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강병두_구름에 달 가듯이]미림동굴에서
- 강병두
안동 북후 석탑리의 일명 ‘계랄’이라는 곳에 있는 미림동굴을 찾았다. 말로만 전해 듣던 안동의 진산 학가산 자락에 있다는 동굴을 찾아 나선 것이다. 독도법에 따라 동굴을 쉽게 찾을 수도 있었으나 우연히 만난 동네 주민이 가르쳐준 방향만을 쫓다가 그만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글로 쭉~~~가면 표지판이 바로 비는데...'
▲ 미림동굴 개념도
동네 어귀에서 만난 주민이 한 말이다.
지도를 보니 거리가 500m도 채 되지 않아 이쯤이야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인적이 드물어 넝쿨과 잡목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어 잡초를 제거하기 위한 칼만 가지고 산에 올랐다. 학가산은 몇 번이나 오른 적이 있고 어디선가 동굴을 봤던 기억이 있는 것 같아 쉽게 생각한 것이 오산이었다. 지도상의 표지와는 달리 능선을 다 올라가도 동굴은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두 세 차례, 그러나 그동안 사람의 발길이 끊어져있던 탓일까 좀처럼 동굴은 찾을 수가 없었다. 체력도 떨어졌고 가진 물도 없어 일단 철수하기로 한다. 동행했던 지인은 힘들었던지 포기를 선언한다. 지인에게는 미안했지만 산을 내려가면서 다시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차 안에서 지도를 확인하고 있는데 잠시 보이지 않던 지인이 한 농가를 가리키며 가보라고 한다.
'강작! 저 가바라!...이쁜 아줌씨가 동굴위치도 알고 잘 갈케 줄 꺼 같더라.' '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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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굴 입구까지 안내해준 아주머니 |
▲ 자식농사 잘 지었다는 말에 흐뭇한 표정을 짓는 언니 |
▲ 안에서 밖을 내다본 모습 |
나는 한걸음에 달려간다. 몇 가구가 채 되지 않는 한적한 마을이었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다시 이곳에서 가정을 이뤘다는 아주머니는 담배 잎을 가지런히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 바쁜 와중에도 내가 묻는 말에 선선히 대답해주시는 것이 각박하지 않는 시골인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미림동굴이라고 들어봤니껴?...이 근처 있다고 하던데 찾질 못하겠니더!...'
'와요?'
'문화재 자료에 등재되어 있는 동굴이라 궁굼해가 함 볼라꼬요!...'
'인자 다 막아 났을낀데...하도 돌삐 훔치가가 시에서 막았을낀데...'
옆에서 묵묵히 담배 잎을 메 만지던 언니라는 아주머니가 한마디 거든다.
'맞다 예전엔 우리도 거 마이 갔잔아 맞제...'
'근데 나는 못 찾겠던데요!...'
'와 욜로 쪽~올라가면 바로 길가에 비는데...안 비던교...'
'예..능선까지 가도 못찾겠던 데요...함 만 제대로 갈케주소...미안하지만...'
'근데 설명은 우에하노..기냥 가면 되는데...'
'...'
이때 옆에 있던 언니가 한 마디 거든다.
'니 갔다온나...내 혼차 하고 있으께 니가 금방 갈케주고 온나'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섞인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안쓰러워보였던지 선선한 대답이 돌아온다.
'가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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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판은 무성한 숲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사진 왼쪽에 겨우 보인다. |
▲ 표지 설명서 |
▲ 넝쿨식물에 가려진 골짜기 모습 |
몇 분도 채 가지 않아서 동굴이 있었다. 등산로 바로 옆이지만 무성한 넝쿨과 잡목으로 덮여있어 주의 깊게 보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었다. 동굴이라고 하기엔 너무 적고 시멘트로 막아놓아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찾기 힘들었다. 처음 가보는 내게 동굴이라고 하기엔 무리인 것처럼 보였다. 자연환경을 훼손하고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문화유산을 팔아먹는 도굴꾼들은 뭐고, 부족한 행정력을 핑계로 이런 황당한 대책을 실행하는 관공서는 또 뭘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동굴을 살펴보고 내려와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딱히 전할 방도가 없어 미안한 마음이었다.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시고 나니 말문이 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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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 없지만 인적 드문 시골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있는 촌부의 팔목에 감긴 보호대에서 자신 몸은 돌볼 겨를 없이 자식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서 어머니의 따뜻한 정을 느끼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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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배 잎을 정리하는 장면 1 |
▲ 담배 잎을 정리하는 장면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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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심더!...우야니껴 도와 줄 것도 엄꼬 저 때매 고생만하고... 물만 얻어묵고...'
'여는 물 빼이 줄끼 없는데...뭐 지하수라 시원하지요?...'
'예...'
'우에 두 분만 일하시니껴?...다 어디가고요?...'
'남자들은 과수원에 일하러가고 우린 더우이까 이거나 하지 뭐...'
‘냄새가 좀 독한데 괜찬으이껴?’
‘인자 하두 맡아가 우린 괜찬은데 아저씨는 절로 나가 있으소’
하며 나를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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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굴꾼의 침범으로 자연석의 훼손이 심해 지자 시멘트로 막아버렸다. |
‘어차피 가가면 다 갈아 쓰는 거 아입니까? 그냥 잘 말라가 놔두면 공사에서 다 안 받아 주니껴?...'
'조은거만 골라 가잖아요!...얼매나 여문데...'
‘그라이 이래 차개차개 이파리 고르고 있지요!’
'살면서 한 번도 밖에 안 나가 봤니껴?'
'예...난 시집, 친정이 다 여고...언니는 영주 살아요...'
언니는 은근슬쩍 자식농사를 잘 지었다며 자랑 섞인 말을 한다. 아마도 아들이 법무부 고위공직자 쯤 되는 모양이다.
'사람이 많이 안 다니니 오늘은 낯선 사람하고 말이 많네...'
하며 새삼스레 멋쩍었던지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아지매가 고우이끼니 제가 일부로 말을 많이 안 거니껴?...
'빈말이라도 좋네...'
'어~~~참말인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골에 살다보니 별별 사기꾼과 좀도둑이 설치다보니 낯선 사람들을 경계하게 된다고 생활 속의 고민을 이야기 한다. 문화재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입장에서 봐도 그런 일은 다반사고 어떤 집에서는 문전박대하기도 한다고 위로한다. 다음 기회에 이곳을 다시 찾게 되면 꼭 한 번 들릴 것을 약속하며 돌아서는 내 등 뒤로 아주머니의 따스한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다.
- 글쓴이 : 강병두
- 세 차례의 개인전을 비롯하여 '사진의 의미와 재현', '수화위진'전 등 다수의 단체전에 작품을 발표하였다. 현재 안동신문 문화학교 사진교실 강사로 활동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