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갤러리11의 전시작품은

2015년 3월 31일(화) 까지

안동문화예술의전당을 방문하셔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동해에서 서해까지 실경산수의 향연

한국의 산천은 종(縱)으로는 38선으로 가로막혔지만, 횡(橫)으로는 바다를 넘어 섬까지 펼쳐져 있다.

해 뜨는 ‘우리땅’ 독도에서 해 지는 ‘경계의 땅’ 백령도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금수강산은 청명하고 아름답다.

지구상 어느 국가든 그 나라의 풍경에 어울리는 기질 공동체를 이루고 살고 있겠지만, 한국인도 분명히 사계가 뚜렷한 한국의 풍경을 닮아 있다. 소박하지만 강인하며, 정(情)이 넘치고 변화와 활력이 넘친다. 이는 아마도 유목민의 역사로부터 정주민의 문화가 만들어낸 독특한 “우리”라는 공간 공동체가 가지는 기질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의 기질은 우리 역사의 그림 속에도 오롯이 담겨져 있다.

김정희의〈세한도〉, 김홍도의〈씨름〉, 정선의〈인왕제색도〉등 무수히 많다. 바로 우리 그림이며 한국의 미(美)인 것이다.

한편, 한국 강산의 풍경은 동양적 정수를 담은 산수화로 드러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특히 실경산수화에서의 기운생동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다.

굽이 펼쳐진 논이랑 밭, 초가지붕 같은 편안한 산들과 구름, 기암절벽, 준엄한 산맥과 절경들, 사계가 펼쳐 보이는 화려한 색....

우리의 강산은 한국 그 어느 땅에서 둘러보아도 우리 시선 밖으로 떠난 법이 없다.

그래서 우리 강산을 그린 실경산수화는 이질감이 없다.

“유채색은 물질의 색, 무채색은 정신의 색인가!”

수묵화는 「농담과 선」의 미학으로 붓의 놀림과 섬세한 준법을 통해 작가의 심경과 독자적인 예술 사상을 보여준다. 객관적 사물을 묘사하는 관찰 대상에 그치지 않고 그리는 작가의 성품과 덕성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는 물아일체적(物我一體的) 관념인 것이다.

우리 강산의 풍경(風景)이 화백의 사의(寫意)를 통하여 형사(形似)의 세계가 이윽고 신사(神似)의 세계로 이끌려 간다. 내면까지 통찰하는 섬세하고 정교한 직관, 이것이 동양예술의 리얼리티라 할 것이다. 특별히, 3人의 초대작가가 펼쳐 보일 이번 전시회의 모든 작품들도 大作으로 제작한 실경산수화이다. 묵의 농담, 필법, 채색, 구도와 화풍이 서로 같지 아니하고 개성이 뚜렷하여 각각의 기운과 운치가 오히려 감동적이다.

해뜨는 동해로부터의 작품을 보면 동쪽의 끝인 독도가 먼저 떠오른다. 「우리 땅」독도는 부끄러운 줄 모르는 일본의 영토 침탈에 시끄러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심천(深泉) 최종국(崔鐘國)작가는 11m가 넘는 대작으로 독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당당함과 신령스러운 기운으로 독도를 수호하고 있다. 작가는 농담마저 배제한 초묵(焦墨)을 반복과 중첩의 붓질로 쌓아가는 적묵(積墨)으로 독도와 함께 울산의 주상절리, 영월의 선돌(신선대), 보성다전 등 강인하게 그려낸다. 노장철학의 ‘무위자연,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정신을 자연탐구의 명제로 삼는 작가의 작품은 우리의 한지위에 단단하고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흔들림이 없고 명확함이 오히려 맑은 투명감을 느끼게 한다.

창산(蒼仙) 김대원(金大源) 작가는 영덕과 청량산, 그가 나고자란 안동 등 내륙의 풍경을 보여준다. 우리 전통회화를 계승한 수묵담채의 실경사생이 주 작업인 작가는 사의(寫意)를 넘어 필의(筆意)의 자유로움으로 진행 중이다.

촉촉한 먹의 농담에는 작품을 대하는 이로 하여금 풍경속의 현장에서 있는 착각을 느끼게 할 정도로 풍광의 운치는 물론이고 그 공기의 소리와 냄새, 기온마져 전해준다. 이것은 노련한 운필과 탁월한 심미안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과장되거나 가식적이지 않은 붓의 솔직함에서 오는 것이리라.

오랜 시간 매진하여 완역한 「중국고대화론유편」외 다수의 저역서는 늘 ‘공부하는 화가’임을 보여주며 거침없이 변화무쌍한 붓끝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본성을 보여준다.

신태수(申泰洙) 작가는 안동을 대표하는 백령도 주민작가이다.

안동을 중심으로 국내외로 활약하던 가운데 백령도와의 인연이 새로운 사명감과 함께 진정성 있는 화업정진(畵業精進)에 불을 지피며 늘 새로운 행보를 꿈꾸고 있다. 실경산수를 바탕으로 한 자신만의 독자적인 운필법과 과감하고 군더더기 없는 화면으로 때론 묵직하게 때론 간결하게 파노라마로 펼친다. 산점투시와 같은 다양한 투시법, 과감한 생략과 시원한 여백은 오히려 본질을 더욱 귀하게 한다.

중견의 원숙미에도 부감법이라는 파격적인 구도와 먹의 반발과 도전을 거침없이 받아들이는 그의 실험정신과 새로운 모색은 실경산수의 진수와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고 있다.

수묵화를 대작으로만 감상할 수 있는 이러한 기회는 흔하지 않다. 단순히 크기로 위압(威壓)하고자 함이 아니다. 각 작품 한 점 한 획의 정성과 섬세함은 한치에 소홀함이 없다. 관객의 시선에 충분히 자리한 풍경은 현장감과 함께 울림을 더하여 준다.

전통 실경산수화의 맥을 이어가며 새로운 지경으로 길을 개척하는 세분의 실경산수대작(廣景山水大作展)은 우리 강산의 기품과 영(靈)을 동서남 우리강산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해 뜨는 동해에서 해 지는 서해까지”라는 테마는 반쪽뿐이라는 아쉬움도 섞여 있다.

우리나라에는 24개의 동서노선, 25개의 남북노선의 국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이중 안동을 관통하는 국도는 5번, 34번, 35번 국도이다. 안동문화예술의전당의 갤러리5, 갤러리34, 갤러리35 명칭도 여기에서 착안하였다.

이 중 34번 국도는 경북 영덕에서 충남 당진까지 304.7km로 동해에서 서해로 뻗어있다.

하지만 35번 국도는 북한 중강진에서 경남 마산을 잇는 종단 국도이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강원도 철원까지만 갈 수 있다.

이제 문대현 작사 작곡의 「광야에서」의 구절이 가슴에 꽂힌다.

“해 뜨는 동해에서 해 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 ”

휴전, 분단이라는 아픈 현실 속에 하루라도 빨리, 동서남북 그 어디서든 우리의 산천이 우리의 예술가의 시선과 붓끝에서 함께 교감하고 자유로이 춤출 수 있기를 염원해 본다.

큐레이터 ㅣ 임정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