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상학_안동이 건네준 시와 말]비 오는 새벽
• 안상학 2010-02-22

[시작노트]

집은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방 허물어진다. 더구나 흙집이라면 그 속도는 훨씬 빠르다. 구들장 온기와 사람의 체온이 집을 유지하는 일상의 힘이다. 사람은 집을 필요로 하고 집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 한 집에 산다는 말은 꼭 사람만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닐 터이다. 사람과 집은 그래서 식구나 다름없다.

때로 집만 덩그렇게 남겨질 수 있다. 거기 살던 사람이 혼자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권정생 선생 살던 집이 그렇다. 1983년 이후 근 25년을 외로운 인생과 동고동락을 같이 했다. 장하고 고마운 집이다. 주인이 떠나고 나서도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다. 선생의 체온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07년 5월 이후 지금까지 혼자 남아 있다.   

집주인은 외로운 삶을 살았다. 같이 살았다면 평생 몸을 떠나지 않은 병이었을 것이다. 서로를 떠나야만 자유로울 병과 몸. 그래서 병과 몸의 동거는 더 외로웠을 것이다. 그런 주인을 안고 살았던 집도 외로웠을 것이다. 아니래도 동네에서 외지고 후미진 곳에서 홀로 우두커니 서있었지 않나. 어느 집들의 처마도 마주한 적 없이 덩그런 하늘만 쳐다하며 지냈을 것이다. 외로운 인생과 외로운 집. 서로를 너무도 잘 아는 친구였을 것이다.   

겨울이면 온수가 얼어서 나오지 않았다. 마당에는 풀이 우북했다. 지붕은 비를 다 가려 주지는 못했다. 수많은 책의 벽에는 쥐들이 살았다. 그 안에서 아이들을 생각하며 많은 글을 남겼다. 세상 걱정도 많이 했다. 선생은 지금 없지만 그를 꼭 빼닮은 집은 남아 있다.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7번지 언저리에 있는 집. 그 뒤에 있는 빌뱅이 언덕에는 아직도 흙으로 돌아가지 못한 뼛조각 몇 낱과 더불어.  

글쓴이 : 안상학

1962년 경북 안동 출생.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1987年 11月의 新川」당선. 시집으로는 『그대 무사한가』(1991), 『안동소주』(1999), 『오래된 엽서』(2003), 『아배 생각』(2008) 등이 있다. 현재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