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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종화_의성 시가기행, 산들에 대한 이야기]문소(聞韶) 고을의 대표 누각 문소루(聞韶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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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화와 함께 떠나는 의성 시가기행
문소(聞韶) 고을의 대표 누각 문소루
글. 안종화
삼한 시대부터 건립된 누각은 우리나라 어느 시․군을 가든 지 있다. 그 중에도 문소루는 의성군 서쪽 끝 관수루와 더불어 이름난 2개의 누각 가운데 하나로서 진주의 촉석루, 밀양의 영남루, 안동의 영호루와 더불어 ‘교남(영남)의 4대루’로 알려진 건물이다. 원래는 읍내 객사의 북쪽, 관아의 뒤편에 있었으나 현재는 구봉산(九鳳山) 제9봉에 있다.
문소루
대부분 누각에 올라보면 연원을 새긴 누정기(樓亭記)와 시인 묵객들이 읊은 누정시(樓亭詩)가 있다. 또한, 누정시는 주변의 경치와 그 지방의 특색을 소재로 하고 있다. 문소루 마루 위에 오르자 ‘소소(簫韶)를 아홉 번 연주하자, 봉황이 와서 춤춘다.’라는 뜻을 담은 현판1)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첫째 봉우리 위의 봉의정(鳳儀亭) 또한 이에서 취한 것이다. 이 뜻을 취하여 고을의 이름을 ‘문소(聞韶)’라 하였으며, 누각의 이름으로도 이를 취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보현지맥 구무산에서 서로 뻗어난 한 가지 줄기가 늑두산과 비봉형으로 생긴 비봉산(飛鳳山), 오토산을 지나며 두 갈래로 뻗는다. 한 줄기는 태봉산, 오동산2)으로 이어지며, 또 한줄기는 구봉산으로 이어진다. 이 산의 옛 이름 구성산(九成山)과 현재의 구봉산(九鳳山)이라는 산 이름은 아홉의 봉우리로 인한 것이다. 봉처럼 생긴 아홉 구비 능선을 넘나드는 것이 소를 아홉 번 연주하면서 하나씩 생겨난 듯하다.
1) “簫韶九成鳳凰來儀” 『書經』「益稷」篇.
2) 2004. 8. 25. 조선매거진(주), 「신 산경표」(개정증보판)에 의하였음. 그 이전은 오토산 이후 태봉산, 오동산, 구봉산 세 갈래로 나뉘는 것으로 분류하였음.
문소루 누각 위에 올라서면 ‘簫韶九成鳳凰來儀’라는 글과 시인들의 시 등이 있다.
처음 문소루에 시를 남긴 학사(學士) 김지대(金之岱)
김지대(金之岱)의 ‘의성객사북루(義城客舍北樓)’라는 제목의 시가 처음이었다. 1247년(고려 고종 34, 丁未) 경상도 안찰사로 재임 중이던 김지대가 지방을 순시하던 중에 이 문소루에 올라 읊은 시가 전하여 온다. 동문선(東文選)에 남겨진 그의 시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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聞韶公舘後園 문소 고을의 공관은 후원이 깊어 中有危樓百餘尺 거기에 백여 척의 높은 누각이 있다 하네 香風十里捲珠簾 향기로운 바람 십 리(十里) 먼 길을 불어와 주렴을 걷으니 明月一聲飛玉笛 밝은 달빛에 한가락 옥피리 소리 들려오네 煙輕柳影細相連 연기 서린 버들 그림자는 가늘게 서로 이어지고 雨霽山光濃欲滴 비 개자 산빛 짙어 푸른 물방울 떨어지는 듯 龍荒折臂甲枝郞 용황[龍荒 흉노(匈奴)]에 팔을 꺾인 갑지랑3)이라 仍按凭欄尤可怕 이내 난간에 기대고 있으니 더욱더 두려워지 도다 |
3) (甲枝郞) 갑지랑(甲枝郞) : 장원랑(壯元郎), 갑파랑(甲科郞)과 같은 뜻으로, 과거시험에 장원 급제한 사람을 가리킨다.
