쑤세미의 골방에서 만화 읽기
사랑의 카운슬러 《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
글 백소애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내게 웃음과 감동을 준 만화를 꼽으라고 하면 과연 어떤 작품이 있을까? 대개 웃음과 감동은 한꺼번에 오기 쉽지 않다. 그간 독자들께 소개해준 작품에서 고른다고 한다면 고다 요시이에의 《자학의 시》가 좋았고 도대체의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가 기억난다. 거기에 이 작품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 자칭 ‘일러스트레이터미네이터’ 키크니의 《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이다.
이 만화는 제목 그대로 작가가 자신의 SNS에 독자들이 남긴 요구사항을 ‘주문제작’ 만화로 그리며 소통한 결과물이다. 난 그가 유명한 작가라는 사실을 책을 주문하고 난 뒤에야 알았다. 주문한 책이 무려 2주 후에 출간된다고 하길래 알아보니 tvN 〈유퀴즈온더블럭〉에까지 출연한, 요즘 가장 핫한 작가라는 것이다.
방송에 출연한 그는 〈복면가왕〉에 등장한 것처럼 복면을 쓰고 나와 그림 그리는 일을 하는데 자신의 얼굴을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일러스트레이터지만 마음을 단단히 하고자’ 자칭 애칭으로 자신의 직업을 ‘일러스트레이터미네이터’라 소개한 ‘키 큰 이’. 그는 한 컷의 일러스트로 독자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SNS가 낳은 스타작가이다. 많은 웹툰 작가들이 자신의 일상이야기로 시작해 소재가 고갈되면 슬럼프에 빠지는 것과 달리 그는 지속적인 소통과 피드백으로 이야기를 확장하고 웃음과 감동을 준다.
그에게 그림을 주문하는 이들은 출근하기 싫어하는 직장인, 시험을 망친 학생, 면접을 망친 취준생,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워하는 딸, 로또 당첨을 바라는 회사원, 육아에 지친 엄마, 진상고객을 대하는 카페 알바생 등 평범한 우리 이웃들이다. 그렇게 그들은 극한 일상이든 무엇이든, 격한 소망이든 무엇이든, 찐한 사랑이든 무엇이든, 어떤 가족이든 무엇이든, 쿨한 농담이든 무엇이든, 묘한 상상이든 무엇이든, 소소한 일상과 소망, 희망, 슬픔을 키크니에게 털어놓고 공유한다.
화려해 보이는 연예인들은 연일 방송에서 공황장애를 고백하고 우리 곁에도 고단한 삶에 지쳐 우울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구 한편에서는 전쟁 중이고 21세기 전염병은 3년째 진행 중이다. 우리의 일상이 하루하루 버티는 것처럼 괴로운 것이라도 누군가는 음악으로 글로 그림으로 그 상처를 위무하고 응원하고 있다. 바로 키크니처럼.
마지막 장에서 “쌓여있던 걱정이 사라지며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뭘까요?”라는 댓글에 키크니는 이렇게 마무리한다. “또 눈처럼 쌓일 거야, 그래도 녹아”라고. 그는 프롤로그에서 “독자들이 피식 웃음을 지을 수 있고 작은 공감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독자의 댓글을 통해,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작가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치유했던 것은 아닐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처럼 심리치료에 탁월한 전문가뿐 아니라, 쌍방향 소통으로 서로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키크니 작가야말로 SNS 시대 ‘사랑의 카운슬러’란 호칭이 제법 어울려 보인다.
[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다!/ 키크니 지음/arte(아르테)/ 값1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