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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커스

  • [이선아_바람 따라 구름 따라]예천 금당실마을
  • 이선아 2009-07-06

1. 명철과 은영의 이야기

 

은영은 멀건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아?”
명철은 가져온 복숭아 통조림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오늘은 기분이 좀 어때?”
은영은 여전히 창밖에 시선을 꽂고 있었다.
“며칠 동안 못 올 거야. 어르신을 따라...내말 듣니?”
은영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앙상한 그녀의 몸 위에 걸쳐져 있던 환자복이 미끄러졌다. 앙상한 쇄골이 징그러웠다.

 

“날 잘라버려.”
명철은 주먹을 쥐었다. 아무렇게나 묶은 은영의 머리카락이 창을 타고 들어오는 바람에 살랑거렸다. 아카시아 향기가 퍼졌다. 명철은 잠깐 숨을 쉬었다.
“뭐 필요한 거나 먹고 싶은 거 없어? 이따 아줌마 시켜서, 가져오라고 할게. 병원이 불편하면 옮겨 줄까? 아까 의사 잠깐 만났는데...”
“오빠...”
은영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은영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명철은 시선을 피했다. 며칠을 밤샌 끝에 겨우 만든 시간이었다.
“너, 병원에 있다는 거, 밖으로 새지 않게 하려고 내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뭐가 부족해서 이러는 거야? 남들은 널 동정하겠지만, 나는 네가 독종인 거 같아. 이런 식으로 나에게 상처 줄 생각이라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 그냥 조용히 따라만 와. 협조 따윈 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제발 거치적거리지 좀 말라고.”
명철은 음침하고 낮게, 또박또박 끊어 말했다.
“그러니까, 오빠, 멈춰.”
말꼬리를 부여안은 은영은 무릎 사이로 얼굴을 묻었다. 손이 퉁퉁 부어있었다. 목덜미를 따라 둥글게 시커멓고 거뭇한 상처가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명철은 다시 주먹을 쥐었다. 의사는 은영을 지켜 보자고만 했다. 의사 표현을 완강하게 거부한다며,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했었다. 명철은 몸을 돌렸다.
‘이기적인 것 같으니...’

 

은영이 또 목에 줄을 감았다. 보고를 받은 건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였다. 몇 달 전부터 말수가 부쩍 줄고 무거운 커튼을 찾는 은영이 불안해서 혼자 두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었다.
“사람이 도대체 몇인데 그거 하나 못 막아. 땅 파서 월급 주는 줄 알아? 무슨 일만 생겨봐. 모두 모가진 줄 알아.” 명철은 차를 세웠다. 담배를 찾았다. 휴게소에서 분명 담배를 샀었다. 그런데, 없다. 어디서 잃어버린 것일까? 까끌거리는 입안에 똥물을 묻힌 사람들이 밟았던 모래를 담아 둔 것만 같다. 버석거리며 입속에서 모래가 씹혔다. 믿기 힘든 맛이, 끔찍했다.

 

며칠 전에 은영과 크게 다퉜었다.
“내 일을 네가 왜 쑤시고 다녀? 거기가 이번 선거에 얼마나 중요한 거 몰라? 왜 자꾸 가로 막는 건데, 다 된 밥에 재 뿌리지마. 아무리 내 동생이지만 이번에 잘못 되면, 가만 안 둬.”
“순진한 사람들 꼬드겨서, 서로 싸움 붙여 땅 팔게 하고, 결국 그 땅 파헤칠 사람한테 싸게 넘길 거잖아.”
“묶여서 씨도 안 먹히는 곳은 두고, 아래를 치는 거야.”
“지금은 그렇겠지. 오빠가 이기면 끔찍해질 거잖아.”
“어차피 불필요한 땅이야. 낡은 집 밀고, 새 건물 들어오면 사람들도 좋아할 거야. 그 여자가 우리를 버리고 간 곳이야. 난 군더더기 같은 거기가 지긋지긋하다고.”
“차라리 오빠가 상처 받은 곳이라 아프다고 말해. 경제 논리와 욕망을 부추겨서 사람들을 이용하지 말라고. 감히 범할 수 없는 높고 엄숙한 것들까지 돈으로 쪼개 쓰고 버리게 하는 오빠가 무서워. 단 한순간 누구를 위해 흘렸던 순결한 눈물까지 희소성 운운하며 돈으로 재는 오빠가 가엽다고. 재고 재다가 오빤 진짜를 잃어버렸어. 나약한 사람들의 눈물이 지겹다고 했던가? 오빠가 그토록 경멸하던 사람들의 눈물, 쓸데없다고 했지만 그 중에 단 한 방울이라도 오빠 몫이 있겠냐고. 과연 누가 오빠를 위해 흘려줄까?” 