문소루의 공간적 배경은 공관 후원이다. 꽃향기에 달빛… 계절은 봄이요, 시간으로는 저녁이다. 경련(頸聯)에 ‘연기 서린 버들 그림자가 이어지고, 비가 개자 산빛이 짙다.’라고 하였다. 버들잎 새순이 돋아나는 것이 포르스름하다. 산빛이 짙다는 것은 후원에 숲이 무성함을 묘사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무사 출신으로 고을의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을지 두렵다.’라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겸손하게 표현하고 있다.
김지대의 이 시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가 시판(詩板)을 잃어버렸다 한다. 10여 년이 지난 뒤, 약혼자에게 배신당하여 미친 한 여인이 이 시를 암송해 내면서 보존하게 되었다. 문소루의 창건연대가 오래되었음을 알려주는 시이다. 또 한 여인이 암송할 수 있었다는 것은 많은 사람에게 이 시가 회자(膾炙)되었음을 말하여 주고 있다.
포은 정몽주, 비를 피해 의성의 북루(北樓)에 오르다(雨中登義城北樓).
문소루의 본래 위치는 관아의 서북편에 있었다. 지금으로 보면 경찰서 바로 뒤편이었다. 의성군 서쪽 끝 관수루는 서울로 가는 영남대로에 있다. 바로 옆 나루에서 배를 타고 낙동강을 건너야 한양에 갈 수 있었다. 문소루 또한 대구, 영천, 경주 주민이 경상도 북부지방으로 가기 위해 꼭 통과해야 하는 내륙교통의 요충지에 있다. 포은 선생도 강남(영천)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서 이 고장을 지나야 했다. 지나는 도중에 비를 만나 의성의 북루(北樓)에 올라 시 한 수 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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聞韶郡樓佳處 문소 고을 누각 아름다운 곳 避雨來登日斜 비를 피해 오르니 해가 기운다. 草色靑連驛路 푸른 풀빛은 역로에 이어 있고 桃花爛覆人家 복숭아꽃 흐드러지게 인가를 덮었네 春愁正濃似酒 봄의 시름은 꼭 술처럼 진하고 世味漸薄如紗 세상의 맛은 점점 비단처럼 얇다 惆悵江南行客 슬프다, 강남 나그네여 蹇驢又向京華 절름발이 당나귀4) 다시 경화(京華)로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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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절름발이 당나귀(蹇驢) : ‘쓸모없는 사람’을 이에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못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5) 경화(京華) : 섬서(陝西)의 화산(華山) 근처에 있는 지명이다. 시에서는 ‘번화한 서울’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문소에 도착하여 누마루에 오르고 보니 해가 기우는 저녁 무렵, 계절은 봄이다. 하지만 국운이 기울어 가는 고려로 인해 시름은 짙어만 간다. 원해서 가는 길이 아니라 마지못해 강남(영천)의 나그네는 서울로 가는 것이다. 개국세력을 상대로 고려를 지키려는 포은 정몽주. 이 시를 짓기는 우왕 3년(1377년) 3월, 선죽교에서 이방원 일파에게 죽음을 맞이하기는 1392년 4월이니 15년 동안 그의 입장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포은 선생이 문소루에 올라 앞날을 생각하며 지은 것이다.
구봉산 해돋이
김지대와 정몽주의 시에 차운(次韻)하다
이후 대부분의 시인은 김지대와 정몽주의 시에 차운하였다. 또한 문소루에 올라 지은 시들 대부분 이들 두 사람의 것을 본뜬 것이다. 포은과 친분이 두터웠던 이로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가 있다. 여지도서에 전해오는 시 한 수 감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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烏川先生深作 오천6)선생의 아름다운 작품은 點畫整整斜斜 한 점 한 획이 바르고 비스듬하며 道德優遊聖域 도덕의 뛰어남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고 篇章獨步詩家 문장은 시인 가운데 독보적이다 壁間喜看濃墨 벽 사이 진한 글씨를 보니 반가운데 板上恨未蘢紗 현판 위에 농사7)가 없는 것이 한스럽네 屹屹高山仰止 우뚝 솟은 높은 산을 우러러보니 顔衰正㤼年華 세월이 흘러가도 변치 않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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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오천(烏川) : 영일(迎日) 지방의 옛 이름이다. 포은의 본관이 오천(영일)이기 때문이다.
