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김상진_이야기가 있는 예천문화 탐방]예천의 보루, 금당실 이야기(1)
- 김상진(cultureline@naver.com)
예천의 보루
금당실 이야기(1)
김상진
약포 정탁 대감을 포함한 예천의 향기를 느끼고자 멀리 통영에서 40여명의 귀한 손님들이 예천을 방문했다. 경남 통영 일원에서 집결해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한 “이배사”회원들은 한결같이 즐거운 표정이었고 다들 예천에 대해 호기심에 가득 찬 어린아이 같은 모습들이었다.
이 분들은 이순신을 배우고 사랑하는 자발적인 연구 동아리회원들 이었고 임진왜란 때 약포대감의 ‘신구차’ 상소문을 통한 구명활동으로 이순신의 목숨을 살리고 마침내 전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 예천의 큰 인물 ‘약포 정탁’ 대감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요량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예천을 투어 할 곳으로 회룡포와 금당실 마을을 낙점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금당실 마을을 둘러볼 계획으로 숙소도 용문면에 소재한 출렁다리 팜 스테이로 정하고 여장을 풀었다.
오늘 필자가 소개하려는 것은 금당실 마을을 중심으로 바라본 이곳의 가을 정취와 마을에 깃들어져 있는 의미 있는 이야기들과 이 마을에서 살다간 선조들의 모습들을 편안하게 다시 펼쳐 보고자 할 뿐 재미있는 여행 답사기로 꾸미지 못해 쑥스러울 뿐이다.
이 손님들을 계기로 늘 가까이에서 봐 왔던 우리 동네에 대해 새삼 다정한 시선으로 봐라 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기에 서두에 언급하게 되었다.
멀리 통영에서도 금당실 마을에 대해 귀동냥을 한 것이 분명한 것은 다들 나름 마을의 특징을 잘 꿰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 금당실 마을은 전국적으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힐링의 공간으로 자주 찾는 곳이다. 금당실은 돌담길 굽이굽이 만큼이나 많은 이야기와 역사적 사건들을 품고 있는 동네이다.
외지에서 처음 금당실 마을을 둘러볼 심산이면 먼저 용문면사무소 앞에서 출발하여 미로 같이 얽혀져 있는 돌담길을 따라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본 다음 금곡서원을 끝으로 북쪽 송림이 시작되는 곳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도 아니면 앞에서 언급한 방향의 역순으로 송림을 시작으로 하여 크고 작은 고택들과 초가들을 살펴보고 6,70년대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정겨운 시골장터를 둘러 본 다음, 다시 허리쪽으로 금당실 돌담길을 돌아 면사무소 앞으로 나오면 나름 금당실 마을을 잘 살펴보았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이번 ‘이배사’ 답사팀들은 북쪽 송림을 시작으로 마을을 편안하게 둘러보기로 하였다. 새벽안개가 채 걷히지 않아 송림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무릉도원을 방불케 하는 환상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오미봉을 감싸고 있는 참나무에도 노란 물이 막 들기 시작하면서 가을이 무르익어 가고 있음을 실감하였다.
■ 금당실 송림 오솔길
양지 바른 돌담 옆으론 보랏빛 들국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발간 맨드라미는 말라가면서도 악착같이 황토담장을 움켜쥐고 있는 넝쿨담쟁이와 어울려 만추의 정취를 더해 주었다. 돌담길을 한 모퉁이 돌자 어느 고택 담벼락에서 기대자란 벌건 피마자 열매가 파란 가을 하늘을 이고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다급한 우리들의 마음에 여유로움을 선사하는 것 같았다. 송림을 오른쪽으로 끼고 몇 발자국 발걸음을 옮기자 누렇게 익어가는 벼이삭 너머로 보이는 금곡서원이 당당하게 선채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금곡서원은 1568년(선조1년)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치암(恥菴) 박충좌(朴忠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봉안하였고 후에 박눌(朴訥)과 영남삼로(嶺南三老)로 추앙 받는 남야 박손경(朴孫慶)선생을 추가로 배향하고 있는데 이쯤에서 말미를 거두고자 하는 것은 그 만큼 풀어 놓을 이야기가 많다는 반증이리라. 나중에 언급할 기회가 있겠지만 금당실은 걸출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된 명당터이다.
마을을 거닐다 보면 만나게 될 반송재 고택(문화재자료 제262호), 사괴당 고택(문화재자료 제337호), 양주대감 이유인의 99칸 고택 터 등도 많은 사연들을 품은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잠깐!
