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화원

2014 개인전 ‘정원산책’, space K 대구
황인성_코오롱 스페이스K 큐레이터

프랜시스 버넷의 동화 <비밀의 화원(The Secret Garden)>은 정원이 주는 치유의 기능을 아름답게 묘사한다. 주인공 메리 레녹스는 버려진 화원을 친구들과 함께 아름다운 화원으로 재생시키고, 이를 계기로 주변인들에게 행복을 선사한다는 내용이다. 정원이 인간에게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바로 가꾸고 돌보는 행위에 중심이 있다. 땅을 파고 씨앗을 심고 잡초를 거르며 가지를 다듬는 주인공 메리의 행위는 모두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시작이다. 만약 메리의 손길이 사라진다면, 그 후에도 이 비밀의 정원이 예전처럼 치유의 의미를 유지할 수 있을까? 무언가를 돌보고 가꾸는 이러한 행위의 주체가 사라질 때 정원은 어떠한 의미일까? 
   
박형진은 이번 전시에서 ‘정원’을 그린다. 작품에 등장하는 일련의 정원 이미지는 화려하진 않지만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관상용 나무들이다. 작품을 살펴보면 큰 폭의 화면에 초록 덩어리들이 귀여운 캐릭터들과 함께 어우러진다. 나무를 클로즈업하여 정원의 디테일한 부분을 관찰하기도하고 의도적으로 격자를 남긴 정원을 그려 관찰자로서 자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여러 개의 작은 캔버스에는 다양한 구도의 정원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박형진의 정원은 앞서 살펴본 <비밀의 화원>처럼 직접적인 치유의 의도는 아니다. 오히려 작가는 돌봄의 주체가 사라진 정원에 의미를 두고 담담히 그려낸다. 
 
박형진이 그려낸 정원을 가꾸던 이는 몇 해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이다. 그곳은 질서정연하게 다듬은 서양식 정원도 아니고 푸른 잔디 가득한 앞마당의 정원도 아니다. 그냥 집 한 켠의 자투리 공간에 벽돌로 정성스럽게 울타리를 세워 관상용 주목과 푸른 교목을 심어 놓았다. 
 

작가는 시어머니가 늘 이곳을 돌보았다고 했다. 어떤 나무는 너무 뾰족하게 정리하고 어떤 나무는 과하게 둥그런 모양새를 취하기도 하였단다. 주목의 좌우대칭을 살리고자 나뭇가지 군데군데 벽돌을 매달기도 했다는 에피소드는 시어머니가 정원을 대하는 정성을 짐작케 한다. 정원 곳곳에 놓여있는 장난감들은 작가의 아들이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다. 이제는 버림받은 것들이 정원 곳곳을 누비며 우리에게 함께 걷기를 청한다. 

어느 순간 함께했던 이가 사라지고 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가 남기고간 흔적들을 돌아보게 된다. 당신이 사라진 현실과 변화를 받아들이지만 남기고 간 흔적은 도화선이 되어 기억의 한 켠을 반응시킨다. 때문에 당신의 손길이 닿았던 모든 것들이 감성의 집합체로 추억된다. 우리는 박형진이 내놓은 시각적 증거들로부터 작가가 경험중인 상실의 감성을 들여다볼 수 있다. 
 

정원 바라보기의 시작은 1996년 ‘아버지의 정원’에서 출발한다. 옥상에 다양한 화분들을 가꾸는 아버지의 모습과 함께 옥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티브 삼아 그려진 작업들은 이번 전시에서 그가 보여주는 이미지를 이해하기에 좋은 본보기가 된다. 당시 작업들은 옥상 주변에 일어났던 소소한 사건들을 즉시 채집하면서 감성의 기록 혹은 일기처럼 회화를 활용한다. 작가 주변 존재에 대한 개인적인 시선과 함께 섬세한 성찰의 시간을 채록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이러한 맥을 이어간다. 무심코 지나치던 작은 일상에 대한 애정이 작업을 이어가는 동력인 셈이다.  
 

박형진은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것들을 감성적 정원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떠나버린 이가 남겨놓은 것에서 전해지는 묘한 울림, 조금은 흐릿하면서도 선명한 기억들을 캔버스에 소환한다. 어설프지만 정원의 형식을 갖춘 대상은 작가에 의해 의미 재생산의 매개체로 기능한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박형진은 관계와 부재, 상실과 채움, 관조와 깨달음으로 연결 짓는다.
 
작가의 화면은 한편의 동화처럼 보이다가도 거친 필치와 마주치면서 현실과 마주한다. 시어머니가 남긴 정원과 이제는 쓸모없는 장난감들…. 돌봄의 주체가 사라진 대상들을 불러들인 박형진은 연민의 시선으로 새롭게 비밀 가득한 정원을 꾸린다. 
 

그간 새싹과 열매로 행복을 안겨주던 박형진은 이제 떠나보낸 이의 그리움을 더한다. 앞으로 점점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쌓일수록 박형진의 내러티브는 더욱 풍성해질 것이며 내공 또한 깊어질 것이다. 작가의 작업이 기대되는 이유다. 

한편의 동화처럼 보이다가도 거친 필치와 마주치면서 현실과 마주한다. 시어머니가 남긴 정원과 이제는 쓸모없는 장난감들…. 돌봄의 주체가 사라진 대상들을 불러들인 박형진은 연민의 시선으로 새롭게 비밀 가득한 정원을 꾸린다. 그간 새싹과 열매로 행복을 안겨주던 박형진은 이제 떠나보낸 이의 그리움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