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가 사랑한 우키요에
FROM JAPAN TO EUROPE
안동문화예술의전당과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는 「고흐가 사랑한 우키요에」전을 통해 세계적 명성의 일본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 다색목판화인 우키요에(???) 거장들의 작품세계와 이것이 19세기 서양미술사에 미친 영향을 조명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이 전시에서는 카츠시카 호쿠사이의 「지방폭포순회」「지방명교기람」「치에의 바다」「호쿠사이 만화」「화조화」,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명소에도백경」, 도슈사이 샤라쿠의「배우화시리즈」 등 총 94점을 소개한다. 본 작품들은 일본우키요에박물관이 보유한 초판 우키요에의 복각화로 에도시대 전통기법을 전수한 우키요에 장인이 원본 그대로 제작한 것이다.
우키요에
‘덧없는 세상의 그림’이라는 의미인 ‘우키요에’란 용어는 작가 이사이 료이(????)에 의해 1661년에 처음 사용되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세계의 무상함을 낭만적으로 해석하여 불교적인 개념으로 차용하였다.
우키요에 화가들은 한정된 시간과 일상사에 대한 인간의 집착을 인식함으로써 그때까지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던 일상의 모습을 직접 표현하였다. 제작 초기에는 마을의 일상생활, 유곽의 창부들, 유명 가부키 배우들, 예술 공연 등의 모습이나 특정 장면을 주제로 많이 담았으며, 이후에 풍경화와 지역의 명승지들도 널리 제작되었다. 우키요에는 목판화인 까닭에 다량 인쇄가 가능했다. 따라서 이것은 싼 가격에 서민들이 길거리에서 쉽게 구해서 손에 들고 살펴보며 즐기는 일본의 대중문화가 되었다.
표현상의 특징
우키요에화가들은 2차원 평면에 단순한 선과 색으로 새로운 형식의 공간을 창출했다. 일상의 찰나에서 포착한 미(美), 대담하고 파격적인 구도와 화면구성, 독특한 면 분할, 중심 사물의 강조, 장식성, 경쾌함, 강한 대비, 명확한 그림체, 뚜렷한 윤곽선, 그림자가 없는 점 등은 표현상의 특징이다.
해외에서의 영향
우키요에는 해외에서의 영향 또한 받았다. 독일에서 처음 만들어진 인공 안료인 ‘베로아이’는 선명한 남색을 표현할 수 있어 가츠시카 호쿠사이 등에 의해 널리 쓰여 졌다. 서양의 원근법도 받아들여졌으나 우키요에 화가들은 원칙에서 벋어나 자신들에게 맞게 변형시켜 수용하였고 의도적으로 원근법을 깬 형태(역원근법)의 작품들도 있다.
서양미술로의 영향
우키요에는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까지 서양 미술 전반에 나타난 일본 취향 및 일본풍을 즐기고 선호하는 현상을 일컫는 자포니즘(Japonisme)의 열기를 만들어낸 원천이기도 하다. 1867년 프랑스 파리 만국박람회에 일본의 미술작품과 도자기, 차 등이 소개되었다. 이때 이들을 감싸는 완충재로 쓰인 우키요에에 구사된 파격적인 요소들은, 당시 새로운 조형 실험에 필요한 혁신의 실마리를 갈구하는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등 유럽 화가들을 크게 자극하였다. 이처럼 우키요에는 19세기 유럽문화 전반에 예술적 영감을 부여한 점에서 중요한 미술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 전시에서는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인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해호, 1853~1890)의 예술적 발전의 측면에서 중요한 사건인 우키요에와의 만남 이후 화풍의 변화를 다룬다.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은 고흐는 후기 인상주의(Post-Impressionism) 화가로 분류되며 인상파, 20세기 초 현대미술의 주요 흐름인 야수파, 표현주의, 입체파 등에 미친 사상적 영향이 막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