필자는 여기에서 펜을 멈추고 천장을 바라보며 너털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부딪히고 만다. 도대체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 걸까? 욕심이 앞서고 있다는 현실을 깨닫는 순간 글의 제목 뒤에 (1)이라는 번호를 달며 다음 얘기에 대한 여운을 남기고 이야기를 정리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금당실의 속살을 풀어내기에는 이번 한번의 기회로는 할애된 지면이 한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꼭 짚고 넘어 가야 할 얘기들과 전설 같은 진실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금당실을 이야기 할 때 사람들은 “금당 맛질 반 서울”이란 말을 먼저 떠올린다. 그 말뜻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유추해 볼 수 있긴 하지만 격암유록을 쓴 역학자 명풍(名風) 남사고(南師古)선생은 '이마을과 맛질 고을을 하나로 보면 서울과 흡사하나 큰 냇물이 없어 아쉽다'고 해 '금당 맛질 반서울' 이란 말이 생겨 났다고 하기도 하고 금당실과 맛질은 예로부터 서울에 버금갈 정도로 인재가 많다고 하여 비롯한 말이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역사적 인물과 연관되어 전해지는 또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 마을에 구한말의 세도가 양주대감 이유인이 살면서 서울의 고관 대작들이 자주 왕래하게 되면서 부터 ‘금당 맛질 반(半)서울’이란 말이 생겼다. 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맛질’이라 함은 금당실 마을과 인접해 있는 대제리와 제곡리, 하학리를 통틀어 일컫는 지명을 말한다.
이렇듯 금당실 마을은 예로부터 상스러운 기운을 지닌 보배 같은 길지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금당실 마을의 터와 관련된 이야기로 한 단락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금당실 마을은 북동쪽으로는 소백준령이 감싸고 있으며 서남쪽으로는 금곡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형을 갖춘 명당이다.
마을의 주산은 오미봉인데 이 산에 무덤을 쓰면 큰 부자가 된다는 말이 예부터 전해내려 오지만, 개인이 묘를 쓰기만 하면 마을에 가뭄이 들고 재앙이 발생하여 모두가 두려워했다고 한다. 이것은 사욕에 눈이 멀어 주산을 함부로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공동체 금기설화의 일종인 것이다. 또한 오미봉은 마을에서 산신을 모시는 상징적인 공간이며 정상에 세워진 정자에 오르면 아기자기한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 마을에 정착한 박씨와 변씨, 두 입향조가 마을의 지형을 살펴보니 마을의 지세는 연못이고 오미봉은 마치 그 연못에 떠있는 연꽃처럼 생겨 이곳 지형을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라 하여 연못을 상징하는 금당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그와 관련해 남은 기록이 없어 확실치는 않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 이래 민간에 널리 유포되어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예언서인 정감록(鄭鑑錄)에는 '전국 십승지 중 하나로 예천 금당실' 이 기록되어 있고, 조선중기 풍수지리학자이며 도사인 남사고(南師古)의 십승지론(十勝地論)에서는 '십승지 중 하나로 예천 금당동(金塘洞)' 이라 기록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십승지의 공통적인 특징처럼 나라에 흉년, 전염병, 전쟁이 닥쳐도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는 천하의 명당이라고 지목한 예언이 세월을 거슬러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서 말하는 십승지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절박하고 간절함이 서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십승지지란 전란이나 환란을 피해 숨어들어가 자급자족하며 살 수 있었던 곳을 말하는데 일정 기간 동안 목숨을 담보로 안위가 보장되는 최적의 장소라야 하기 때문이다.
금당실은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이면서 넓은 들판과 물이 풍부한 곳으로 임진왜란 때와 한국전쟁 중에도 큰 피해가 없이 온전했던 것으로 명성이 높다고 한다.
정감록(鄭鑑錄)은 조선 중기이후 민간에 성행하게 된 국가 운명, 생민존망(生民存亡)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예언서(豫言書)인데 조선의 선조인 이심(李沁)이란 사람이 이씨의 대흥자(代興者)가 될 정씨(鄭氏)의 조상인 정감(鄭鑑)이란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기록한 책으로 저자와 저술연대는 알 수 없으나 내용의 기원에 따른 정황에 미루어 보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 성립되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한 사람이 아니라 정감과 이심의 문답을 엮어놓은 감결과 신라 때 고승 의상스님의 산수비기, 고려 초 왕건의 왕사인 도선스님의 비결, 조선조 이성계의 왕사 무학스님의 무학비결, 경종 때 남사고의 남사고 비결, 용호대사 정북창의 정북창 비결, 토정 이지암선생의 토정가장결, 유형원, 원효스님, 이세계, 이율곡, 서산스님 등이 저술한 것을 집대성해 놓은 책이기도 하다.
'정감록' 자체에서 내린 십승지의 정의는 "세상에서 피신하기 가장 좋은 땅" 이라고 했다.
여기서 '피신' 이란 말의 의미는 매우 다양하다.내우외환 (內憂外患), 즉 외적의 침입은 물론 국내의 쿠데타 등 정변으로부터 생명을 보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우리 금당실은 지금까지 자연의 혜택 속에서 자손을 번창시키고 가문을 일구고 마을을 온전히 지켜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십승지 사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피란·보신의 소극성에서는 탈피하여 보다 진취적인 세계를 향해 발을 내딛을 때가 된 것 같다.
명당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길지(吉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땅의 좋음만 믿고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 터는 바로 죽은 땅이 될 것이다. 오늘 날, 십승지 금당실 마을에 터를 잡고 사는 땅 주인들이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마을의 운명은 바뀔 것이다.
- 글쓴이 : 김상진
- 현. 예천문화원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