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우_의성 문화의 향기]임진왜란과 견비(犬碑)
• 김종우 2012-08-31

임진왜란과 견비(犬碑)

 

 

필자는 의성문화원장 재임 시에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의성에서 훌륭하게 기릴 여인상을 뽑아 『불멸의 의성여인들』이란 자료집에서 선조의 얼을 다시 한 번 새기고, 청소년과 여인들에게 귀감을 심어 줄 수 있는 사례를 이야기로 엮어 발간하였다. 그 중에 임진왜란 당시 정조를 지키기 위해 둘 딸과 함께 순절한 박씨 부인과 그 집에서 키우던 개에 관한 슬픈 일화를 소개 해볼까 한다.

 

경북 의성군 봉양면 장대리에는 이 마을 정태을(鄭太乙)의 아내 박씨(朴氏)를 기리는 열녀비와 박씨를 생전에 따르던 충견의 비(碑)가 나란히 세워져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찡하게 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침략한 왜구는 부산에서 3진으로 나누어 진격하였다. 그 중 제2진이 영천을 거쳐 의성군 금성면 탑리를 지나 봉양면 장대리에서 진을 치게 되었다. 이때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주위로 피난을 갔으나 미처 피난가지 못한 정태을(鄭太乙)의 아내 박씨(朴氏)와 두 딸은 집안에 숨어 있었다. 세 모녀는 왜구에게 발각이 된다면 그들에게 무참히 유린당하는 치욕 대신 차라리 순절을 택하여 가문의 명예를 지키고자 서로가 뜻을 함께 하고 있었다.

 

잔인무도한 왜구들은 집안을 샅샅이 뒤진 끝에 세 모녀를 찾아내어 해하려 하자, 어머니 박 여인은 굳은 마음을 먹고 부엌칼로 두 딸을 사정없이 힘껏 찔러 숨지게 한 뒤 그 자신도 스스로 자결을 하였다.

 

열녀 박 여인의 집에는 기르는 개(기록에는 鄭家狗라 전함. 이하 정가구라 칭함)가 한 마리 있었다. 그 개는 비록 동물이지만 주인과 함께 가족처럼 지냈던 충견이었다. 박 여인과 두 딸이 정조를 지키기 위해 순절을 하자 이들을 따랐던 충견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슬픈 나머지 주인의 시신 곁을 떠나지 않았다. 鄭家狗는 선혈이 낭자한 시신 주위로 까마귀와 솔개 떼들이 시신을 훼손하려 하자 소리 내어 짖으면서 시신을 지켰다. 鄭家狗는 물 한모금 먹지 않고 며칠을 까마귀 떼와 짐승들로부터 시신을 지키다가 박 여인의 품에 기댄 채 굶어 죽게 되었으니 말로는 형언하기 힘든 눈물겨운 현장이었다.
 
왜구가 물러가고 피난 갔던 마을 주민들이 돌아와서 보니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기막힌 광경이었다. 주민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들 세 모녀의 시신과 개의 시신을 정성들여 수습하고 고이 장사를 지냈다.

 

그 후 임진왜란의 긴 전쟁이 끝난 후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서  박 여인은 “열녀 정태을 처 박씨지려(烈女鄭太乙妻朴氏之閭)”란 정려표를 받게 되었다. 또한 의성 현령인 서명부는 이 사실에 크게 감동하여 萬曆 四十年(1612년)에 그의 기부금으로 열녀비(烈女碑)와 의구비(義狗碑)를 세웠다.

 

이 두 점의 비는 4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봉양면 장대리 조문로 길가에 나란히 서 있으며 오가는 길손들에게 인간과 의로운 개의 애틋한 사연을 귀감으로 전해주고 있다.

 

올해로써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420년, 7주갑(周甲·1주갑은 60년)이 되는 해이다. 임진왜란은 조선 선조 25년(壬辰년·1592년) 4월 13일 대마도를 출발한 700여 척의 일본 군선이 부산 앞바다를 침공하면서 시작되어 선조 31년(1598년)까지 이어진 한·일 전쟁이었다. 일본은 개전 초반에 파죽지세로 한성을 포함한 한반도의 상당 부분을 점령하였다. 그 후 개전 1년여 만에 창원 이남으로 패퇴하였으며, 의병과 조선군, 그리고 명나라의 지원으로 7년 만에 패배하여 완전히 철수한 전쟁이다.

 

7년간의 전쟁으로 인하여, 어렵게 나라는 지켜내었지만 그 피해는 한국사, 민족사에 엄청난 상처와 손실을 가져다 준 잊혀 지지 않는 질곡의 역사이다. 암울했던 그 시대의 열녀 박씨 부인과 충견의 소중한 이야기가 널리 회자되길 기대 한다.

 

烈女鄭太乙妻朴氏之閭 열녀정태을처박씨지려   -비 뒷면 비문- 壬辰倭寇見朴氏欲脅汚朴氏及二娘同死守 임진왜구견박씨욕협오박씨급이낭동사수 尸逮烏鳶事聞旌閭年久閣頹令徐命敷氏捐 시체오연사문정려년구각퇴령서명부씨연 捧立石爲文 幾 賴而永傳吁亦盛哉 봉입석위문 기뢰이영전우역성재 鄭娘 정낭 鄭娘 정낭 萬曆 四十年 만력 사십년 上之 四 상지 사    <국 역> 임진년에 왜구가 나타나 박씨를 위협하여 더럽히려 하여 박씨는 두 딸과 함께 자결하니 이들의 시신이 까마귀와 솔개에게 미치는 것을 지키다 개도 함께 굶어 죽으니 이 일이 조정에 알려졌다 해가 오래되어 열부각이 이에 힘입어 오래 전할 것이다 아 또한 성대하리라. 만역 사십년(1612)에 세우다.

 

 

 

義狗碑(의구비)   鄭太乙妻烈女朴氏所養者也壬辰倭變邑民避亂 정태을처열녀박씨소양자야임진왜변읍민피란 山谷者爲賊所屠殺僵尸相枕籍盡爲鳥鳶狐狸所 산곡자위적소도살강시상침적진위조연호리소 噉食獨朴氏殉節之後狗在尸側凡爲獸之宋輒卽歐 담식독박씨순절지후구재시측범위수지송첩즉구 遂故尸得金完人皆歎異(出處 義城縣誌) 수고시득김완인개탄이   출처: 의성현지 <국 역> 정가구는 정태을의 처인 열녀 박씨가 기르던 개이다. 임진왜란 때 읍민들이 산골에 피난했다가 왜적에게 도륙당하여 죽은 시체가 서로 엉겨 죄다 까마귀·솔개·여우들의 먹이가 되었는데 홀로 박씨만은 순절한 뒤에 개가 시체 곁에 있으면서 모든 날짐승을 오는 즉시로 몰아냈기 때문에 시체가 온전하게 보존되어 사람들이 탄식하며 이상히 여기었다.

    

▲ 의성군 봉양면 장대리에 나란히 서 있는 두 점의 비석

글쓴이 : 김종우

1942년. 의성 출생. 현. 르네상스문흥 작은도서관 관장 조문국연구소 소장 박약회 의성군 지회장 전. 동다문화연구소장 조선통신사 문화산업회 이사 대한서화예술협회 이사 의성문화원장 한국문화원연합회 경북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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