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유경상_지역문화인과의 만남]청송 옹기장 이무남
- 이희수
청송 옹기장 이무남
옹기의 풍만함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물론 취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살림엔 젬병인 필자도 연유는 모르겠으나, 옹기 욕심이 있다. 모양새의 안정감과 수더분한 색깔이 집안의 가벼움을 없애고 예전부터 있어왔던 진중함에 뭔가 프로주부의 느낌을 준다고나 할까.
옹기의 발생 시기를 정확하게 문헌상 어떻게 되어 있다, 라고 못 박을 수는 없으나 통상 삼국시대의 발효음식을 담던 유래에서 살피고 있기는 하다. 물론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 토기를 그 근원으로 두는 예도 있다. 흙으로 만들고 빚었으니 그 과정이나 시대적 효용성의 차이만 있을 뿐 그리 따져도 별탈은 없을 듯싶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고구려조'에 수록된 가사를 보면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작은 창고를 두고 음식을 저장하며 발효음식을 즐기리라"라는 기록이 있고 고구려 안악 제3호 고분벽화의 부엌편에는 시루가, 우물편에는 물 항아리들의 그림이 있다.
정확히 ‘옹기’ 라고 명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러한 사연들 속에서 옹기의 발생 시기를 삼국시대로 보는 것에 비교적 많은 힘이 실리는 것은 아마도 우리의 발효 음식문화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한 옹기가 사랑받던 시기는 도자기 그릇이 대량 유통되기 직전일 것이다. 물론 스테인리스그릇도 있기는 했지만 김치와 장이라는 발효 식문화를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숨 쉬는 그릇’ 이라는 옹기의 별칭답게 옹기가 쓰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갖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건강과 웰빙이 중요시되는 요즘, 옹기는 쓰임에서도 여러 가지 장점이 있겠지만 사실 더 큰 메리트는 사람의 손으로 빚어낸 그릇이라는 점에서 많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경쟁과 시련 속에서 지금도 오색 점토 흙을 파내 양잿물을 들이고 가마터에 불을 지피는, 여전히 옹기를 위해 손맛을 놓지 않는 장인이 있다. 그렇게 56년이라는 시간을 옹기를 위해 살아온 그는 이제 무형문화재로 옹기의 큰 사람이 되었다.
흙 따라 온길 40년
1959년 상주 출신의 19살 젊은 청년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옹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직접 공장을 세워 옹기를 만들고자 했던 청년은 흙을 따라 영양으로 흘러들어 오게 되었고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오색 점토가 있는 청송으로 와 지금까지 머물게 된다. 그렇게 청년이 오롯이 옹기와 함께 삶을 걸어온 지도 56년이 지나게 되었다. 이제 그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다.
바로 이 청년은 무형문화재 이무남 옹기장이다.
사실 이무남 옹기장의 고향이 상주라는 것이 조금 의외였다. 청송옹기의 이름을 달고 있어서였을까 왠지 고향이 청송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무남 옹기장은 18살에 상주의 한 작은 옹기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1년 후, 모아놓은 돈 구화 1,500원을 가지고 무작정 영양으로 오게 되었다. 당시 입암면 소재지에만 옹기공장이 5개 있었다. 상주에서 영양까지 온 이유는 순전, 흙 때문이었다. 옹기 본연의 질과 색감을 가장 잘 구현해낼 수 있는 것이 흙에서부터 결정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차를 불러 돈을 주고 사면 그만이지만 당시는 직접 땅을 파서 흙을 구해 옹기를 구웠기 때문에 옹기를 굽고자 한다면 흙을 따를 수밖에 없었을 터다.
당시 구화 1,500원이 작은 돈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무엇을 할 수 있는 돈도 아니었다. 그는
영양의 부산식당이라는 이름의 한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주인에게 가진 돈 전부인 1,500원을 내밀며 이 지역의 유지를 불러 식사를 좀 대접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또 인연이 닿으려고 했던 것인지, 연고도 없는 한 청년의 부탁을, 그 식당의 여주인은 당연하게 들어주었다고 한다.
영양에서 옹기공장을 가지고 있거나 큰 어른 격의 5명의 유지가 식당으로 왔고 그들은 무작정 식사를 대접 받았다. 이윽고 그의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된다. 영문도 모른 채 대접을 받고 발표를 들은 그들은 이무남 옹기장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사실 그의 발표는 가진 것 하나 없는 청년의 기술과 패기를 믿고 공장을 빌려달란 것이었다. 물론 벌어서 갚아나가는 식으로 하여 계약금부터 모든 돈을 융통한 것이다.
5명의 유지 중 유일하게 한 사람이 청년의 부탁을 들어줬다. 그리고 이무남 옹기장은 그렇게 장인의 삶에 있어 막 첫 페이지를 열어가게 된다.
