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중남미 순회공연을 하던 중 볼리비아에서 인형극단 'Paralamano'의 후안과 판초를 처음 만났다.  볼리비아의 남쪽 지역 수크레와 코차밤바의 공연예술축제에서 우리 단체의 연극 <체 게바라>를 초청하였는데, 후안과 판초도 그 때 그 곳의 축제에 초청되었던 것이다. 바로 그 때, 그곳에서 우리의 우정과 기쁨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 인형극 '소박한 이야기'

 

인형극 공연 <소박한 이야기들 Simple Stories>는 서로 다른 4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작품으로 폭력과 전쟁, 권력의 남용, 고독 등의 문제를 다루는 동시에 웃음과 소박한 희망도 건네주고 있었다. 나는 그때, 인형을 조작하는 배우들의 진지한 에너지와 교감했고, 인문학적 깊이가 전해지는 인형극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동안 한국에서 접했던 인형극들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인형극이거나 재미있고 교육적인 작품이라고 선전하고 있는 인형극들이 대부분이었고, 병든 어른들이 아이들 앞에서 코맹맹이 소리를 내가며 유치하게 장난치는 것처럼 보이는 인형극들이 많아서 나는 애써 인형극을 찾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Paralamano' 친구들의 인형극 덕분에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오염된 이미지들을 씻어낼 수 있었다. 

 

두 배우, 후안과 프란시스코는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몸을 풀고 파차마마에게 기도를 올린다. 그들이 삶의 매 순간마다 언급하는 대지의 여신 파차마마는 하나의 종교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삶 속에서 함께 호흡하는 생명의 기운이요 정신이라고 했다. 이들이 공연에 앞서 갖는 의식은 인형극이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라 인형을 통해 신성과 만나는 제의이기 때문일 것이다. 

 

후안과 판초 또한 우리의 공연 <낭만제의 ‘체 게바라’>를 보고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후안은 볼리비아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본래 국적은 아르헨티나라고 했다. 우리 공연에서 ‘5월 광장’ 어머니들의 모습을 담은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우리는 그들의 작품에 감동하고, 그들은 우리의 작품을 가슴으로 끌어안으면서 서로가 오랜 옛날부터 알고 지내왔던 친구처럼 반가워했다. 어쩌면 같은 행성에서 지구라는 행성으로 특별한 과제를 안고 태어난 형제와도 같이, 우애와 기쁨으로 서로의 작업에 애정을 갖게 된 것이다.  

 

당시, 우리는 중남미 현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가수들을 섭외해서 우리 공연에 참여시켰는데 볼리비아 수크레에서 공연에 참여했던 친구가 코차밤바에 동행을 할 수 없었다. 마침, 후안과 판초가 코차밤바의 축제에서도 공연을 한다고 하면서 자신들이 노래를 하겠다고 했다. 후안은 원래, 인형극을 시작하기 전에 길거리에서 음악을 하는 히피였고, 판초 역시 기타연주와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 공연에 삽입되는 노래 악보들과 스페인어로 된 가사를 전해주면서, 음원은 이메일로 보낼 테니 연습을 하고 일주일 뒤, 코차밤바에서 만나자고 했다. 

 

코차밤바의 ‘브레히트 연극제’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극장 뒤편 공터에서 우리는 그들이 연습해온 연주와 노래를 들었다. 거의 정확하게 연습을 해왔다. 눈물겹도록 반가웠다. 한국에서 떠나오기 전, 우리를 초청한 각 나라 코디네이터들에게 악보와 음원을 보냈다. 미리 연습을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제대로 연습을 한 곳이 거의 없었는데, 후안과 판초는 자신들의 공연처럼 정성을 다해 준비해온 것이다.  

 

후안 판초와 함께 한 공연은 성공적이었고 기회가 된다면 그들을 한국으로 초청하겠다고 말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공모한 국제 레지던스 운영을 지원하는 분야에 나무닭움직임연구소의 ‘환경연극 프로젝트’가 선정되어 해외 예술가들을 초청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우리는 후안과 판초를 초청할 수 있는 자원이 마련되었고, 후안과 판초는 2009년 환경연극 프로젝트에서 ‘공간과 서사’라는 주제로 지역의 전설을 소재로 한 인형극 작업을 함께 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들의 작품이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마을 곳곳에 선보여지고 지역 주민들이 그 따뜻하고도 아름다운 공연을 만나볼 수 있길 바라면서 컬처라인과 함께  찾아가는 공연여행도 진행하였다. 

 

후안과 판초의 공연은 마을 공동체가 있는 곳에서 마을 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며 진행되었고, 지역 주민들은 기쁨과 우애, 품위가 있는 인형극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그들의 공연을 좋아하고 감동했다. 

 

2010년에도 나무닭움직임연구소의 환경연극 프로젝트에 초청되어 한국에 두 번째로 방문하였고, 올해는 컬처라인의 초청으로 경상북도 북부권 11개 시군을 순회한다. 

 

올해는 세 개의 작품을 공연하는데, 각 지역마다 관객의 연령과 선택에 따라 한 작품씩 올려진다. 

 

▲ 인형극 '파란눈'

 

<파란눈>은 주로 유아 및 어린이들을 위한 작품이다. 못생긴 파란 눈의 거인이 따돌림을 당하여 외로워하다가 자신처럼 못생긴 빨강머리 여자거인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로 거미, 토끼, 요정, 부엉이 등 다양한 인형들을 볼 수 있는 재밌는 작품이다. <소박한 이야기>는 현대인의 고독과 폭력, 지구촌의 전쟁을 고발한 작품으로 4개의 작은 이야기를 다양한 색깔의 인형으로 풀어낸다. 올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징글버>는 크리스마스에 배고픔과 고단함을 달래야하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크리스마스의 화려한 거리에서 신문을 팔아야하고 구두닦이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야하는 어린 존재들, 뒷골목 쓰레기통에서 먹다남은 음식물을 뒤져가며 배고픔을 달래야하는 가난한 영혼들을 볼리비아의 민속악기와 음악으로 달래어준다. 

 

볼리비아는 남미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라고 한다. 나 역시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츠로 공연을 하러 갔을 때, 호텔로 들어가는 골목에서 낮에는 돈을 구걸하고 밤에는 쓰레기를 뒤지던 아기 업은 여인을 매일 보아야 했다.  

 

볼리비아 인형극단 ‘Paralamano'의 후안과 판초는 그렇게 가난한 이들을 끌어안고 함께 우는 인형극을 공연한다. 가난한 이들을 향한 우정으로 만들어낸 그 소박하고도 따뜻한 인형극들로 인류가 함께 보듬어야할 것이 무엇인지, 인간이 품위를 잃지 않고 살기 위해 어떠해야할 것인가를 묻는다. 

 

 

8월 13일, 청송 공연을 시작으로 컬처라인과 함께하는 볼리비아 인형극 여행을 떠났다. 한 여름에 만나는 크리스마스 이야기, 파란 눈을 가진 못생긴 친구의 이야기, 전쟁과 고독으로 가슴 움츠린 사람들의 소박한 이야기가 경상북도 북부지역에 살고 있는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기쁨과 우정을 안겨주는 인형극 여행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