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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만동_영화이야기]브이 포 벤데타 V for Vendetta(2005)
- 김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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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 포 벤데타 V for Vendetta(2005)
감독 |
애써 지나온 길을 기어이 되짚어가는 하 수상한 이즈음, 문득 스쳐간 영화 한 편이 떠오른다. 아무런 스키마도 없던 내게 지구 저쪽 400년 전의 한 사내에 대해 알려 준 영화, 신념의 무한한 힘을 위트 있게 보여주었던 영화 ‘브이 포 벤데타’ 말이다. 이비의 내레이션처럼 나도 그 남자 ‘브이’를 영원히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워너브라더스에서 제작한 ｢브이 포 벤데타｣는 2006년 3월 국내에 개봉되었고, 그해 7월 DVD가 발매되었다. 나는 아직 원작 만화를 못 보았지만, 만화적 상상력으로 가득했던 그 영화를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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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이 포 벤데타 V for Vendetta(2005) 예고편 |
2040년, 영국은 국민 의장 ‘서틀러(존 허트 분)’가 다스리는 전제국가다. 그는 ‘하나 된 국민, 하나 된 조국’을 강조하며 국민 개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치적 성향은 물론 피부색, 성적 취향까지도 일사불란하게 강요하는데, 국민들은 스스로의 권리를 잃어버린 채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살아간다.
어느 날 밤, 방송국에서 일하는 ‘이비(나탈리 포트만 분)’는 통금을 무릅쓰고 PD ‘디트리히 고든(스티븐 프라이 분)'과의 만남을 위해 집을 나섰다가 핑거맨들에게 위협을 당하게 되고, 위기상황에서 검은 망토에 검은 모자, 야릇한 마스크를 쓴 정체불명의 사내가 나타나 가공할 액션으로 그녀를 구해낸다. 정체를 묻는 그녀에게 사내는 이름 대신 자신의 캐릭터를 말해 준다. |
요약하면, 운명적으로 자신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요, 자신이 쓴 마스크는 과거의 분노를 상기시키는 도구이며, 자신의 임무는 국민을 탄압하는 부패하고 더러운 정부에게 피로 복수하여 고통 받는 자들을 해방시키는 것인데, 자신을 ‘브이'라고 불러 달라는 것이다.
전무후무한 공연을 보여 주겠다며 ‘브이(휴고 위빙 분)’은 이비를 데리고 형사재판소가 마주보이는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연주회를 지휘한다. 대국민스피커를 통해 차이코프스키의 ‘1812 서곡’이 울려 퍼지고, 마지막 크레셴도 부분에서 형사재판소 건물이 폭파된다. 이어지는 불꽃놀이, 하늘에는 폭죽의 향연이 펼쳐진다. 생각에 따라서는 무시무시한 부분일 수도 있는데, 화면이며 음향은 오히려 장쾌하기 그지없다.
그 후, 브이는 온몸에 폭탄을 감고 방송국을 장악한 뒤, 비상 방송을 통해 어제 자신이 재판소를 파괴해 조국의 잊힌 가치를 일깨웠으며, 1605년 11월 5일, 영국국교회에 저항했던 가이 포크스의 정신을 이어받아 1년 뒤인 11월 5일 국회의사당을 폭파하겠다고 선언한다. 정부의 폭력 속에 침묵과 복종을 강요당하는 국민들에게 이 나라가 잘못되었다는 진실을 전하고,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은 그날 자신과 함께하자는 메시지를 남긴다.
놀란 서틀러 의장의 주도로 크리디 당수, 에스리지 보안 담당관, 다스콤 방송 담당관, 헤이어 검찰 담당관, 그리고 수석 수사관인 핀치 경감이 모인 비상회의가 열리고, 그는 자신의 권력에 맞서는 범인을 검거하여 진정한 공포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라고 수하들을 닦달한다. 이미 권력의 시종이 된 방송은 진실을 은폐하고 정부를 선전하며, 정권은 국민의 사생활을 도청하고 간섭한다.