 

 

명철은 벽을 쳤다. 걸려 있던 그림이 떨어져 유리가 깨졌다.
“너 지금 날 가르쳐?”
은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습기의 명랑한 물방울들이 병실을 빙글대며 돌았다.
명철은 은영을 노려보았다.
'젠장, 나한테 어떻게,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데...' 선거가 코앞이었다. 은영은 결정적일 때, 명치를 노리는 방법으로 명철의 기운을 뺐다. 바락 바락 악을 써댔던, 싸움에 이어 이번에는 병원행이였다. 죽을 정신은 있으면서, 살기 싫을 정신은 있으면서 하나 뿐인 혈육인 자신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 분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명철은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다. 짐을 나눠 줄 것이라 믿었던 어머니는 열이 너무 많았고, 짠물이 그립다며 방문을 열어두고 자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은영은 그 날 밤 맨발로 엄마를 따라가다 마을 어귀 소나무 숲 아래서 발견됐다. 그 후로 명철은 비칠거리기만 하는 은영이, 자신의 뜀박질에 걸맞게 입속의 혀처럼 굴지 못하는 은영이가 미웠다. 윤기가 나고 반지르르한 자리로 바꿔 앉을 때 마다, 은영은 명철의 쫀쫀하게 엮어가는 비단 보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눈앞에서 가리가리 찢어 놓았다.
‘나도 너 이러는 거 정말 지겨워.’
명철은 병실 문을 소리 나게 닫았다.

 

2. 은영과 현규의 이야기

 

은영은 철봉에 거꾸로 매달렸다. ‘까딱까딱 한밤 까딱까딱 두 밤...’ 오빠는 멀리 사람들이 많은 큰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 열 밤을 자면 오빠가 온다. 오빠는 집에 올 때 마다, 냄새가 좋은 사탕도 사오고 초콜릿이 잔뜩 붙은 달콤한 과자도 사왔다. 이번에 올 때는 만화가 그려진 진한 심 연필이랑 방울이 달린 2단 필통을 사준다고 했다. 운동장에 먼지가 풀풀 날린다. 아이들이 축구 골대 쪽으로 공을 몰고 우르르 몰려간다. 은영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고, 그림자를 거두어 손으로 새를 만들었다. 오빠는 새를 잘 날렸었는데, 은영은 자꾸만 손이 엉킨다. 

 

“딱!” “아야.” 철봉에 매달려 있던 은영이 떨어졌다. “야, 오줌싸개. 바지 말리냐?” 아이들이 다시 돌을 던졌다. 은영은 아픈 것도 잊고, 뛰기 시작했다. 머리를 묶었던 끈이 풀렸다. 머리카락이 날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은영은 한손으로 머리카락을 그러쥐었다. 아, 아침에 주인 할머니가 손녀가 두고 간 것이니 잃어버리면 안된다고 했었다. 뛰던 은영이 멈췄다. 다시 갈 수가 없었다. 돌아보기가 무서웠다. 손등이 부어올랐다. 소나무를 덮고 있던 담쟁이덩굴이 몸을 떨었고, 바람이 송림을 헤집었다. 길고 무성하게 자란 풀들이 바람에 밀려 아무렇게나 함부로 쓰러졌다. 오...오빠. 오늘 오빠는 오지 않는다. 

 

  

그날 밤, 주인 할머니는 ‘이런데서 살 수도 없는 걸 잃어버리고 왔다며, 밥만 축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라며 심하게 역정을 냈다. 귀에 박히는 육두문자보다 오빠에게 이른다는 말이 더 무서웠다. ‘오빠까지 떠나면 안돼.’ 은영은 수업을 다 마치기도 전에 가방을 메고, 교실을 나와 머리 끈을 찾으러 다녔다. 왔던 길을 되짚어본 지 몇 시간 째였다. 떨어졌을 거라 짐작이 가는 곳에 무릎을 대고, 기어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제비가 낮게 날았다. 검정 나비들이 서로를 쫓아 날아다녔다. 동네 강아지들이 은영이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은영은 다시 뛰었다. 

