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하전회(文河傳回)
예술의 물길이 하회처럼 휘돌다.

인류의 유산으로 인정받은 안동의 하회마을은 고유한 삶의 방식이 오랜 동안 유지되고 여전히 형성중인 삶의 터전이다. 고려 말에 형성되었다고 추정되는 이 마을은 인간이 어떻게 문화적인 언어를 만들고 나누며 살아가는지를 예증해주는 매우 독특한 양상을 간직하고 있다. 마을을 구성하는 원리, 풍수. 함께 살아가는 원리, 예법. 삶을 나누는 놀이문화 등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유구한 동성 마을을 형성해 왔다. 도시문화의 번성 속에서 기껏해야 보존대상으로 관리되는 것이 오늘날 옛것의 처지라고 한다면, 예스러운 소통의 툴이 현재 삶에 적극적으로 작용을 미치는 하회마을은 말 그대로 인간적인 가치, 문화의 정수가 유지되고 있는 매우 귀중한 공간이 아닌가 한다. 야생의 자연에서 문화적인 무늬로 그 코드를 전환시키면서도 양자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총체적인 삶의 공간을 형성하는 하회마을은 자연인으로서의 인간과 문화인으로서의 인간이 어떻게 조율되고 표출되는지를 증언한다. 한편으로 훼손된 자연인의 면모를 치유해주고 다른 한편으로 자연을 압도하는 문화인으로서의 드높은 긍지를 담아내는 이 조화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가장 큰 특징이 아닌가 한다. 자연과 문화, 인간과 인간, 사물과 인간의 소통은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감동적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예술의 이름으로, 작가들의 붓을 따라, 생각할수록 신기하기만 하고 때로 신비하기 까지 한 이 소통의 현묘함을 따라가 본다. 현묘의 처처에서 안동 하회마을은 우리에게 자신의 말을 들려준다. 하회를 조망하는 도산서원, 병산을 둘러보던 만대루, 와가와 초가 사이를 누비는 그 길, 시외버스가 따라가던 낙동강변. 하회탈이 담아내는 삶의 무대 등, 여러 단편적인 영상들의 콜라주가 화가들의 붓 길을 통해, 문인들이 읊조리던 송가를 담아 유네스코 인류 유산의 한 자락으로 재구성된다. 

김대원은 <겸암정사>, <옥연정사>, <병산서원>, <만대루>, ‘눈 온 하회마을’ 등을 한눈에 조망하는 시점으로 담아낸다. 그지없이 섬세하면서도 무게와 강도를 담아내는 그의 필획은 어떠한 문자기록도 능가하는 하회마을의 역사와 삶의 기록이 아닐까 한다. 빼곡한 필획 하나하나와 작품의 공간 구성은 그 묘사 대상을 세웠던 이들의 사유를 되짚으며 그들의 우정과 학문의 정도를 가늠해보고, 그들이 보았을 경관을 둘러본 결과물로 작가의 사생의 진수가 품위 있다.

김범석을 투과한 하회마을은 파토스적인 것에 보다 기우는 감정적인 해석으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그의 <병산서원>은 병산서원까지 이르는 다소 건조한 여정을 먹의 짙은 농담과 물기로, 구성의 주관적인 과감성을 통해, 일거에 강렬한 현재 정념의 공간으로 통합시켜 준다. 그가 구성한 정념의 공간은 예전 문인들의 열정 그대로를 생생하게 여기에 주조해내고 있는 것이다.  
 
김억은 하회 그 자체의 도저함과 우아함을, 수령 600여년에 이르는 신당수의 신령함을 화면에 잡아냄으로써 하회마을의 꼴과 삶의 중심이 무엇인지를 드러내 준다. 부감이나 평원의 시점을 통해 김억이 선택한 하회의 자산들은 일상의 삶 속에서 바라보는 하회마을이 어떠한지 제시해주는 듯하다. <하회마을의 봄>속에 파묻힌 우리의 한가로움은 당장 다음해 봄에 우리의 일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류준화는 아크릴, 콘테 등의 재료를 통해 하회에 대한 현대적인 정서를 담아낸다. 삶의 정서나 문화의 뉘앙스는 그 대상이 추상적이기 때문에 구체적 사물의 묘사와는 거리를 둔다. 와가인지 초가인지 집 한 귀퉁이에 모인 하회마을의 시간이나(<시간의 흔적>), 클로즈업된 담의 모습(<월담>), 하, 회 문자의 이미지화를 통해 담아낸 민화풍의 <하>, <회>는 퇴계의 처소만큼이나 소박하면서도 고졸하고 단출하다. 생략적인 구성 속에서 류준화는 하회마을에 고유한 문화의 뉘앙스와 삶의 정서를 담아내며 현대적인 해석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박방영의 하회마을은 어떤 파격이 있다. 문자도같기도 하고, 옛 지도의 구성 같기도 한 그의 작품에는 하회 전경의 구체성과 사실성은 뒤로하고 문자 속에서 그리고 문자의 배치에서 그 정신성을 다루고 있다. 문자와 이미지의 경계를 허물며 구성되는 여백 속에 하회마을의 정신성을 담아내면서 박방영은 오히려 그 정신의 구체성이 드러낸다. 그가 다루는 주제 역시 구체적인 대상이라기보다 기행의 인상이라든가, 하회춤에 대한 인상, 겸암정사의 정신성 등으로서 이를 문자 혹은 글을 주된 모티프로 삼아 구성한다. 그가 본 하회마을은 필경, 드높은 문화의 정신에 대한 구체적 감각들이 아닌가 한다. 그러므로 그가 해석한 문화의 정신성은 고상하기 그지없는 위용보다는 삶 속의 지혜로 빛나는 삶에 대한 승복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여기에서 자연스레 번지는 웃음이 비롯된다. 
 
