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편해문_아시아의 아이들 놀이를 찾아서]한여름 바람이 그립고 연(鳶) 또한 그렇지
- 편해문(hm1969@hanmail.net)
한여름 바람이 그립고 연(鳶) 또한 그렇지
이곳은 인도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이다. 여기에 온 이방인들은 이내 숙연해진다. 강가에는 화장하는 모습을 자주 그것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고, 그 냄새 또한 피할 수 없이 코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곳을 찾은 인도 사람들은 너무나 행복해한다. 바라나시를 흐르는 갠지스 강 때문이다. 이 강은 ‘강가 여신’의 몸이라 나쁜 것들을 흘려보내도 조금도 더럽혀지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들리는 말에는 민물 돌고래가 살 정도로 깨끗한 물이라고 하지만 이방인들이 보기에 물은 탁하다.
강 아래쪽에 있는 화장터에서는 시신 타는 냄새와 함께 가끔 시신의 머리와 배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가끔은 덜 탄 시신이 강물에 떠내려오고, 개들은 덜 탄 시체를 찾아 근처를 맴돌며 어슬렁거린다. 인도 사람들은 그 물에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하고, 더러 마시기도 하며 플라스틱 통에 물을 길어 고향으로 가져간다. 갠지스 강물은 모든 것을 정화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도는 믿음이 중요한 나라이다.
이곳을 찾은 다른 나라 여행자들은 너나없이 살고 죽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잠기는 것 같다. 나 또한 슬픔과 두려움과 삶의 덧없음에 짓눌려 화장터를 스쳐 지나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연이었다! 어디서 누가 실을 감아쥐고 날리고 있는지 다 모를 정도의 많은 연이 바라나시 하늘에 떠 있었다. 강가에서, 집 옥상에서, 화장터 굴뚝 아래에서, 계단에서, 심지어는 배 위에서까지 아이들이 연을 날리고 있었다.
바라나시에 가면 꼭 한 번 연을 날려보기를 권한다. 갠지스 강가의 화장터에서 뿜어 올라오는 연기, 그리고 그 위를 나는 아이들이 띄운 수많은 연의 겹침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연을 날리는 아이들은 내게 삶에 너무 심각해지지 말라고 말하는 듯했다. 놀아라. 놀아라. ‘오직 살고 오직 놀아라.’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죽음과 삶이, 늙음과 젊음이, 고통과 놀이가 스쳐 지나가면서 함께 어울리는 풍경을 만들어내는 곳이 갠지스 강가이다.
화장터에서 타고 있는 시신 앞에서 너무 마음 죄지 말고, 고개를 들어 하늘에 뜬 그 많은 연과 연을 날리고 있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면 삶은 또 다른 기운으로 넘칠지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런 기운을 아이들과 하늘에 뜬 연으로부터 받았다.
물에 빠뜨릴 듯 강바닥으로 내리꽂다가 다시 하늘로 솟구치게 하는 빛나는 아이들의 연 다루는 솜씨란 신기에 가까웠다. 전후좌우 연 머리가 방향을 바꿀 때 재빠르게 실을 잡아당겨 우리나라 방패연처럼 마음대로 움직이는 연을 가만 보니, 모양은 우리나라 가오리연이지만 연살 붙이는 순서가 기둥살을 붙이고 허릿살을 붙여 우리와 조금 달랐다. 가오리연에서 꼬리를 떼 내어 방패연의 자유로움을 얻은 연, 그러나 생각해보라. 꼬리가 없는 가오리연을 하늘에 띄울 수 있겠는가. 나도 연을 날려보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인도는 아이나 어른이나 기술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곳인 모양이다. 아이들 놀이도 어른의 일도 기술이 있어야 하니 말이다.
하나에 1~2루피(1루피는 우리나라 돈으로 20-30원 정도) 하는 연, 또 1~2루피씩 받고 끊어서 파는 연실. 잘 사는 집 아이들은 가게에서 사서 날리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만들거나 다른 아이들이 떨어뜨린 연을 주워 풀로 붙이고 종이로 때워 날린다. 이렇게 한국을 떠나 멀리 와서 보는 연은 또 얼마나 반가운지…….
