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임은혜_연극으로 만나는 세상]탈을 어루만지는 연극
- 임은혜
탈을 어루만지는 연극
“우리 몸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얼마 전 서울 구로지역에서 노동자들의 고충을 상담해주는 분이 새해 화두처럼 던진 질문이다. 누구는 몸의 중심이 배꼽에 있다고 하고, 누구는 머리에 있다고도 하고 심장에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분이 말하는 몸의 중심은‘아픈 곳’에 있었다. 우리 몸에서 어느 한 부분이 아프면 우리의 생각과 마음, 모든 감각들이 온통 그곳을 향해있다는 것이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아가는 땅의 아픈 곳, 탈난 곳을 얼마나 헤아려 보살피고 어루만지고 있는가에 따라 그 사회의 건강지수가 가늠된다고 했다.
연극 역시 탈난 존재들의 탈난 이야기를 보여준다. 등장하는 인물들 다수가 탈을 지닌 존재들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불완전하듯이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누구보다도 두드러진 결함을 갖고 있는 탈난 자들이다. 셰익스피어의 비극『햄릿』은 아버지를 죽인 숙부에 대한 증오심으로 불타는 햄릿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 간의 비극적인 사건이 뒤얽혀 있다. 등장인물들의 반란과 사건들은 타락해가는 봉건사회를 반영하고 있으며, 햄릿으로 하여금 ‘사느냐 죽느냐’라는 존재의 문제를 넘어 구시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것을 요청한다.
고대 그리스의 극시인(劇詩人) 소포클레스의 비극『오이디푸스』에서 저주스러운 신탁을 받고 태어나 버려진 오이디푸스 역시 탈난 존재이다. 부모인지 모르고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 것을 알고 결국 자신의 눈을 찔러버린 오이디푸스. 자신의 기막힌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다가 결국 운명의 덫에 빠져버린 그 역시, 역병이 돌고 있는 사회 한 가운데에 서 있다. 연극은 오이디푸스로 하여금 악하고 병든 땅을 정화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희생 제물로 그려내곤 한다.
탈놀이의‘탈’이라는 말도 어떤 사고나 문제를 뜻하는 것으로 마을 공동체가 어떤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벌이는 마을 굿, 연극이었다. 봉산탈춤·오광대·꼭두각시놀음 등을 보면 늙고 시들어가는 존재의 반란으로서 영감, 미얄과 그 첩과의 삼각관계가 다루어진다. 이는 낡고 죽어가는 것을 보내고 새로움을 맞이하며 액을 떼어내고 풍요와 건강을 기원하는 공동체의 소망을 반영한다. 탈을 쓰고 노는 동안 나쁜 액이 그 탈에 달라붙게 되고, 그것을 태우면 마을의 모든 액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을 굿의 끝에는 대부분의 탈을 불에 태워버렸다. 탈놀이는 탈을 지닌 인간, 탈난 사회를 낫게 하려는 공동체의 소망을 재현한 대표적인 연극이다.
지금 우리 땅에는 구제역이라는 돌림병으로 인해 수많은 소와 돼지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이미 300만 마리 이상이 살 처분되었다. 구제역은 단지 소와 돼지만을 병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과 연관된 모든 것들을 병들게 한다. 평생을 키워온 가축을 잃어버린 농부들의 가슴은 멍이 들었다. 임신 중이었던 어느 수의사는 유산을 하는 등, 살 처분과 방역에 동원된 사람들은 과로로 쓰러지거나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병들어가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마을에 전염병이 돌거나 문제가 생기면 마음을 한 데 모아 대책을 세웠고, 마을 굿을 하기 위한 재원과 음식을 마련하여 치유를 기원했다. 그런데, 지금 여기 마을 공동체가 해체된 시골 마을에는 황량한 겨울바람과 함께 하얀 소독 가루만 흩날리고 있다. 탈도 여간 큰 탈이 아니건만, 우리 사회의 중심은 탈난 농촌에 있지 않다.
연극도 마찬가지다. 서울의 대학로 한 복판에선 연극 광고물들이 범람하고 극장이 모자라 공연을 못 올리는 연극단체들이 방황하고 다닌다는데, 여기 농촌에는 지역 주민들이 찾아갈 극장 하나 없고, 스러져가는 농촌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연극도 없다.
☞ 거리연극 <농부의 땅>을 공연하는 청송의 아이들
지금, 나무닭움직임연구소는 퍼레이드 거리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여름에 약 100여명 가량의 청송 지역주민과 청소년들이‘지구 온난화와 신화’라는 주제로 퍼레이드 거리공연을 펼쳤는데 이 작품을 좀 더 보완하여 완성시킬 예정이다. 이 작품은 인간의 과도한 욕망과 오만으로 인해 뜨겁게 달구어지는 지구 생태의 문제를 공유하고 신음하는 땅과 생명들을 어루만지는 내용을 담았다. 이 작품을 끌고 가는 원동력 역시‘탈난 지구촌’이라는 문제의식이다.
우리 선조들이 마을의 문제를 풀어내고자 겸허한 마음으로 자연의 정령과 신(神)들을 만나고자 했던 것처럼, 거대한 인형들을 정성껏 움직이면서 이 땅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초월적인 존재들과 교감하고자 한다. 지신(地神)으로 상징되는 지네, 하늘과 땅을 오가며 인간과 신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거대한 새, 죽은 소를 업고 가는 농부들을 통해 물질적 욕망에 사로 잡혀 자연이라는 근원으로부터 멀어져가는 인간들의 오만한 삶을 성찰해 볼 터이다.
☞ <신화와 지구 온난화>라는 주제로 펼쳐진 환경연극 퍼레이드 2010
이 연극은 전문배우들만이 아닌 청송 지역의 주민들과 아이들이 함께 한다. 탈난 지구촌의 문제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들이 하는 연극적 행위가 어떻게 마을 공동체에 건강한 에너지를 깃들게 하는지 몸으로 부딪쳐 체험하길. 그리하여 황량하기 그지없는 농촌의 탈을 그곳에 살고 있는 공동체의 일원들이 보듬어내고,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힘을 얻기를 간절히 바란다.
- 글쓴이 : 임은혜
- 극작가, '나무닭움직임연구소'는 청송군 청송읍 송생리에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