7) 농사(籠紗) : 훌륭한 시나 글이 쓰인 현판을 감싼 비단을 가리킨다.
문소루에 오르자 포은이 지은 시가 있다. 포은을 만난 듯 반가워하며 감회를 읊었다. 선생은 지조를 지켰으며, 문장도 뛰어났음을 자랑하고 있다. 다만 시를 가리는 농사가 없음을 안타까워한다. 새나 벌레들이 현판을 더럽힐까 봐 우려한 까닭이다. 그러면서 높은 산을 우러러보듯 받들며 살아가리라,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을 것이라 다짐한다.
정몽주의 시에 차운(次韻)한 오천(烏川) 이문화(李文和)의 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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聞韶山水滿灑 문소의 산수는 깨끗하여 夜靜簾疏月斜 고요한 밤 성긴 발 사이로 달빛 스미네 柳色靑靑客舍 버들 빛 푸릇푸릇한 객사 香烟苒苒僧家 향기로운 내 모락모락 피어나는 절간 憂民便爲鶴髮 백성 걱정에 변해버린 백발 得雨還岸烏紗8) 비를 얻어 기슭에 돌아온 검은 모자 六月未成一事 여섯 달 동안 한 가지 일도 이루지 못하였으니 却慙前後黃華 다만 앞뒤 관찰사들에게 부끄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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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烏紗 : 관원들이 관복을 입을 때 쓰던 오사모(烏紗帽)를 말한다. 검은 비단인 깁, 곧 사(紗)로 만들었다.
고려 때 이문화가 포은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것이다. 공은 1380년(우왕 6) 문과에 장원 급제한 뒤 1385년(우왕 11)에는 경상도안렴사로, 1402년(태종 2)에는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한 적이 있다. 이 시는 관찰사로 근무할 당시 지방을 순시하면서 지은 시로 알려져 있다.
주변의 경관을 먼저 살피고 있다. 시원하고 고요한 밤이다. 성긴 주렴 사이로 달빛이 스며든다. 서정적이다. 버들 빛 푸릇푸릇한 희망의 봄이지만, 절간 안의 분위기는 향 연기가 피어오르는 차분한 분위기이다. 그 이유는 자신에게 있다. 관직에 오랜 세월 근무하였음을 백발로 표현하면서, 단비가 반가워 검은 모자도 비껴서 쓴다. 하지만 되돌아 자신을 바라보니 여섯 달이 지나도록 치적이 없다. 전임자와 후임자에게 부끄러운 자신을 표현한 것이다.
누 위에는 학봉 김성일(金誠一), 자족재 신봉석(申鳳錫), 기계 김노선(金魯善), 청파 이륙(李陸)의 현판이 현재에도 걸려있다. 이외에도 매계 조위(曺偉), 월헌 정수강(丁壽崗), 입암 민제인(閔齊仁), 졸옹 홍성민(洪聖民), 경정 이민성(李民宬), 죽음 조희일(趙希逸) 등의 시인 묵객들이 문소루에서 시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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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천 산책길의 데크로드, 퇴적 지형을 보여주는 구봉산 암벽지대
고을 출신 시인이 북두성에 비유하던 뇌계 유호인
이 고장 출신의 경정 이민성은 문소루고기억뇌계자(聞韶樓古基憶㵢溪子)라는 제목의 7언 52구의 긴 시를 지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을 북두성에 비유하는 등 유호인을 칭송하는데 할애한다. 유호인 그는 어떤 사람인가?
