께 밥을 먹겠냐며. 가족들은 눈물을 삼키며 식사를 한다.
연애 2년차인 청년은 생각만큼 예쁘지도 생각 외로 매력적이지도 않은 여자 친구가 있다. 그녀에게도 그의 병을 알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는 아직 젊고 둘은 결혼하지 않았고 머지않아 그가 죽은 뒤에라도 그녀는 그녀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거다.
항암치료를 위해 요양병원에 들어온 청년은 같은 병실에 치매 할아버지를 보며 느낀다. 자기가 죽어간다는 것을 아는 것과 자기가 누군지 모른 채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하고.
여행, 영화, 데이트 등 평범한 일상이 계속될 줄 알았는데 대부분의 것들은 이제 그에게 마지막인 것들이 되고 말았다. 스물여섯의 그는 영국에 가서 그 맛없다는 피시 앤 칩스를 직접 먹어보고 싶었고 취직도 하고 싶었고 졸업식도 가고 싶었고 지옥철 출근도, 결혼도, 육아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 평범하고 조금은 시시하고 지루한 일상을 살아보고 싶었다.
병원에 입원하자 제일 처음은 친척들이, 다음으로 친구들이, 마지막으로 여자 친구가 병문안을 온다. 농담 따먹기로 위로를 해주는 친구들이 현실을 잊게 해준다면, 여자 친구는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 존재. 몇 달 전, 심하게 다퉜을 때 헤어졌다면 그녀는 이 상황을 겪지 않아도 됐을 거라고 자책하면서 그녀를 보내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또 생각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사실은, 그녀와 함께 하고 싶노라고.
© YES 24
암환자의 통증은 상상 이상이다. 통증이 1에서 10까지 중 어느 정도냐고 계속 묻는 간호사에게 그는 100이라고 외치며 욕설을 퍼붓는다. 그는 언제나 같은 농담, 잔잔한 일상과 담담한 고백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지만 처절한 고통에 점점 지쳐가고 몸도 삶도 메말라간다.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의 아픔도 배가 되어간다.
만약 자신에게 1년이라는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그는 시베리아로 떠나겠다고 한다. 가족과 여자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어떠한 말도 없이 떠나 평야가 보이는 곳에 홀로 살아가고 싶다고 한다. 그곳에서 364일째 밤, 길을 떠나 시베리아의 눈 덮인 평야를 걷고 또 걸어 어느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 자신이 죽더라도 아무도 찾지 못하게 만들 거라고.
“할 수만 있다면, 살 수가 없다면, 아무도 모르게 죽고 싶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있고 싶다.”
암에 걸린 건 그의 잘못도 가족의 잘못도 아니지만 가족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슬픔과 함께 건강보험 적용이나 수술비 등 경제적인 고민도 함께 하게 된다. 친구들은 취업이네 결혼이네로 고민하는데 자신의 아들은 죽음의 기로에 서 있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부서회식에서 아버지에게 위로를 건네는 상관은 그래도 공과 사는 구분하라는 말을 한다. 청춘과, 인생, 삶을 송두리째 바친 회사에 아들도 바치라는 말인가, 아버지는 씁쓸하게 소주를 넘긴다. 아들의 병실에 들어서면서 아버지는 억지로 웃는다. 울 수는 없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에 가까이 가도 우리는 여전히 회사로 출근하고 저녁밥을 먹고 TV를 시청하는 일상이 반복된다. 다소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웃음도 되찾을 것이다. 지나온 삶을 반추하며 복기하고 추억하고 그러면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죽어 사막의 모래알처럼 희미해져가도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기를 바라니, 우리는 나약하고도 한없이 강인한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 아만자 4권 표지
그는 아만자.
죽은 후 장기기증을 하려고 해도 암이 전이돼 그것조차도 할 수 없는 아만자.
항암치료로 지쳐 의식을 잃을 때면 그는 동쪽의 숲에 있는 사막의 왕을 찾아 나선다. 미지의 세계에서 만난 친구들이 사는 숲이 사막으로 변해버려서다. 또 부서지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되찾기 위해서. 점점 죽음에 다가가는 그이지만 마지막까지 걸음을 멈추지 않는 한 인간의 여정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나는 마지막까지 살아있을 것이다. 사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게 주어진 삶과 건강한 육체가 이토록 소중한지 모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 하루도 살아가고 있다. 지금 내 곁에서 일상을 함께 나누고 있는 가족에게 뜬금없이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만화, 지금도 고통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아만자’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만화 <아만자>를 이 겨울에 만나보시길.
‘아만자’는 이탈리아말로는 ‘사랑’이라고 한다.
아만자 1-5권/ 김보통 지음/ 예담
- 글쓴이 : 백소애
- 강원도 태백 출생. 아이큐는 낮지만 머리가 좋다고 굳게 믿고 있음. 변덕이 심하고 우유부단하나 따뜻한 품성을 지니고 있다. 조카들에게 헌신적이며 인간성 또한 좋다.....고 믿고 있다. 학생 때 교무실에서 밀대자루로 바닥 밀면서 은밀히 훔쳐본 생활기록부에는 ‘예의 바르나 산만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한참을 갸우뚱 하다가 담임이 수학선생님이었기에 그냥 이해하기로 함. 다소 후진 취향을 지니고 있으나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쓸데없는 걱정과 호기심이 많음. 같은 계획을 몇 년째 하고 있으며 역시나 올해도 다이어트와 앞머리 기르기에 도전할 생각이며 과메기에 없어서는 안 될 다시마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 웹툰도 괜찮지만 만화책은 역시 종이책으로 보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아날로그 건어물녀. 좋아하는 것은 무한도전, 오뎅으로 만든 떡볶이, 삼겹살에 매실소주, 비오는 날, 생활의 달인,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괴짜가족 류의 저질유머. 비 오는 날 무한도전 틀어놓고 배 깔고 누워 만화책 보면서 빈둥거리며 사는 것이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