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상학_안동이 건네준 시와 말]고산정孤山亭
• 안상학 2009-10-19

 고산정孤山亭

강 건너 날 부르던 그대 눈부신 옷자락도
그대를 기다리던 나의 몸가짐도 구름처럼 흩어졌네
그대나 나나 짧은 웃음으로 만나
강물을 사이 두고 마음 오고 갔건만
오래 전 우리는 없고 그림자로만 남아
나는 강 이쪽에서 우두커니 낡은 집에 기대섰고
그대는 건너 저쪽 노송을 짚고 섰네 아득하여라
그대 구름으로 잠시 다녀가듯 나 여기
한 마리 학으로 잠깐 쉬었다 가리 그대여
산이 외로운 건 이렇듯 높이 솟아
다정한 벗이 없기 때문이리
노송 저리 쓸쓸한 것은 너무 높푸르러
꽃을 가까이 할 수 없기 때문이리

[시작노트]

고산정을 드나들며 퇴계 이황의 시「書孤山壁」을 알게 되었다. 시 속에는 고산정의 주인이자 제자인 성재 금난수(惺齋 琴蘭秀)를 아끼는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日東主人琴氏子 일동주인 금씨라는 이
隔水呼問今在否 지금 있는가 강을 사이에 두고 소리쳐 물어도
耕夫揮手語不聞 쟁기꾼이 못 알아듣겠다는 손사래만 치기에 
愴望雲山獨坐久 구름 낀 먼 산을 바라보며 한참을 기다렸네

맑은 낙천(洛川)이 청량산을 지나면서 더욱 푸른 기운을 머금고 흘러내리다가 이곳 가송협곡 앞에서 머물며 더욱 푸르고 깊어진다. 그 깊은 소를 월명담(月明潭)이라고 부른다. 소를 사이에 두고 고산(孤山)과 독산(獨山)이 마주보고 있다. 오래 전에는 마치 한 줄기였다가 갈라진 것 같은 형상이다. 거대한 용이 꼬리로 내려친 것 같다. 낙천이 마치 그 용이라도 되는 듯 그 사이를 흘러가는 동쪽 고산절벽 아래 고산정이 있다.

강을 사이에 두고 독산 쪽에서 바라보는 정자는 고즈넉하다. 거룻배 한 척 참하게 오고 갔을 월명담에 비친 정자는 대칭이 한가롭다. 퇴계는 제자가 없는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쓸쓸한 마음을 이렇게 노래한 것이다. 내가 쓴 고산정은 비록 자유시지만 퇴계의 시에 차운하여 쓴 것이나 다름없다.

고산정은 이름이 주는 쓸쓸한 풍경과 기다림이 주는 아득한 마음이 녹아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만남과 헤어짐을 필연으로 안고 있다. 지척에 있어도 만날 수 없어 애태우는가 하면, 천리 먼 곳에 있어도 기를 쓰고 찾아가 만나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할 수 있어서 아름다운가 하면, 할 수 없어서 아름답기도 한 것이다. 사랑이 거느리는 수많은 어휘 중에서 그리움과 기다림은 아마도 첫머리를 다툴 만한 것이 아니겠는가. 

고산정은 아직 건재하다. 안동댐에 갇히지도 않았고 4대강 사업과도 거리가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자랑하는 안동의 풍광 중 첫손에 꼽는 이곳을 두고두고 자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글쓴이 : 안상학

1962년 경북 안동 출생.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1987年 11月의 新川」당선. 시집으로는 『그대 무사한가』(1991), 『안동소주』(1999), 『오래된 엽서』(2003), 『아배 생각』(2008) 등이 있다. 현재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