공장 계약금 18,000원을 모두 빌려 그는 이내 갚게 되었는데, 공장에 있던 아직 굽지 않은 옹기들을 구워 팔면서 수완을 키워갔다. 외지에서 온 젊은 청년이 들어와 그저 그렇던 옹기공장을 하나 사더니 입소문을 타며 공장의 규모가 일취월장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시련이 오지 않았다면 그가 청송으로 발길을 옮기지 않았으리라.
이내, 군대에서 입영통지서가 나와 그는 어쩔 수 없이 공장을 비워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늘 옹기공장이 마음에 쓰였던 그는 제대로 군 생활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영양의 일화에서 보았듯이 이무남 옹기장은 다소 매몰찬(?) 추진력이 있다. 앞뒤를 재기보다는 일단 투지를 던져보는 그의 추진력이 사실 지금의 옹기장이 되는 데에 한몫 톡톡히 했을 터이다.
무턱대고 중대장을 찾아가, 일주일에 한 번씩 집을 보내주지 않으면 탈영을 할 수밖에 없는 그의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다. 옹기와의 인연이 그렇게 맺어지려 했던 것인지, 그의 인복인지 중대장은 이내 허락을 하고 말았단다.
주말마다 외출을 해 옹기공장 상태를 점검하며 그런대로 이어갔지만 제대한 후 그는 옹기공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이어가 봤자 무의미한 상태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심란한 마음을 접기 위해 그는 1년을 방황하고 다시 진보로 돌아오게 된다.
당시 진보에 옹기 공장이 13 곳이나 있었다는데, 아직 유리그릇과 플라스틱 그릇이 보급되기 이전이라 옹기그릇이 대중화된 시기였다. 하지만 그 기간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기성복처럼 수천, 수만의 도자기 그릇과 유리, 플라스틱 그릇이 보급되면서 옹기는 자연스레 오래된 유물마냥 찾는 사람이 드물어졌기 때문이다.
이무남 옹기장의 흙 따라 온길 40년이 온전히 오색 점토의 끌림에 있었다지만 청송과의 인연이 참 기막히긴 한다. 그 스스로도 자신의 성격을 추진력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고 표현하는 부분에서, 맨주먹으로 시작한 그가 옹기의 장인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도전과 시련이 있었을까 짐작해본다. 어쩌면 그것이 의지라는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요즘은 많은 그릇들 사이에서 건강과 웰빙을 좇는 시대의 분위기 따라, 투박하지만 건강한 옹기의 질그릇이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무남 옹기장은 옹기의 인기에 따라 납 유약을 들이고 가짜 흙을 섞은 그릇을 만들어 옹기라고 파는 것에 적잖이 걱정을 했다. 실제로 직접 그릇을 깨 보여주었을 때 필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어디가나 진품이 있으면 그 유명세에 따라 가품 또한 판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옹기그릇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건강을 우려했다. 유약으로 납을 사용하면 광도 나고 빛깔도 더 나 보이지만 그 안에 담은 음식 속에도 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가을의 끝 무렵에 선 청송옹기장의 집은 그러한 시끄러운 세상과는 초연한 듯 오직 옹기로만 한가득, 곳곳을 거니노라면 정말 옹기 밖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으니 절로 세상과 단절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옹기가 자연의 모양을 닮고 있어 또한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 받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식상한 이야기지만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1만 시간이 나온다고들 한다. 요즘 들어 그 말에 실감 또 절감 한다.
시간 속에는 그 사람의 삶이 있고 삶 속에 경험이 그리고 그 경험 안에 그의 사상과 가치관이 다져지기 때문이다. 이무남 옹기장은 돈하고 나이는 빼고 사람을 본다고 했다. 아마도 자신이 인생을 그리 걸어왔듯, 돈과 나이는 삶을 개척해 나가는데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일 것이다.
옹기장의 집 앞에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있는데 이름이 ‘온나’ 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온나는 이름이 아니고, 그냥 주인이 ‘온나~’ 하면 온다고 해서 온나다. 강아지의 이름마저도 참 이무남 옹기장의 옹기스럽다.
투박하지만 정겹고 한 번 보고나니 자꾸 재미가 붙는 것처럼 옹기가 그렇고 그것을 만지는 옹기장이 그렇다.
향기가 꽃을 말하듯 때론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 할 때도 있다. 무심히, 단단히 제 자리에서 투박한 빛을 내고 있는 옹기는 말이 없지만, 이무남 옹기장의 삶을 들려주는 듯 그의 집을 내려오는 내내 쉼 없이 옹기들이 내게 말을 건다.
- 글쓴이 : 유경상
- 경상북도 북부권 11개 시군의 문화예술 관련 정보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