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박장영_종가이야기]금역당(琴易堂)
- 박장영(jangypark@korea.kr)
▲ 금역당(琴易堂)
1. 종택이 있는 곳
이 종택은 안동에서 34번 국도를 따라 안동팔경 중 제1경인 선어대를 돌아가면 송천동 하리마을에 있다. 안동향교와 송천초등하교 사이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 금역당 종택은 안동댐 수몰로 1973년 12월 월곡면 도목리에서 현 위치로 이건된 것이다.
2. 당호의 유래
이 종택은 흥해배씨 안동 입향조인 백죽당(栢竹堂) 배상지(裵尙志) 공의 종택으로 선생의 8세손인 배용길(裵龍吉, 1556∼1609)의 호를 취해 금역당으로 부른다. 백죽당의 7세손이자 퇴계 선생의 고제인 임연재(臨淵齋) 배삼익(裵三益) 공이 도목촌(桃木村)의 검암(儉巖) 위에 임연대(臨淵臺)를 쌓고 집을 지어 현판을 하려고 퇴계선생에게 ‘임연재도목촌(臨淵齋 桃木村)’을 받았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임연재 공이 돌아가신 뒤에 금역당 선생이 그 남쪽에 사당을 짓고 아버지 호를 현판으로 하려고 했으나 차마 할 수 없어 ‘금역당’이라고 당호로 썼다.
선생은 금(琴)과 역(易)에 조예가 깊어 그것으로 자호(自號)로 삼고, 그 정치(情緻)한 이치를 탐구하여 호연한 성정을 길러가는 경지로 삼았다고 한다.
3. 건축물의 구조와 배치
▲ 평면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된 금역당 종택은 본채와 금역당, 사당 등 3채로 구성되어 있다. 종택의 본채는 정면 5칸, 측면 6칸이고 금역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이며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집이다. 본채의 안방에 연속되는 온돌방은 모두 3칸인데 ‘ㄱ’자로 꺾여 있어 안마당을 향한 전망이 잘 고려된 특이한 배치 형식을 보인다. 안방을 북쪽에 두지 않고 남쪽에 둔 것도 남쪽 창을 통한 채광을 고려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반적인 관념을 벗어난 것이다.
별당이자 제청(祭廳)인 금역당은 ‘ㅡ’자형 겹집으로 남쪽은 겹 4칸으로 밀집형 온돌을 구성하였고, 북쪽 4칸은 칸막이 없는 대청으로 되어 있다. 대청의 대들보에는 ‘임연재(臨淵齋)’, ‘도목촌(桃木村)’이라는 이황의 친필 현판이 걸려 있다.
사당은 엄정한 격식을 잘 갖춘 건물이며, 사당 뜰의 정원수도 격조가 있다. 단층 맞배기와지붕집으로 양측 박공 면에는 풍판을 달았다.
4. 관련인물
1) 백죽당(栢竹堂) 배상지(裵尙志, 1351~1413)
선생의 본관은 흥해(興海)이고 호는 백죽당(栢竹堂)이다. 아버지는 흥해군(興海君) 배전(裵詮)이고 어머니는 일직손씨로 정평공(靖平公) 손홍량(孫洪亮)의 딸이다.
백죽당 선생은 1351년에 현재의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으며 일찍이 고려 말 성리학의 중심에 있었던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문하에 나아가 수학하였고, 음사(蔭仕)로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를 지냈다.
정국이 혼란하여 머지않아 변혁이 있을 것을 깨닫고 사직한 뒤 안동 금계촌(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우거하였다. 배상지는 집 주위에 추운 겨울에도 시들지 않고 꿋꿋한 절개를 보여주는 잣나무와 대나무를 심어 자신의 뜻을 나타내고 그 집을 백죽당(栢竹堂)이라고 했다. 금오산(金烏山)에 은거하던 야은(冶隱) 길재(吉再) 교유하면서 지조를 지키니 후인들이 전조(前朝)의 절의지신(絶義之臣)이라 칭송했다.
선생은 1413년에 졸하였고, 백죽당실기 2권 1책이 있다. 사림의 발의로 금계동에 경광정사(鏡光精舍)를 짓고 사당을 세워 선생의 절의를 기렸고, 1690년에 병조판서에 증직되었으며 경광정사가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2) 배삼익(裵三益, 1534~1588)
선생의 본관은 흥해(興海)이고, 자는 여우(汝友)이며, 호는 임연재(臨淵齋)이다. 아버지는 충좌위부사과(忠佐衛副司果) 천석(天錫)이고, 어머니는 연일정씨(延日鄭氏)로 세호(世豪)의 딸이다.
