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김만동_영화이야기]내 사랑 내 곁에(2009)
- 김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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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내 곁에(2009)
감독
출연 |
저녁을 먹고 나서 모처럼 느지막이 시간을 내서 영화를 보러 갔다. 새로 문을 연 대형 영화관은 한적했지만, 일제히 열병을 하며 나를 맞아주는 크림슨 색상의 의자들은 산뜻했다. 예고편에 이어 영화가 시작되었는데 관객은 더 이상 없었다. 개봉한 지 3주 만에 200만 관객을 동원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250석 정도의 상영관을 독차지한 기분은 참 묘했다.
영화관에서 영화 보기를 즐기지 않지만, 나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영화관을 찾았다. 나를 눈물범벅으로 만들었던 ｢너는 내 운명｣의 김진표 감독과 이미 저자에 소문이 왁자한 김명민의 메소드 연기 말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루게릭병 환자 백종우(김명민 분)는 어린 시절 한 동네에서 자랐던 장의사 집 딸 이지수(하지원 분)를 만난다. 마지막 혈육을 잃은 종우와 장례지도사라는 직업 때문에 이미 두 번이나 이혼을 겪은 지수는 금세 가까워지고 결혼식을 올리게 되지만, 거동이 불편한 그는 6인 병실에 구어박혀 신혼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종우와 지수의 신혼 보금자리인 6인 병실에는 여러 종류의 중환자들이 모여 있고 그 환자들 곁을 그들의 가족이 지키고 있다. 9년째 식물인간인 남편(최종률 분)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는 할머니(남능미 분)와 의식이 없는 아내 춘자(임성민 분)를 지극한 정성으로 간호하는 남편(임하룡 분), 사고로 불수의 몸이 된 어린 딸(손가인 분)을 통곡을 삼키며 간호하는 어머니(신신애 분)와 의식 없이 눈만 멀뚱하게 뜨고 있는 형(임종윤 분)을 위해 직장마저 포기한 동생(임형준 분)이 그들이다.
이 여섯 명의 보호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삶을 희생한 채 환자인 그들의 가족을 지킨다. 그들의 헌신은 현실의 고통과 서로 맞물려 있어서 더욱 실감이 난다. 의식조차 없는 환자의 볼을 때리며 원망을 드러내는 이나, 자신을 죽여 달라고 소리치는 이나, 아내의 소생 순간을 놓치고 발등을 찍으며 안타까워하는 이나, 이제 그만 끝내고 싶다고 애원하는 이들의 울부짖음 같은 것들이 그렇다.
아내 지수의 헌신적인 사랑과 스스로의 굳건한 투병의지에도 불구하고 종우의 루게릭병은 조금씩 진행되고 그만큼 두 사람도 지쳐간다. 절망 속에서 종우가 사랑하는 지수를 자신에게서 떼어내기 위해 ‘시체 닦는 손’ 운운하며 까탈을 부리고 상처를 받은 지수는 며칠 동안 병실을 떠나지만 천성이 착한 그녀는 곧 병실로 되돌아온다.
영화의 마지막, 종우는 혀가 굳어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고 두 사람은 그제야 서로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바야흐로 눈빛과 생각만으로도 교감하게 되지만, 예견된 죽음은 다가오고 기어이 종우는 지수의 곁을 영 떠나게 된다.
영화가 끝났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말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그가 당신을 울’릴 거라던 포스터의 예고는 정확히 빗나가고 나는 도무지 슬프지 않았다. 슬프다기보다는 근근할 뿐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랬듯이 그저 안쓰럽고 갑갑할 뿐이었다. 김명민이 마음 없이 부르는 ‘내 사랑 내 곁에’의 소리맴도 끝나고 엔딩 크레딧도 다 올라갔지만, 객석을 비추는 성급한 조명 아래서 나는 그저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며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랬을까? 왜 이 영화가 내게는 아무런 울림을 주지 못했을까? 돌아와 이렇게 글을 쓰려고 앉았지만 며칠 양치를 못한 듯이 가분하지가 않다.
영화가 관객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옹골진 시나리오와 덧살 없는 정밀한 연출, 배우들의 적확한 연기가 어우러져야 할 터인데 ｢내 사랑 내 곁에｣는 그렇지 못하다. 이 영화의 밋밋함은 우선 단순하기 짝이 없는 스토리라인 탓일 리가 가장 많고, 나중의 기미를 서둘러 풀어헤쳐버리는 조급한 연출에도 분명히 한 탓이 있다. 기대한 대로 김명민의 연기는 괜찮았고 하지원을 비롯한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거슬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 또 있다. 영화의 이력을 볕바르게 보여준 홍보 전략은 관객 동원에는 성공적(?)이었을지 모르겠으나, 감상에는 역효과를 미친 것 같다. 맛난 만두를 먹으려고 식탁에 앉았는데, 막상 만두는 겉이 터져 속이 다 삐져나와버렸으니 입맛이 떨어졌다고나 할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루게릭병과 김명민을 빼면 ｢내 사랑 내 곁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만큼 루게릭병 환자를 실감나게 연기한 김명민에게, 그의 여윈 몸에 기댄 혐의가 너무 짙다.
운동신경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한다는 루게릭병도 그렇지만, 세상에는 참말이지 불치병이 많다. 발병 원인도 알 수 없는 숱한 희귀병들. 일상의 선악이나, 개개인의 잘잘못과도 관계없이 불시에 찾아와 삶을 뒤엎어버리는 이 언어도단의 재앙들 말이다. 그들의 절망과 고통을 어이 짐작이나 할 수 있으랴. 환자의 절망은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가족의 고통 또한 그에 조금도 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순간 우리 가족의 무사는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이 눈물 나도록 미안하고 고마운 축복을 다만 숙연히 누릴 일이다.
감독이 혹 이 영화를 통해 우리 이웃의 이런 터무니없는 고통에 눈길을 주자고 제안한 것이라면, 그렇다면 그건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 글쓴이 : 김만동
- 안동 경덕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