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870미터의 청량산은 산세가 아름답고 오랜 역사가 깃들어 있다. 신라의 명필 김생(金生)이 글씨공부를 했다고 전하는 김생굴(金生窟)이 있고, 풍류도를 주장한 학자 최치원(崔致遠)이 수도한 풍혈대(風穴臺)도 있다.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는 청량사를 비롯하여 이십 여개의 암자가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인근 풍기의 군수로 있던 유학자 주세붕(周世鵬)이 청량산을 유람하면서 열 두 봉우리에 이름을 붙였다. 따라서 고대부터 유불선(儒彿仙)의 사상과 관련이 깊은 명산이다. 김대원이 자신이 그린 청량산 그림에 종종 구도(求道)의 길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도 이런 이유다.

 김대원이 그린 청량사 연작 중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작품은 세 점의 대형 산수화다. 가로 4미터가까이 되는 첫 번째 <청량산>(2014)은 골짜기에 안개가 자욱하게 서려 있고, 그 사이로 거대한 산봉우리가 버티고 서있다. 위쪽으로는 멀리 청량산의 여러 봉우리들이 자그마하게 솟아있고, 왼편에는 희미하게 청량사 전각들이 보인다. 아마도 어풍대에서 바라본 장면같은데 풍경을 옆으로 길에 늘어놓아 파노라마 느낌이 든다.

 화면을 가득 채운 커다란 산형은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전보다 자유로운 필묵을 많이 구사하고 과감한 필치와 빠른 운필이 두드러진다. 마르고 젖은 붓질이 여기저기서 교차하는 동시에, 먹의 번짐에 따른 축축한 느낌이 배어나온다. 툭툭 짧게 치는 것 같은 붓질이지만, 원숙한 기량으로 조절하면서 장대한 전체 구도를 재빨리 펼쳐낸다. 숲을 표현하는 마른 붓질에서는 붓털 가닥의 흔적이 남아 있어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필치와 선염이 결합하면서 구체적으로 알아 볼 수 있는 형태가 완성된다. 바위, 나무, 절벽이 커다란 화면에 서로 뒤엉킨다. 화론에서 강조하는 번잡함과 간결함, 텅 빈 것과 가득 찬 것, 가벼움과 무거움의 조화를 눈앞에서 펼쳐 보인다.

 두 번째 <청량산>(2014)도 역시 가로 4미터의 대작인데, 앞의 작품보다는 먹을 더 진하게 사용하여 육중한 괴량감이 두드러진다. 작품에 쓰여진 화제(畵題)에 따르면 오른편에 김생폭포가 있고 아래쪽에 청량정사(淸凉精舍)가 있으며 멀리 청량사가 보인다. 세 번째 대작 <청량산>(2013)은 금탑봉에서 바라보는 장면으로 좀 더 근접한 구도로 인하여 무게감이 더 느껴진다. 또한 여러 색깔을 적극적으로 칠해서 또 다른 분위기를 전해준다. 원래 오른편 절반에 해당하는 부분만 그렸다가, 전체 구도와 균형을 고려하여 왼편 절반에 해당하는 부분을 별도의 종이로 덧붙이고 추가한 것이다. 의도적인 재구성으로 청량산 실경을 다른 시점에서 해석한 것이다.

 어두운 먹색이 강한 뒤의 두 작품을 보면 마치 청량산에 대한 지질학적 보고서 같다. 주름진 산에 담겨져 있는 내적인 리듬과 이것을 둘러싼 표면의 긴장감을 전달해준다. 자연세계의 바탕에 깔려있는 역동적인 구조적 질서를 암시하는 듯하다. 동시에 인간이 세운 건물을 포함시켜 청량산이 간직하고 있는 오랜 역사의 흐름을 알려준다. 그렇다고 낭만적으로 순간을 포착하고 붙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산과 물에 묻어있는 청량산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이들 작품을 마주하고 서 있으면 어느새 청량산에 대한 관심은 내향적으로 방향을 틀어, 구체적이고 특정한 장소가 부각되기보다는, 아늑하고 고요하며 어슴푸레한 느낌의 명상적 분위기에 빠져들게 된다. 이것은 모두 먹의 고유한 성질이 주는 차분한 효과와 섬세함을 극대화 시킨 결과다.

 이들 대작에서 청량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만 정확한 묘사로 현실감을 강조한다. 범종각을 지나 요사채, 선불장, 유리보전, 그리고 오층석탑까지 하나씩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이렇게 원경까지 상세하게 묘사가 가능한 것은 망원경이나 사진기의 도움으로 손쉽게 가능한 일이다. 그의 작업실에서 수원의 화성팔경 시리즈에서 융릉(隆陵)을 그리는 과정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왕릉의 봉분과 주변의 석물을 자세히 묘사할 때 사진을 참조하여 작업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경산수화에서 사실적 묘사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청량산 그림들에서는 사실성보다는 순수한 조형성에 대한 미학적 모색이 더욱 중시된다. 