 

  

돌담이 예쁜 마을이었다. 벽에 손을 대고 걸어보았다. 울퉁불퉁 손안에서 돌들이 노니는 느낌이 좋았다. 야생화가 피어있고, 바람개비를 닮은 풀들이 사지를 뻗어 기지개를 켰다. 청보리가 한 줄로 늘어진 담장 아래 앉아보았다. 따뜻한 볕이 은영의 등을 두드렸다. 오빠는 아홉밤만 자면 온다. 들장미 향이 간지러웠다. 고개를 돌렸다. 거기, 들장미 뒤로, 담장 위에 잃어버린 머리 방울이 보였다. 은영은 벌떡 일어나 감나무가 하늘을 이고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누구니?”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였다.

눈이 새까맣고, 코가 작았는데, 입술이 보리뚝을 닮았다. 은영의 머리 방울이 그 아이의 머리 위에서 반짝거렸다. 은영이 우악스럽게 달려들어 머리 방울을 빼앗았다. 손에는 여자 아이의 머리카락이 한줌이나 뽑혀있었다. 여자 아이가 왕하고 울음을 터트리며, 뒤꼍으로 뛰어갔고, 은영도 달렸다. 똑같이 생긴 담장이 계속 이어졌다. 어디로 나가야 할지 몰랐다. 아까 봤던, 배나무도 다시 보였고, 보라색 꽃도 다시 보였다. 한집이 끝나는 것 같으면 다시 이어지고, 집의 우측과 좌측에는 주인이 부지런히 드나들었을 밭과 자두나무, 은행나무, 신맛이 가득할 것 같은 익지 않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복숭아나무가 집의 경계 없이 심어져 있었다. 작은 숲을 옮겨 놓은 듯한 마당과 담장 밖의 알록달록하게 계절을 품은 꽃들. 꼭 같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풍경들이 계속 이어졌다. 은영은 숨이 찼다. 지붕이 얹혀 있는 담장 아래 몸을 숨겼다.

 

“여기 있었구나.”
낯선 목소리였다. 큰 그림자가 은영을 덮었고, 후드득하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동생이 잘못한 거 아니야. 내가 어제 주워서 준 거거든. 네 거였니?”
은영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현규는 은영이 쥐고 있는 머리 방울을 보고, 피식 웃었다.
“아이고, 내 동생 머리에 땜통 생겼겠다.”
은영은 엉덩이를 털었다.
“어디 가니? 비오잖아. 소나기 피하기엔 이집 담장이 최고야.”
소나기 소리가 요란했다. 빗물이 운동화로 떨어지자 은영이 몸을 담장 쪽으로 더 붙였다.
현규는 은영에게 넓적한 돌을 밀어 주고, 손으로 돌 위를 치며, 올라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이 동네 사는 건 아닌 것 같은데...똑똑하게 생겼구나.”
현규는 교복을 벗어 은영의 벗겨진 무릎을 덮어주었다.
“꽤 거칠게 노는 모양인데?”
은영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몰라, 무릎아래 비를 맞고 있는 현규의 명찰을 손으로 가만히 덮어주었다. 그 때부터 은영은 오빠를 기다리는 것이 한결 수월해졌다.

 

3. 명철과 현규의 이야기


현장에 다녀오마 하고 아침에 일찍 서울을 떠났다. 속이 가라앉지를 않았다. 양복 안쪽을 더듬어 보았다. 담배가 없었다. 은영이 입원한 후로 일상이 자꾸 뭉개지는 것 같았다.
‘약해 빠져서는...’ 어깨와 뒷목이 뻐근하게 쑤셨다. 한쪽 머리가 무겁고, 답답했다. 창을 내려 바람을 쐬었다. 속이 메슥거렸다. 아무렇게나 차를 세우고, 내리니, 가까운 곳에 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겉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잘 다듬어진 정원수들과 단풍나무, 노송이 보였고, 좀 더 깊게 들어가니 바위 아래 물이 흐르고 있었다. 정자를 가운데 두고 계곡이 만들어져 있었다. 기암괴석 사이로 빠르게 정자를 지나온 급류는 잔잔한 물결을 만들어 수면을 흔들어 놓고, 다시 흘러 나갔다. 