극기 유호인은 점필재 김종직의 제자이다. 홍문관 교리를 하던 중에 어버이가 늙어 사직하자, 성종 임금이 어버이가 있는 고을과 가까운 이 지역 수령으로 제수(除授)한다. 이때 부임해 가는 유호인을 보내며 김종직이 쓴 송별시(送別詩)가 있다. 문소 고을에는 풍혈(風穴)과 빙혈(氷穴) 등 신비스러운 곳도 있으며, 북루(문소루)에는 아름다운 시구가 있다고 하며 제자의 마음을 다독인다.
관수루와 마찬가지로 문소루에도 점필재 김종직과 관련 있는 시인들의 작품이 많다. 그의 제자인 유호인이 의성 현령으로 지내게 되면서 내왕하던 그의 동문이 시를 짓게 되었을 것이다. 문소루 제9봉에 우뚝 솟은 2층 목조건물로 지어진 문소루 벽에는 지금도 옛날 명사들의 현판 8개가 걸려 있다. 의성읍의 전경도 한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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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 입구를 밝혀주는 마늘조형물, 야간까지 이어지는 남대천 공원의 분수
아홉 봉우리(九峰)와 여섯 굽이(六曲) 물길은 읍민들의 휴식처
구봉산 형성과 관련한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옛날에는 봉우리가 하나뿐인 산이었다. 어느 날 남대천에서 빨래하던 한 처녀가 있었는데, 물가에 비친 산이 마치 뱀처럼 꾸물꾸물 움직이며 기어가는 것이 아닌가? 소리치며 되돌아서 보니 움직이는 뱀의 등처럼 보이는 봉우리가 아홉 개나 생겼다.’라는 것이다.
9개의 봉우리로 형성되어 스포츠 선수들이 좋아할 크로스컨트리 코스에 적합하다. 전국의 농구선수들이 체력단련을 위해 주로 찾던 산이다. 구봉산은 작은 봉우리들로 이루어져 있어 정상 봉의정까지 오르는 동안 짧게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며 가볍게 산행할 수 있다.
이외에도 구봉산은 의성읍의 서쪽을 가로막는 병풍 역할을 하고 있다. 요새(要塞)의 역할도 하였다. 성산봉수(成山烽燧)와 4,727척의 토성이 있었다. 또한 동남쪽에서 흘러온 남대천 물과 동쪽에서 흘러내린 아사천의 물은 산 아래를 흐르며 읍민들의 젖줄 역할을 하였다. “산은 아홉 봉우리(九峰)요, 산 아래를 흐르는 물은 여섯 굽이(六曲)라.” 하였다.
조선의 마지막 여성 한시작가 오효원은 ‘중양절 전날 밤(重陽前夜)’이란 제목으로 아사천에 있었던 유다리 위를 거닐던 당시를 노래하였다. ‘고향의 강’ 사업으로 지금은 거님 길이 많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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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月三更夜 달 밝은 삼경 깊은 밤에 踏來覽德橋 남덕교 거니 노나니 金風噓白屋 가을바람 하얀 초가집에 불고 白露下淸霄 영롱한 이슬 맑은 하늘에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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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 소재지 가까이 있는 구봉산은 읍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맡고 있다. 새해에 해돋이로 시작하여 읍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구봉산 아래로 산책로가 있어 야간에도 밝은 불빛이 있다. ‘의성2교’와 ‘제2구봉교’ 간 남대천 양안(兩岸)으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한번 일주하면 8,000보(步) 정도 걷게 된다. 만 보에 미치지 못해 아쉽다는 생각이 들면 구봉공원의 체육시설을 이용하거나, 구봉산 산길을 이용하면 충분할 것이다.
구봉산 산책길에서 바라 본 남대천과 의성읍 원경
- 글쓴이 : 안종화
- 사)경상북도산악연맹 학술정보이사 조문국연구원 연구위원 의성군청 주민생활지원과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