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남효선_동해연안의 문화여행]장 담그기
- 남효선
장 담그기
“장맛이 좋아야 집안이 성한다”
장 담그기· 김장은 오롯이 여성 몫...한 해 살림살이 마무리 ‘통과의례’
부네야 네가 할 일 메주 쑬 일이 남았구나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 두소
‘농가월령가’의 동짓달 가사다. “음식 맛은 장맛이 정한다.” 예부터 ‘집안 됨됨이는 장맛으로부터 온다’고 했다. 장(醬)이 맛있어야 모든 먹을거리가 제 맛이 난다는 뜻이다. 흔히 ‘장’이라 하면 ‘간장’을 뜻한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는 ‘간장’, ‘된장’, ‘청국장’, ‘고추장’ 따위를 통 털어 일컬으며 이를 ‘장류(醬類)라 부른다. 간장이 ‘장’ 중에는 으뜸이라는 의미이다. 장류는 만드는 재료에 따라 ‘두장(豆醬)’ ‘어장(魚醬)’ ‘육장(肉醬)’으로 나눈다. 일반 가정에서 담그는 장은 ‘두장’을 일컫는다. 두장은 글자 그대로 ‘밭의 고기’로 부르는 ‘콩’으로 만든다.
김장은 동네 품앗이로...메주 쑤기는 집집마다 혼자
음력 시월 보름 무렵이면 가을걷이가 얼추 마무리된다. 나락 수매도 끝나고, 콩걷이, 감자캐기, 고추뽑기, 무 뽑기 등 한 해의 농사가 마무리된다. 가을걷이가 마무리됐다고 여성들의 한해 살림살이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가사노동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외려 농사철보다 더 바쁜 게 동짓달에서 섣달까지다. 전통사회에서 동짓달부터 섣달까지는 새봄이 오기 전의 추운 겨울을 날 겨우살이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특히 여성들에게는 돌아서면 일거리가 생기는 “몸서리나는 계절”이다. 그리고 겨우살이 중 가장 중요한 일이 김장과 장 담그기이다.
김장과 장 담그기는 한 해 살림살이 중 빼놓으려야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일이다. 전통사회에서 김장과 장 담그기는 일을 넘어 한 해 살림살이를 마무리하는 통과의례로 자리매김해왔다. 이는 오롯이 여성들의 몫으로 남는다.
오늘날 핵가족 단위의 도시화가 더 이상 팽창할 수 없을 만큼 거대화됐지만, 그래도 농촌사회에서 김장은 예나 지금이나 마을 주민들 간에 품앗이로 마무리된다. 동네 아낙들끼리 김장하는 날을 받아 품앗이로 집집을 돌며 담근다. 마당 가운데 빙 둘러 앉아 바닷물에 잘 절인 배추에 갖은 양념을 버무리며 아낙들은 온갖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마을의 아낙들이 둥게둥게 둘러앉아 동네를 둘러싼 소문들을 함께 섞어 버무려 놓은 김장 맛은 집집마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만큼 맛이 비슷하다. 양념으로 버무리는 고춧가루 양이 그렇고, 김장에 넣는 생선의 종류나 양도 엇비슷하고, 젓갈의 종류 또한 집집마다 대동소이하다. 더구나 양념을 버무리는 기술 또한 동네 아낙들이 제각각 익혀 놓은 손맛을 가감 없이 한데 버무려놓았음에야.
그러나 장 담그는 일은 대체로 집집마다 개별적으로 이뤄진다. 때문에 ‘장맛은 집집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장 담그기의 첫 순서인 ‘메주쑤기’는 예나 지금이나 집집마다 아낙들 혼자서 처리하는 겨울채비다. 음력 시월 보름 무렵이면 집집마다 콩 타작에 들어간다. 노오랗게 잘 여문 콩을 일일이 성한 놈으로 골라 단지에 담아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갈무리한다.