안동에서 세거했으며, 퇴계 이황의 문인이다. 1558년에 생원이 되고, 1564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의 학유(學諭)·학록(學錄)·학정(學正)·박사를 거쳐 호조좌랑이 되었다. 1575년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형조정랑이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그 뒤 외직인 풍기군수와 양양부사를 지내고, 1583년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를 지냈다. 뒤에 여러 번 자리를 옮겨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사헌부헌납 겸 춘추관기주관(司憲府獻納兼春秋館記注官) 등을 역임하였다. 1585년 승정원동부승지 겸 경연참찬관 이래 상호군(上護軍)이 되었다. 1587년 진사사(陳謝使)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다음 해 황해도에 흉년이 들자, 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황해도관찰사로 구황에 힘쓰다 병이 깊어 사직하고 돌아오는 길에 타계하였다.
선생은 장서가로 후세에까지 이름을 남겼고 필법이 힘찼다고 한하며 임연재집 6권 3책이 있다.
3) 배용길(裵龍吉, 1556~1609)
선생의 본관은 흥해(興海)이고 자는 명서(明瑞)이며 호는 금역당(琴易堂) 또는 장육당(藏六堂)이다. 아버지는 관찰사 삼익(三益)이며,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로 신신(藎臣)의 딸이다.
1575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585년)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안동에서 의병을 일으켜 김해(金垓)를 대장으로 추대하고 그의 부장으로 활약하였다. 1594년 세마(洗馬)의 직을 받고 이어 시직(侍直)·부솔(副率)을 지내고, 1597년 정유재란 때는 화의에 반대하는 상소를 하였다.
1602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이듬해 예문관의 검열과 대교(待敎), 1606년 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한 뒤 1608년 충청도도사를 지냈다.
김성일(金誠一)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이어 류성룡(柳成龍)·조목(趙穆)·남치리(南致利) 등을 사사하였다. 천문·지리·율력(律曆)·병전(兵典)·의약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었고 특히 역리(易理)에 밝았다고 한다. 금역당집 7권 4책이 전한다.
5. 전하는 이야기
1) 자식 교육 이야기
백죽당 배상지 공은 고려 말 음사로 벼슬을 시작하여 통훈대부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를 지냈다. 공은 고려의 국권이 흔들리게 되자 벼슬을 버리고 동지 70여명과 함께 두문동에 들어가 칩거하다가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은거하면서 주위에 대나무를 심어놓고 자신의 호를 ‘백죽’이라 하였다. 고려가 망하자 끝까지 불이지절(不二之節)을 지켰다.
백죽당 공은 지조 높은 선비요 덕망을 갖춘 교육자였다. 아들들을 교육함에 있어서 교과 과정이 엄중하면서도 대하는 태도는 너그러웠다. 시를 지어 아들을 훈계한 이 이야기는 600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백중당 공의 아들인 둘째 배환(裵桓), 셋째 배남(裵楠), 넷째 배강(裵杠) 등의 3형제가 어려서 죽림사(현재 금계리 죽림정사 자리)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을 때, 하루는 셋이 기녀를 데리고 놀고 있는데 아버지가 불시에 방문하였다. 부친이 찾아오자 얼른 기생을 이불에 감싸 방구석에 밀쳐두고 세 아들은 몸 둘 곳을 찾지 못했다. 이 때 배상지는 아들을 훈계하는 시를 지어 벽에다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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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배일배부일배(一裵一裵復一裵) 배하나, 배하나, 또 배하나 |
첫 구절은 세 아들들이 ‘한잔 먹고 또 한잔 먹세(一杯一杯復一杯)’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세 사람의 배씨 선비들이 모여 공부하는 곳에 춘풍, 즉 술기운이 만연하다는 말이다. 셋째 구절은 대나무(竹)의 이미지는 곧다. 그래서 선비가 즐겨 이와 벗해야 하나 그러지 못함을 지적하고 있다. 넷째 구절은 갑작스럽게 수습해 방구석으로 밀쳐둔 기생을 풍자한 것이다.
