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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효선_동해연안의 문화여행]울진 전통사회 최고의 의례 먹거리, 가자미 미역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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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연안 문화여행
울진 전통사회 최고의 의례 먹거리, 가자미 미역국
글. 사진/ 남효선
4월, 울진은 ‘자연산 돌미역 세상’... 돌미역 청어회무침 ‘일품’
경북 울진 해촌 사람들의 생계를 지켜 온 ‘자연산 돌미역’ 수확 철이 돌아왔다. 울진 해촌의 사월은 '돌미역 세상'이다. 복사꽃이 꽃망울을 터트리는 사월이면 울진의 해촌 사람들은 돌미역 수확에 눈코 뜰 새 없는 분주한 나날을 보낸다. 울진사람들은 자연산 햇미역을 돌미역이라고 부른다. 돌미역은 마을공동어장 관리권을 보유한 어촌계가 수확한다. 해마다 삼월 중순이면 울진 연안 해촌의 어촌계는 돌미역 채취를 위해 해녀(잠녀)와의 계약을 서두른다.
울진지역에는 북쪽의 끄트머리인 북면 고포마을부터 남쪽의 관문인 후포항까지 34개의 어촌계가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26개 어촌계서 자연산 돌미역을 채취한다.
자연산 돌미역의 서식처를 울진사람들은 ‘짬(해중 바위군락)’이라 부른다.
짬은 어촌계가 관리·운영하는 총유 자산이다. 울진 해촌 사람들에게 짬은 소득의 현장인 바다 텃밭이자 삶을 이어주는 생명줄이다. 어촌계별로 대게 5~7곳의 짬을 보유하고 있다. 짬은 바위 군락이 수중에 완전히 잠겨 있는 수심처와 상층부가 해수면 위로 노출되어있는 곳으로 나뉜다.
돌미역 수확은 「채취 – 운반 – 분배 – 미역발붙이기 – 건조 - 저장」의 6단계로 진행된다. 이들 전 과정이 대략 4월 중순부터 5월 초순까지 모두 마무리되어야 양질의 돌미역을 거둘 수 있다. 채취는 주로 해녀들의 몫이다. 특히 수심처에서 자라는 돌미역 채취는 반드시 해녀에 의해 이루어진다. 울진지방에 전문적인 해녀들이 유입되기 전까지 해촌 사람들은 ‘머구리(남성 잠수부)’를 짬에 투입해 돌미역을 수확하거나, 무동력 소형 어선인 ‘가이선’과 ‘떼배’ 또는 ‘목선(전마선)’을 이용해 미역 낫대로 돌미역을 채취했다.
해녀가 물질을 통해 채취한 돌미역을 뭍으로 운반할 때 이용하는 것이 떼배이다. 떼배는 뗏목처럼 오동나무를 엮어 만든 무동력선으로 울진 연안 해촌에서는 1980년대까지 각 마을별로 다수의 떼배를 보유해 햇미역철의 미역 운반선으로 요긴하게 활용했다. 해녀가 물질로 채취한 돌미역을 어촌계원들이 떼배로 포구까지 옮긴다. 이후 어촌계장이 계원들에게 미역을 고르게 분배하면 곧장 ‘미역발붙이기’ 작업이 시작된다. 이 작업에는 매우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미역줄기와 미역이파리를 분리한 후 두께와 길이를 고르게 '미역발'에 붙여야 한다. 건미역의 상품성을 높이려면 자연 바람에 고르게 말려야하기 때문이다. 미역은 미역발의 길이에 따라 ‘장곽(長藿)’과 ‘중곽(中藿)’, ‘단곽(短藿)’으로 나뉘며, 주로 ‘건곽(乾藿;마른미역)’ 형태로 유통된다.
건미역을 장만하기 위해 분리한 미역줄기는 꼬들꼬들하게 말려서 소금으로 염장한 후 물기가 없는 작은 단지에 넣어둔다. 다진 마늘만 넣고 볶거나 식초를 조금 넣고 무쳐내면 끼니마다 밥그릇을 뚝딱 비우는 밑반찬으로 쓸 수 있다. 미역귀는 꼬들꼬들하게 말린 후 고추장에 버무려 무침으로 먹거나, 부각으로 먹었다. 전통사회의 울진지방에서는 ‘미역귀 부각’을 아이들의 간식으로 활용했는데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그 달큰한 맛을 지금도 기억하신다. ‘미역발붙이기’ 작업과정에서 나온 자투리 미역이파리는 물미역 그대로 고추장단지에 넣어 삭히면 ‘미역장아찌’로 탄생되는데, 이들을 이용하면 울진식 미역건강밥상이 완성된다.
또 울진지역에서는 돌미역에 가자미를 넣어 끓인 ‘가자미 미역국’을 특별 고급음식으로 여겨 회갑연이나 혼례, 집안 어른의 생신날과 같은 특별한 날에 의례음식으로 장만했다. 최근에는 소고기 등의 육류가 흔해지면서 가자미 대신 소고기를 넣어 미역국을 끓이는 것이 보편화 됐으나, 울진 해촌에서는 지금도 돌미역에 싱싱한 가자미를 넣어 끓인 미역국을 최고로 여긴다.
햇미역철인 사월, 울진의 별미를 하나 더 소개 하자면 해녀가 짬에서 갓 채취한 푸른 바닷물이 뚝뚝 돋는 물미역에 청어나 물가자미 회를 넣어 초고추장과 함께 버무린 ‘돌미역 청어회무침’이 있다. 이맘때 울진 앞바다는 청어 성어기를 맞는데, 새콤달콤한 양념에 꼬들꼬들한 미역 사이로 고소한 청어가 묵직하게 씹히더니 ‘어?’ 하는 순간 입안에서 눈 녹듯이 사라진다. 첫입부터 미간도 마음도 풀어지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지친 일상으로 어딘가 모를 헛헛함이 밀려올 때 보는 바다, 듣는 바다, 먹는 바다로 채워보고 싶다면 빨리 시작되어 천천히 지나갈 한 여름 불볕더위에 그늘이 되어줄 울진의 힘을 빌려보면 어떨까? 울진에 오면 계절과 함께 맛볼 수 있는 일미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지나간 계절을 아쉬워하기보다 다가올 계절을 설레며 맞아보면 어떨까? 계절에는 끝자락이 있어도 울진의 식도락에는 끝이 없으니...
- 글쓴이 : 남효선
-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안동대학교 대학원에서 민속학을 공부하였다. 1989년 문학사상의 시 부문에서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하였다. 한국작가회의, 경북작가회의, 안동참꽃문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둘게삼』이 있다. 현재 시민사회신문의 전국본부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