콩깍지와 콩대는 소가 겨울을 나는데 요긴한 여물이 된다.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콩대를 쌓아두고 가마솥에 푹 끓여 소여물로 끓여낸다. 콩대와 콩깍지로 끓여 낸 ‘소죽(여물)’은 한 해 농사를 마감한 소를 살찌우는 소중한 영양분인 것이다. 좋은 장맛을 내려면 좋은 콩을 선택해야 한다. 메주콩은 주로 황금빛을 띠는 ‘누런 대두’를 사용한다.
"좋은 메주는 장작불 세기 조절에서 결정돼
콩이 붉으스레한 빛깔로 잘 삶기면 수쿠리에 건져 물기를 뺀 뒤, 절구에 넣어 찧는다. 곱게 찧은 메주콩을 삼베보자기에 싸서 사각형이나 둥근 메주틀에 넣고, 깨끗한 버선발로 밟아다진다. 보통 콩 1말이면 메주덩이 4~5개를 만든다. 메주는 장을 만드는 가장 기본이 되는 재료이며, 콩을 삶거나 찌는 방법으로 만든다. 메주는 대개 입동 무렵부터 동짓달 안에 쑨다. 너무 일찍 메주를 쑤면 ‘꺼멓게 떠’므로 ‘바람이 쌀쌀한 동짓달에 쑤’야 제 빛깔이 난다.
가마솥을 잘 닦은 뒤, 메주콩(대두)을 넣고, 물은 메주콩 양의 3배가량을 붓는다. 메주콩을 삶을 때 무엇보다 주의해야 하는 것이 ‘불의 세기’다. 처음에는 ‘센 불’로 끓이다가 점점 ‘약한 불’로 조절한다. 메주콩이 얼추 삶기면, 불의 세기를 조절하면서 솥 두껑을 조금 열어두고 ‘둘릴 때까지’ 약한 불을 유지해 준다. ‘둘릴 때’란 뜻은 ‘삶긴 콩 색깔이 약간 붉은 빛이 날 때’를 뜻한다.
콩이 붉으스레한 빛깔로 잘 삶기면 소쿠리에 건져 물기를 뺀 뒤, 절구에 넣어 찧는다. 곱게 찧은 메주콩을 삼베보자기에 싸서 사각형이나 둥근 메주 틀에 넣고, 깨끗한 버선발로 밟아 다진다. 보통 콩 1말이면 메주덩이 4~5개를 만들 수 있다.
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볏짚을 깐 뒤, 메주 틀로 다진 메주덩이를 낱개로 가지런히 펼쳐놓고 7~8일간 겉이 꾸덕꾸덕하도록 말린다. 겉이 제대로 마르지 않으면, 몸에 좋지 않은 곰팡이가 필 우려가 있다. 메주덩이의 겉 표면이 바짝 마르면, 불이 잘 드는 안방 구들목에 멍석을 깔고 메주덩이를 낱개로 엇대어 쌓아 2주간 ‘메주를 띄운다. 이 때 흰곰팡이나 누런곰팡이가 피는 것이 제대로 띄운 메주이다. 메주덩이가 알맞게 뜨면 짚으로 엮어 바람이 잘 통하는 처마 밑에 걸어두었다가 이듬해 ‘장 담그는 날’에 꺼내어 간장을 다리고 된장을 담근다.
울진 사람들은 정월 열엿새 날을 ‘귀신다는날(귀신날)’이라 하여 하루 동안 일을 하지 않고 쉬는데, 이날 장을 담그면 간장이 더 맛있다고 믿었다. 귀신날에 장을 담그지 못하면, ‘손 없는 날’이라고 여기는 정월 아흐레날, 스무날, 그믐날에 장을 담갔는데, 늦어도 정월을 넘기지는 않았다. 정월에 장을 담그지 못하면 삼월에 담았다. 음력 이월에 장을 담그면 ‘장이 일기(구더기가 생기는 것)때문’에 이달에는 장을 담그지 않았던 것이다.
- 글쓴이 : 남효선
-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안동대학교 대학원에서 민속학을 공부하였다. 1989년 문학사상의 시 부문에서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하였다. 한국작가회의, 경북작가회의, 안동참꽃문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둘게삼』이 있다. 현재 시민사회신문의 전국본부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