 이런 추세는 또 다른 작품 <청량산>(2013)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높이 솟은 여러 봉우리를 강조하면서도,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한 하늘다리가 포함된 장면이다. 전체 구도에서 하늘다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그림 한쪽 편에 작게 그려진 하늘다리는 비록 눈에 잘 띠지 않지만, 인공구조물이라서 강한 인상을 준다. 실경산수화를 특정한 시대와 지역에 얽어매고 구체적인 사건과 연관 짓는 장치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능숙한 기법으로 드러내는 붓과 먹의 세계다. 여러 산봉우리를 비슷한 방식으로 묘사한 복잡한 필치에서 추상적인 율동감이 울려 퍼지는데, 사실적인 하늘다리, 소나무의 가세로 추상과 구상의 강렬한 대비효과를 낸다.

 그밖에도 여러 금탑봉, 응진전, 의상대, 고산정 등을 그려낸 많은 소품에서 알 수 있듯이 청량산은 무궁무진하다, 빛, 색채, 안개의 효과와 같이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변화는 각각 다른 풍경을 만들어 낸다. 청량산의 반복하여 그리는 작업은 그만큼 항상 새롭고 어려운 대상에 도전하는 것이다. 

김대원은 집요할 정도로 같은 곳을 여러 번 그린다. 어쩔 때는 한 장소를 일주일 내내 그리기도 한다. 이렇게 청량산을 계속해서 그리는 것은 인상주의(印象主義)의 방법과도 유사하다.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바뀌는 자연의 흐름을 화면에 실어내는 청량산 연작을 통해서 우리는 대자연 속의 산수는 그대로이지만 인간이 느끼는 풍경은 변화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_ 조인수(한국예술종합학교) '김대원의 실경산수화 : 자연에서 배우고, 붓으로 빚어낸 그림' 中에서

김대원金大源

아호 : 창산(蒼汕) · 경운재주인(耕韻齋主人) · 소남재주인(素南齋主人) ․ 푸르뫼

출생 : 1955 경북 안동

학력

1973 경안고등학교 졸업

1977 경희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 졸업 / 미술학사

1982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전공 졸업 / 교육학석사

2012 고려대학교 대학원 한문학전공 졸업 / 문학박사

수상

1982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특선 / 상(想). 인물화

1983 제2회 대한민국미술대전-우수상 / 여운(餘韻). 인물화

1986 제5회 대한민국미술대전-특선 / 망(望). 동물화

1995 제3회 월전미술상 수상

개인전

1983 미도파화랑-서울

1986 백악미술관-서울

1989 롯데미술관-서울

1991 미술회관-서울

1993 현대아트갤러리-서울

1994 수목화랑-서울

1995 갤러리Sun Space-L.A

1996 덕원미술관-서울

1997 서울신문사갤러리-서울

1998 갤러리 삼성프라자-분당

1999 화랑미술제 예술의 전당-서울

1999 수원화성전(모네갤러리-수원)

2000 씨때 갤러리-프랑스 파리

2001 백록화랑-서울

2003 시민회관 전시실-안동

2004 인사아트 프라자 갤러리-서울

2006 월전미술관-서울

2014 수원팔경과 수원성

2014 한벽원 갤러리-서울

교육 및 주요경력

1988~2020  경기대학교 예술대학 한국화학과 교수 역임.

2000~현재 재단법인 월전미술문화재단 이사.

2003~2005 경기대학교 조형대학원 원장 역임.

2009~2011 경기대학교 박물관장역임. 

2006~2008 서울특별시 미술품장식 심의위원역임

2009~1010 한강르네상스 자문위원역임

논문

소정 변관식 회화의 한국적 의의 / 경희대학교석사학위논문(1982)

題畵詩文에 나타난 高麗畵論의 價値觀 硏究 / 동양예술학회(2011)

高麗畵論의 文氣的 繪畵觀 硏究 / 한국서예학회(2011)

高麗時代 山水畵의 動向과 儒家的 審美觀 / 유교문화연구회(2011)

題畵詩文에 나타난 高麗時代 繪畵批評論 / 한국동양예술학회(2012)

고려시대 화론 연구 / 고려대학교박사학위논문(2012)

題畵詩文을 통한 고려 회화의 詩畵一致觀 연구 / 한국서예학회(2012)

제화시문에 나타난 고려시대 회화사조 / 동서미술문화학회(2013)

저역서

중국역대화론(中國歷代畵論) Ⅰ~Ⅴ. 도서출판 다운샘(2004~2006)

집자묵장필휴(集字墨場必攜) 1~8. 공역. 고요아침(2009)

중국고대화론유편(中國古代畵論類編) 1~16. 소명출판(2010)

중국화론집성주석본(中國畵論集成注釋本) 1~5. 학고방(2013~2014)

원림과 중국문화(園林與中國文化) 1~4. 학고방(2014)

조선시대 그림이야기(朝鮮畫論集成) 1~4, 고요아침(2019~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