갠지스 강 이편이 구원받은 땅이라면 강 건너편은 버림받은 땅이라 한다. 그러나 건너편 불가촉 천민촌에 사는 아이들이 이편을 향해 연 날리는 모습을 보면서 놀이란 또 이런 경계에서마저 자유로운 것임을 알겠다. 바라나시를 벗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의 연은 스르르 자취를 감춘다. 바라나시 아이들은 왜 그토록 연을 많이 날리는 것일까. 갠지스 강바람이 있어서일까……. 나는 바라나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축복이 아니라 하늘에는 연, 땅에는 자치기!
바라나시에서는 매년 1월 14일을 앞뒤로 동틀 무렵부터 저물녘까지 큰 연 축제가 벌어지는데 우리나라의 송액연처럼 마지막 날에는 모든 연줄을 끊어 하늘로 날려 보낸다고 한다. 이즈음에는 인도 전역에서 연을 날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바라나시는 일 년 내내 연을 날린다. 얼마나 연을 많이 날리는지 연 가게만 모여 있는 상가가 있을 정도이다. 인도 북부 구자라트에서는 규모가 상당히 큰 연 축제가 벌어진다. 어쩌면 이렇게 우리와 연을 날리는 시기와 풍습이 똑같은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상할 것도 없지 않은가. 아이들은 날리고 싶으니까 말이다. 날리고 싶은 것이 아이들의 본성이고 인간의 본성 아니겠는가. 무엇이든 지금 날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 아이와 사람은 아플 수 있다.
놀이를 찾아 아우랑가바드를 돌아다니다가 숨이 멎을 것 같은 풍경과 맞닥뜨렸다. 골목 모서리를 꺾어 들어서는데 앞에 커다란, 우리나라로 치면 당산나무 정도 되는 나무가 앞을 턱 가로막는데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더니 눈물마저 핑 돌았다. 나무를 뒤덮고 있는 무수한 연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연나무라고 해야 할까. 연들이 나무의 열매처럼 매달려 있었다. 도대체 이 동네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연을 날렸기에 저 큰 나무가 온통 끊어진 연으로 뒤덮였단 말인가. 정월 대보름에 줄당기기가 끝나면 그 줄을 당산나무에 감아놓은 모습이 겹쳐 떠오를 정도로 이 나무는 연으로 뒤집어 발라놓은 듯이 보였다. 놀이가 되려면 이렇듯 여러 아이와 여러 사람이 절대적인 시간을 쏟아 부어야만 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경북 의성에 사시는 할아버지께 연을 만들고 날리는 법을 배우던 때가 생각난다. 할아버지께서 태어나기 전에 어른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살림살이도 넉넉지 못했다고 하셨다. 그런 소년이 연을 만나 다른 세상을 알게 되었다고 하셨다. 어린 시절, 땅 위에 할아버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연을 날리는 찰라 연 아래 온 세상이 내 것이 되는 느낌이었다고 하셨다.
이런 사무치는 기억이 지금까지 연을 손에 놓지 않고 계신 까닭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놀이 하나가 참 대단한 몫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도 연줄의 팽팽한 기억이 아직 손끝에 남아있는 어른은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낸 사람이다. 매운 겨울바람에 손이 얼어 터지는 줄도 모르고 밖에서 연을 날리며 우리만큼 하늘을 오래 보았던 세대도 없을 것 같다. 어른이 되어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힘 또한 바로 이런 작은 놀이에서 길러진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이런 놀며 길러지는 힘이 아닐까. 날이 덥다. 연을 날릴 수 있는 바람이 그립다. 바람이 불면 나는 아이들과 연을 만들어 날리리라.
- 글쓴이 : 편해문
- 어린이책 작가, 창작과비평사 ‘좋은 어린이책’ 대상, 어린이도서연구회 자문위원,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상임위원,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전문위원,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그랬어 편집위원. 쓴 책으로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어린이 민속과 놀이문화』,『옛 아이들의 노래와 놀이 읽기』, 『아기를 주시는 삼신할머니』,『산나물아 어딨노』가 있고, 전래동요를 음반과 함께 펴낸 『께롱께롱 놀이노래』, 『동무 동무 씨동무』, 『가자 가자 감나무 』가 있다. 아시아 아이들을 담은 사진집『소꿉』을 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