강함과 유함을 조화롭게 써서 아들을 훈육한 결과로 뒷날 큰 아들 배권(裵權)은 음사로 벼슬에 올라 사헌부 지평을 지냈고, 나머지 셋은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둘째 배환(裵桓)은 관찰사, 셋째 배남(裵楠)은 사헌부 감찰, 넷째 배강(裵杠)은 조정랑을 지냈다. 또한 배상지의 동생 배상공(裵尙恭) 또한 문과에 급제하여 전서(典書)가 되었다.
이처럼 배상지의 동생과 아들 손자들은 모두 크고 작은 벼슬을 하였는데, 그들 중에 문과에 급제한 사람이 6명이나 되어 향촌의 유력한 가문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래서 이로부터 안동 지방에서는 ‘배문남무(裵文南武, 배씨들은 문과, 남씨들은 무과가 많이 났다)’라는 말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2) 상여 이야기
지금부터 400여년 전 안동시 예안면 도목리는 무릉도원경 같이 산수가 수려하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이곳에 이황의 제자로 학문이 높은 배삼익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학문에 깊은 조예가 있었고, 꾸준히 정진하며 과거 시험에 응시했다. 분명 자신만만하게 응시를 했는데 그만 낙방하고 말았다. 배삼익은 고향으로 돌아와 낙심천만하여 두문불출 일체의 방문객을 끊고 시름에 잠 긴 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마을에 한양에서 손님이 찾아 내려왔다. 방문객은 배지개 배지개 하며 누구를 찾는 듯했다. 배삼익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 사람을 청해들이니 그는 이 고을에 사는 배지개 라는 사람이 진사 시험에 등과를 했는데 도무지 사람이 나타나질 않아 직접 찾아 나셨다.라고 하였다. 이 고을에서 과거를 본 사람은 자신뿐인 것을 아는 배삼익은 이상하게 생각하며
“그러면 혹 그 글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하니
손님은 “물론이지요. 하도 흘러 써서 사실은 저 같은 사람은 잘 읽지도 못하겠습니다마는…”
손님이 내미는 글을 보니 바로 과거 시험에 자신이 냈던 글이 아닌가! 이름을 너무 흘러 써서 삼익이 꼭 지개로 보이는 것이었다.
이렇게 등과를 하게 된 배삼익은 선조 21년에 황해도 관찰사와 병마수군 절도사로 임명되어 황해도에 부임했다. 서해안이 8~9년간의 심한 가뭄이 들어 기근이 날로 심해지자 황해도민의 민심을 파악하고 구휼을 하라는 어명을 받들고 부임한 그는 고을을 살펴보고 그 참상에 매우 놀랐다. 많은 부하를 풀어 그 지방의 어려움을 샅샅이 보고토록 했다. 해주에는 버린 아이들이 뼈가 앙상하여 그냥 돌아다니며 울고 있으며, 아녀자들은 남편이 도망가고 굶주림에 지쳐 통곡들을 하며 길바닥에 너부러져 있었고, 재령 등지에는 오히려 걸인의 수가 줄어들고 있는데 이는 아사하는 까닭이며 기타 지방에서는 살인자가 많은데 이는 사람을 잡아먹기 때문이었다.
배삼익은 양곡을 모두 풀어 백성에게 나누어 주며 구황식물을 적극 재배하게 하는 등 주야로 고민하며 민생구제에 온 힘을 다하였다. 곡식 종자도 없고 나라의 부역과 세금은 그대로 상납해야 하는 어려움을 괴로워하던 중 옥문을 모두 열고 모든 죄인을 방면하며 그들을 부역에 써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자니 몸이 말이 아니었다.
드디어 그는 병이 나서 농토를 살펴보러 나갔다가 졸도하고 말았다. 나라에서는 환조하라.는 어명을 내려 특별히 사인교를 보내 주었다. 병이 들어 운신을 못하여 사인교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1588년 7월 해주 청단역에서 55세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임금은 그의 충절을 가상히 여겨 상여를 하사하였다. 그 상여에 시신을 싣고 관군에 의해 봉화면 사평리에 운구를 모셨다. 그 후 그 상여와 사인교는 배씨종택에 가보로 전해져 내려온다고 한다.
- 글쓴이 : 박장영
- 현 안동민속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전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 콘텐츠연구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