서용선의 하회마을은 서용선 특유의 투박한 선과 힘이 거침없이 드러난다. 서용선 작품에서 주로 보이는 원색과 투박한 선은 서용선 작품의 힘의 원천으로 이야기할 만하지만, 그 보다는 이것들이 힘을 발휘하게 하는 공간의 구성력에 그 특징이 있다. 사실적인 풍경이나 묘사 같기도 하지만, 능숙하게 공간을 휘고 조작하는 솜씨 때문에 그의 원색과 선은 감정을 얻고 강렬한 표현을 얻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서용선이 본 <병산서원>은 만대루와 병산의 대치국면, 그 긴장의 배열 속에 병산서원이 품고 있는 자연과 문화의 웅대한 조망이 살아난다. 마치 아무 것 도 없는 백지 위에 선 하나를 주욱 그었을 때 비로소 떠오르는 긴강과도 같은 것이다. 하회마을은 옛 마을로 대단히 고적할 듯하지만, 끊임없이 자연과 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긴장과 운동이 살아 있는 곳이자 그 속에서 삶의 기호들 부침하는 문화의 긴장이 감도는 곳이기도 하다.

신태수가 바라본 하회마을. 붉은 솔 한 자락이나 청기와집 감나무 한그루, 병산에 새긴 달빛과 마음 한 자락, 환타지 같은 고매(古梅)의 풍치 등은 신태수가 안동의 문화 속에서 건져낸, 그리고 우리를 안동의 삶에 접속시켜주는 인터페이스와 같은 것들이다. 푸른 솔을 붉은 솔로 전환하거나, 청기와와 붉은 감나무를 대비시키는 구성, 고매의 풍취에 휩싸이는 연좌루의 표현은 하회마을에 대한 섬세하고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구성될 수 있을 듯하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것들이면서도 옛 사람과 늘 함께한 이러한 지표들에 문화적인 각인을 깊이 함으로써, 작가는 시간적인 멀고 가까움을 지워버리는 고매(高邁)한 판타지 영상의 한 장면을 만들어 낸다. 이런 환상적인 기조는 인위적인 삶의 해석이라기보다 일상을 낯선 눈으로 보게 하는 그래서 사실상 삶 속에서 낯선 풍취를 언제나 생산해내는 하회마을 문화의 힘 해석하는 방법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이들이 담아내는 하회마을 이야기, 즉 문하전회는 ‘전(傳)’의 형식으로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세필 속에 기록된 하회마을의 기질, 풍토는 빼곡하게 채운 김대원의 하회마을에서 사생의 깊이와 품위를 더해 나타나고, 물기 짚은 먹의 농담 속에 담아낸 하회마을은 김범석의 작품에서 인간적인 열정과 정념의 공간으로 주조되며, 김억의 신당수와 평원시점이 전해주는 하회풍경에서는 하회마을의 일상의 정서와 기록이, 류준화의 생략적인 구성에서는 오늘의 하회마을을 말해주는 현대적인 정서가 드러난다. 박방영은 소박하고 해학적인 듯 하지만 그 정수에서 빛나는 문화의 정신성을 웃음을 선사하며 하회마을의 문화도(文化圖)라 할 만한 것을, 서용선은 하회마을을 감싸고 있는 자연과 문화의 세련되고도 강도 높은 긴장감을 자신의 고유의 필치, 색감 그리고 공간의 구성력으로 전해준다. 신태수는 안동에 대한 사려와 애정을 바탕으로 하였을, 문학성 깊은 해석을 통해 우연하고 사소한 풍경의 한 자락을 가로질러 시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하회의 면모를 해석해 낸다. 이들의 붓길 또한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하회처럼 휘돌아 문화융성의 결을 더해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