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황구하_시로 거니는 상주]공갈못, 연밥 따는 노래
- 황구하
“황구하 시인, 이쯤에서 우리 상주 공갈못 노래 한번 들어봅시다.”
저만치서 선배시인이 소리치며 얼른 일어나라는 손짓을 합니다. 가까운 시인의 시집 출판기념행사 뒤풀이 자리였지요. 둘레둘레 모여앉아 이야기를 풀어내던 시인들 웃음소리가 끊어지다 이어지다 하더니 무언가 또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주춤주춤 그냥 넘어가도 될 분위기가 아니었지요. 옆에서 따라주는 술기운을 빌려 벌떡 일어나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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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함창 공갈못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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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부르는 노래 가락에 맞추어 시인들은 탁자를 두드리거나 박수를 치고 또 몇몇은 함께 목청을 돋우었습니다. 엉겁결에 우리나라 대표적 민요의 하나인 이 채련요(採蓮謠)를 부르면서 저는 저 스스로에게 좀 놀랐습니다. 고백건대 이 노래를 소리 내서 불러본 건 처음이었거든요. 신기하게도 노랫말과 장단이 그냥 소르르 풀려나왔습니다. 한편 또 스스로에게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발 딛고 사는 땅의 노래를 지금까지 목청껏 불러본 적이 없었다니요.
채련요는 상주 함창(현재 상주시 공검면)의 공갈못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민요입니다. 현재 국문학사는 물론 세계적인 민요로 인정받은 공갈못 노래 ‘채련요’는 ‘상주 모심기 노래’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요. 아마도 ‘상주 모심기 노래’가 경북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때 중간에 끼워진 듯합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이 노래는 말 그대로 ‘모심기 노래’가 아닌 채련요, ‘연밥 따는 노래’입니다. 상주의 역사와 자연, 그리고 삶을 토대로 생성된 토속성 짙은 이 ‘연밥 따는 노래’가 앞으로는 본디 이름으로 온전히 자리매김 되어 불리어지면 좋겠습니다.
채련요는 그 어느 민요보다도 아름다운 가락을 지녔습니다. 술술 넘어가는 흥겨움과 함께 처연하면서도 슬픈 가락이 잘 버무려진 애틋함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익숙하게 느껴지는단순한 품새까지 거느려 한번 듣거나 따라 부르면 곧바로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제가 그리 쉽게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그동안의 귀동냥, 눈동냥이 한몫했을 테니까요.
민요는 민중들의 삶에서 저절로 생겨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집니다. 그래서 직업 ․ 풍속 ․ 놀이 등 민중의 희로애락과 따로 뗄 수 없는 끈끈한 숨결이자 족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지역이나 부르는 사람의 상황과 취향에 따라 즉흥적으로 달라지기도 하고요. 채련요 역시 지금까지 불리어 전해져 내려오는 동안 그 내용과 형식이 여러 가지로 발전 ․ 변이되었는데 그 내용만도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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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함창 공갈못에/연밥따는 저큰아가/연밥줄밥 내따줌세/백년언약 맺어도고/백년언약 맺어주기는 어렵지않지만/연밥따기 늦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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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노래들은 연밥 따는 처자와, 사랑을 호소하는 남정네가 흥겹게 묘사되기도 하고, 즉흥적이고 반사적이지만 남자보다도 더 대담한 긍정과 현실의 노동을 핑계로 거절하는 여성의 품이 한결 노래의 맛을 살려주기도 합니다. 또 성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파격적인 노랫말까지 보입니다. 성정을 억제하고 감추었던 양반들과는 달리 민중들은 오히려 통쾌하게 노래함으로써 고단한 노동을 견디고 한편 기성도덕에 저항하며 자유와 낭만을 누렸던 것입니다. 인습에 얽매인 여성의 삶 또한 그렇게 능청능청 풀어내는 생명력으로 가슴에 맺힌 눈물과 한을 삭였겠지요.
‘연(蓮. 艹(艸) +連(이어지다))’은 원래 그 ‘열매(연밥)’를 뜻하는 글자이지만, ‘연(憐), 연(戀)’과 발음이 같아 ‘사랑’이나 ‘그리움’을 뜻하는 말로 대신 쓰이기도 합니다. ‘연애(憐愛), 연모(戀慕)’의 뜻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지요. ‘채련(採蓮)’이라는 말은 어쩌면 ‘마음 끌리는 사람을 골라 인연을 맺는다’는 뜻을 은근하게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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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처자들이 이뻤는가벼. 그 처자들 꼬드기느라고 사내들이 오죽이나 공갈을 쳤겄어.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연못에 들어가 연밥까지 다 따 준다하고. 하여튼 처자 꼬드기는데 공갈 안치는 사내는 없다니께. 거 그래서 이름이 공갈못 아녀?” |
제 노래가 끝나고 어느 시인의 농 한 마디에 좌중은 금방 웃음바다가 되었지요. 그렇습니다. ‘공갈’이라는 이름으로 하여 곧잘 재미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가끔 명성을 듣고 찾아온 지인들을 안내해주다보면 ‘공갈치는 못’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해서 꼭 한바탕 웃는 일이 생긴답니다. 아득한 역사를 지닌 공갈못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연밥 따는 노래’의 구성진 가락과 함께 지금도 여전히 북적이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그 증거입니다.(♣)
- 글쓴이 : 황구하
- 충남 금산에서 태어났다. 영남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2004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 『물에 뜬 달』이 있으며 현재 반년간지 『시에티카』 편집국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