 

 

“이게 누구신가?”
현규가 빙긋이 웃었다.
“지나가던 길에 잠깐 들린 거야.”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는데, 넌 요새 신문에서 얼굴 보는 게 더 빠르더라.”
“담배 있냐?”
“잘 나가는 놈이 담배나 꿔 달라고 하고, 있어도 없다. 이렇게 좋은 데서 담배를 찾냐?
여기는 밖에서 근심을 가져온 것이 미안한 곳이지. 혼자 왔어?”
현규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은영이, 여기 되게 좋아하잖아. 같이 안 왔어?”
현규가 부르는 은영이의 이름이 낯설었다. 계곡 위로 버스가 지나갔다.
계곡을 앞에 두고, 명철이 의자에 앉았다.
“일보러 가다가 들렸다니까.”
“누가 남매 아니랄까봐, 무뚝뚝하기는. 은영이 잘 있어?”
“응.”
“이거 은영이 가져다 줘. 날씨가 따뜻해 졌는데, 계속 목폴라만 입고 다니더라고” 현규가 연한 오렌지 빛이 나는 스카프를 내밀었다.
“안 그래도 어떻게 주나 했었어. 짝사랑이 아직 안 끝나서 말이지.”
명철은 현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은영에게서 현규 얘기를 들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에이, 뭘 또 그렇게 봐. 맨 날 퇴짜 맞는데, 난들 좋겠냐? 근데 고무신 거꾸로 신었더니 못 걷겠더라고. 나도 좀 살자.”
현규가 일어나, 정자 안으로 들어섰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신을 벗고 우물마루 위로 올라가 난간에 몸을 기댔다. 물소리가 더 거셌다. 현규는 난간에서 떨어져, 방문을 등에 지고 앉았다.
“이리와, 여기 시원하네.” 명철이 현규를 돌아봤다.
“나는 높은데 별루다. 물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고 두려워하는 은영이랑 그렇게 앉아서, 저쪽 판문을 열어두고 바람을 맞았었어. 날 하도 안 쳐다보니까, 하루는 내가 사라진 척하고, 담장 밖에서 얼굴을 내밀어 은영이 약을 올렸었거든. 울보가 울 줄 알았는데, 웃더라. 가끔 둘이 그렇게 놀았었는데, 하루는 은영이가 본인이 그렇게 해보고 싶다고, 정자 밖으로 나가더라고. 그날 비가 와서 약간 미끄러웠거든. 키가 작으니 담장 위로 얼굴을 내밀려면 까치발로 서서 손가락에 힘을 주고, 담 벽을 잡아야 하는데, 미끄러우니, 엄두가 안 났었나봐. 발밑이 바로 계곡이었잖아. 무서워서 그랬는지, 은영이가 그날 많이 울었었다.”
명철의 귀밑이 붉어졌다.

“아직도 저기 윗동네 사니?”
“응. 요즘 저 뒤쪽으로 시끄럽다. 무슨 개발해야 하니 뭐가 들어오니 마니 하면서, 오늘 서울에서 누가 내려온다고 하던데, 아버지가 같이 가보자 하시더라고.”
바람에 하얀 꽃들이 날려, 현규의 어깨위로 덜어졌다. 주변 기와에 하얗게 꽃잎이 쌓여 있었다.
“불두화야. 씨앗을 못 맺어. 씨앗을 못 맺으니 암술 수술도 없고, 향기도 없지. 그냥 꽃만 피우는 수고만 하는 게 딱해서, 뽑아 버릴까 했는데, 은영이가 말리더라고.”
불두화가 하늘로, 계곡 사이로 계속 부서져 떠다녔다. 명철은 어느 시간, 어느 기억이 가물가물해 졌다. 몸이 헐거워지더니, 잠깐 눈이 부셨다.
 

글쓴이 : 이선아
1977년생, 숭실대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글 쓰고 책 읽기를 매우 좋아하며, 영화관에 혼자 가는 것을 즐긴다. 글 쓰는 직업을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있다. 현재 안동 MBC에서 구성 작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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