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강병두_구름에 달 가듯이]사촌마을의 잔치
- 강병두
시골마을에서 잔치가 벌어졌다. 빡빡한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이웃을 배려하는 따뜻한 정이 남아있는 시골마을에 와서 자연과 벗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도농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이다. 요즈음 농촌에서는 소득을 창출하기 위해 도농교류프로그램을 만들어 도시사람을 손짓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도시인들은 농촌체험을 할 수 있으며, 또 농촌에서는 농산물 직거래 등을 통해 상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오늘 모처럼 사촌마을은 왁자한 사람소리로 생기가 넘친다.
마을에서 연 예절학교에서는 훈장님의 하늘 천 따지를 따라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또한 아이들과 함께 참가한 어머니들도 동네사람들과 한담을 나누며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따분한(?) 예절교육이 끝나고 문화재와 고택을 청소하는 시간이 있었다. 처음에는 주춤거리던 아이들도 문화재지킴이의 설명을 들으며 따라하다 보니 조금은 익숙해지는 모양이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문화재를 비로 쓸고 걸레로 닦고 먼지를 터느라 부산하다. 그렇게 왁자지껄하던 아이들은 동네아주머니가 삶아온 감자는 아이들이 너도나도 주워가는 통에 곧 동이 났다.
그 시간 마을회관에서는 부녀회원들을 중심으로 이장님까지 거들어 국수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도시아이들에게 무엇을 먹이면 좋을까 고민 끝에 내놓은 것이, 옛날에 많이 먹던 국수다. 이왕이면 웰빙음식인 콩국수를 준비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 콩국수를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800년대 말에 나온 조리서 '시의전서(時議全書)'에 콩국수와 깨국수가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콩국수는 서민들이 즐겨먹던 여름철 음식이었으며 양반들의 여름철 음식은 깨 국수였다.
걸쭉하고 시원한 콩물에 국수를 말아먹는 콩국수는, 예나 지금이나 입맛이 없고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이면 더위에 지친 심신에 활력을 주는 음식으로 많이 찾게 된다. 콩국수는 입맛을 회복시켜 주고 식물성 단백질의 보고인 콩으로 만들어 영양도 충분하다. 여름에는 땀으로 체내질소가 다량 배출되므로 단백질 보충이 필요한데, 콩은 칼로리나 지방질과 당질은 적은 반면 단백질이 풍부한 식품으로 피로 회복을 돕고 혈관을 튼튼하게 유지시켜 동맥경화 및 노화를 방지해 준다고 한다. 간편하며 힘든 일을 하고 난 후 영양보충으로 제격인 콩국수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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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 힘들지 안니껴?’ |
한창 때 솜씨라도 자랑하는 듯이 경쟁적으로 국수 만들기에 여념이 없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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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보래이 또 찍는다. 또 찍어!... 총각은 일도 못하게 뭔 사진을 그래 찍노’ |
주변에 와아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머쓱해진 나는 말문을 닫고 만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이방 저 방에서 밀가루를 반죽하여 국수밀기에 바쁘고, 거기 끼지 못한 아지매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장작을 가지러 가기도하고, 솥이며 삶은 국수를 건지는 광주리를 가지러 이집 저 집을 돌아다닌다. 아궁이에서 빠직빠직하며 장작이 타는 소리에도 한바탕 웃음이 인다. 조용하던 시골마을이 모처럼 도시사람들로 인해 생기가 넘친다. 삶은 국수를 꺼내 찬물에 씻고 콩물을 부으면 국수는 완성이다. 국수를 삶는 냄새가 배속을 자극했는지 여기저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올 즈음, 드디어 사촌마을의 국수잔치가 시작되었다. 반찬이래야 고작 김치와 소금이 전부인 간소하게 차린 상이지만, 여기저기서 국수를 더 달라는 소리와 풍족한 시골인심의 대명사인 ‘더 묵지!’라는 말이 섞여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다. 시골마을의 체험에 참가하여 사진을 찍던 나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수를 보니 허기를 느낀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한 마디 했다.
‘할매요! 난 안 주니껴?’
- 글쓴이 : 강병두
- 세 차례의 개인전을 비롯하여 '사진의 의미와 재현', '수화위진'전 등 다수의 단체전에 작품을 발표하였다. 현재 안동신문 문화학교 사진교실 강사로 활동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