‘핀치(스티븐 레아 분)’이 테러범 브이와 이비의 행적을 하나씩 쫓아가는 사이사이 영화는 이비의 동생이 세인트 메리에 다니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었으며, 그 뒤 운동권이 된 어머니는 단식하다 죽었고, 아버지는 처형되었다는 지난 사정을 알려준다. 또 20년 전 라크힐 수용소에서 자행된 ‘바이러스 개발 연구’의 화재 사고로 마스크와 망토 속에 감출 수밖에 없게 된 브이의 육신에 얽힌 비밀과 함께, 현 정부가 세인트 메리와 정수장, 지하철 사건의 배후이고 무려 10만에 달하는 국민들을 학살함으로써 현재의 지위와 부를 챙긴 정황도 폭로한다.
‘바이러스 개발 연구’의 실험 대상자였다가 그 부작용으로 놀라운 운동감각과 반사 신경을 얻게 된 ‘5호실의 사내 브이’는 자신을 그렇게 만든 프로젝트에 가담했던 인물들, 예컨대 런던의 목소리 프로더로와 지금은 주교가 된 릴리만 신부, 당시 식물학자였던 딜리아 서리지 검시관을 차례로 죽여 개인적 복수를 실행해 나간다.
릴리만 신부를 처형할 때 브이에게서 탈출한 이비가 고든의 집에 숨어들고, 금지목록을 소장한 동성애자 고든은 서틀러 의장과 브이를 풍자한 정치 쇼를 불법으로 방송했다가 크리디에게 죽임을 당한다. 고든의 집 침대 밑에 숨어있다 탈출한 이비는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고, 감옥에서 이비는 동성애자 여배우 발레리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회유와 고문을 이겨내고 스스로의 신념을 온전히 세워 가진다. 모든 것이 브이의 꾀인 줄 알게 된 이비가 옥상으로 나가 빗방울을 맞으며 빗속에 신이 있다고 뇌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고속촬영 빗방울 화면 아래 비를 맞으며 두 팔을 벌려 흐느끼는 그녀의 모습과 겹치는 브이의 실루엣 말이다. 저 유명짜한 ｢매트릭스｣의 총알 장면에 비길만한 불의 분노와 물의 치유를 빗댄 명장면이다.
드디어 운명의 11월 5일은 하루 전으로 다가온다. 브이는 돌아온 이비에게 폭발물을 가득 실은 열차를 선물하는데, 그는 열차를 국회의사당으로 연결하기 위해 폐쇄된 지하철 철로를 10년에 걸쳐 다시 깔았던 것이다. 열차를 움직일 레버를 당겨달라는 부탁을 하고, 마침내 브이는 서틀러와 크리디를 처단하여 복수를 마무리하지만, 그 와중에 크리디 부하들의 총에 맞아 치명상을 입고 만신창이가 된 채 이비에게 돌아온다. 그리고 20년 동안 오직 복수만을 위해서 살아온 자신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되살려준 이비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숨을 거둔다.
그 시각, 검은 망토에 검은 모자 가이 마스크를 쓴 수많은 시민들이 광장으로 모여들고 이비는 가이를 열차에 누인 채 가슴에 장미 장식을 한다. 권총을 든 핀치 경감이 말리지만, 드디어 11월 5일을 알리는 시침과 분침이 12에 모이자, 브이가 남겨준 희망을 전하기 위해 이비는 열차의 레버를 내린다. 의사당을 향한 열차가 움직이고 ‘그의 음악’인 ‘1812 서곡’이 울려 퍼진다. 음악이 벅차게 솟구치는 마지막 크레셴도에 맞춰 국회의사당은 폭파되고, 폭파 장면이 무슨 축제처럼 화면을 가득 채우는 동안 음악은 또 폭포처럼 온몸을 적시는 것인데, 어느새 화면은 불꽃놀이로 이어지고 사방에서 곰비임비 밀려나와 트래펄가 광장을 가득 채운 군중들이 하나씩 마스크를 벗고 불꽃놀이를 감상한다. 군중 속에는 서틀러 일당에게 희생된 사람들이 다 서 있다. 그들은 수많은 ‘브이’이고 그대이자 나이며 우리 모두인 것이다. 지난 촛불 집회를 상기시키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감격에 겨워 한참이나 들렁들렁하였다. 영화 속 브이가 그립다.
- 글쓴이 : 김만동
- 안동 경덕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