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김범선_이야기가 있는 문화탐방]영양군 잎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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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있는 풍경
영양군 잎담배
글 김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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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했는 표시인지 손목붕대가 감겨있었습니다. (사진. 강병두)
영양군의 특산물은 고추와 산나물이다. 그래서 5월이면 산나물 축제도 한다. 그러나 예전에는 잎담배가 특산물이었다. 당시 잎담배 농사는 농민들의 1년 농사 중 가장 큰 수입원이었다. 담배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4, 9일 영양장날 장터에 가서 생필품을 구입을 해도 상인들은 모두 외상을 주었다. 철물과 농기구, 중국집과 술집, 복이네 빵집에서도 담배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는 모두 외상으로 주었다. 그리고 초겨울 잎담배 매상으로 목돈이 생기면 그때 수금을 했다.
초겨울에 접어들면 당시 안동전매지청에서 수매원들이 나와 잎담배 매상(買上)을 시작했다. 그들은 농민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땀 흘려 지은 잎담배를 꼼꼼하게 검사를 하고 등급을 매겨 구입을 했다. 담뱃잎의 크기와 색깔, 향취와 맛을 기준으로 등급이 매겨졌다. 등급에 따라 가격차이가 엄청나서 농민들은 좋은 등급을 받기위해 수매원들에게 잘 보이려고 무진 애를 썼다. 수매원들은 포대 속에 들어있는 담배 잎을 무작위로 꺼내 잎의 건조와 향을 측정하고, 미심쩍으면 포대를 전부 풀어 전수 검사를 했다. 농민들은 엄동설한에 콧물을 훌쩍이며 덜덜 떨면서도 수매원들이 시키는 대로 따랐다.
경북 영양군 청기면 당리 (사진. 이인학)
담배 농사는 여름철부터 담배 잎이 합죽선처럼 얄팍해지면 땀으로 멱을 감으며, 사람 키보다 더 큰 담배 줄기에 오른손을 뻗어 잎을 따고 왼쪽 팔뚝으로 껴안아야 했다. 담배 줄기에서 잎을 따면 하얀 진액이 나오는데 이게 독성이 강해 팔의 피부에 닿으면 따갑고 살갗이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그렇게 딴 담배 잎은 집으로 가져와 새끼줄에 엮어 외벽에 붉은 황토로 미장을 한 2층 집 높이의 황초굴(담배건조장)에 넣었다. 황초굴 안에는 나무로 만든 가로 막대에 새끼줄로 엮어 놓은 담배 잎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3일간 장작으로 군불을 때며 일정한 온도로 열을 가해 잎을 쪄야 한다. 낮일이 고단하여 밤이 깊어 꾸벅꾸벅 졸다가 불 조절을 잘못한 날에는 담배 잎 색깔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고단함에 근심이 더해졌다. 그래서 담배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담뱃잎을 찌는 황초굴 아궁이에 불을 땔 때는 좋아하는 막걸리도 한잔하지 못한채 정신을 바짝 차리고 3일간 밤낮을 새워야 했다.
경북 영양군 수비면 계리 (사진. 이인학)
담뱃잎에는 중지 굵기의 담배밤나방의 애벌레인 담배벌레가 기생하는데 한 놈만 있어도 담뱃잎을 엄청나게 갉아 먹어 치웠다. 담배벌레가 먹은 담뱃잎은 너덜너덜 걸레가 되어 상품으로는 전혀 가치가 없었다. 그래서 여름내 땀을 비 오듯 쏟으며 하얀 살충제를 담배 잎사귀에 듬뿍 쳐야 했다. 한마디로 잎담배 농사는 골병드는 작물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이 지역 농민들 대부분은 환금성이 좋은 잎담배 농사를 지었다. 잎담배를 매상하여 돈이 생기면 읍내 장사꾼들이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타고 농민들에게 외상값을 받으러 왔다. 농민들도 평소 걸어서 왕래하던 길을 잎담배 매상철이면 택시를 타고 다녔다. 읍내 장사꾼들과 농기구점, 음식점과 술집 그리고 외지 노름꾼들까지, 겨울철 한적한 시골동네에는 사람들의 발길로 분주했다. 영양군 잎담배는 그렇게 조금씩 전국에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그럼 영양군 잎담배가 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을까? 거기엔 청기면 구매리에 살던 어느 한 인물의 일화가 있다.
경북 영양군 석보면 택전리 (사진. 이인학)
청기면 구매리(九梅里)는 산악지대로 마을에 골짜기가 많아 옛날에는 구통(九通)이라고 불렀는데 그곳 사람들은 잎담배 농사가 주업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가을철 음지에 말린 담뱃잎을 돌돌 말아 나무목침(베개)위에 올려놓고 주머니칼로 잘게 썰어 담배쌈지에 넣어 다녔다. 그리고는 틈틈이 그 담뱃잎을 곰방대에 엄지로 꾹꾹 눌러 담고 화롯불에 불을 붙이거나 아니면 부싯돌을 쳐서 불을 붙여 담배를 피웠다.
그들에게 잎담배는 기호식품이었다. 그래서 '담배를 피운다'가 아니라 '담배를 먹는다'고 했다. 조선조 숙종 3년에 구통(九通)에 살고 있던 박명순(朴命順)은 농사를 지은 잎담배 한 짐을 지고 안동 장에 팔러 갔다. 2, 7일 장이 서는 안동 장은 가근방에서는 가장 큰 장터였다.
박명순은 안동읍 진압루 앞에서 하루 종일 잎담배를 팔았으나 손님들은 구경만하고 사가는 사람이 없었다. 잎담배를 팔아야 막걸리 한 잔을 걸치고 고등어 한 손을 사가지고 구통 집으로 갈 수 있는데, 해가 뉘엿뉘엿 질 때 까지 잎담배를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옹천에서 온 옆자리 농사꾼은 잎담배가 잘 팔려 짐을 싸서 떠나는데 박명순의 잎담배는 누구 하나 사가는 사람이 없었다. 평소 성격이 급해 우물도 통째로 들고 마실 법한 박명순은 약이 올라 진압루 누각위에 올라가 큰 소리로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안동사람들아, 내 말 좀 들어보소, 발매구통박명순(發梅九通朴命順)네 차조밭머리에서 키운 담배 맛 좀 보고 가소! 그러자 누각 밑으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때다 싶어 박명순은 담배 잎을 한 주먹 쥐고 흔들며 “안동사람들아, 구통 차조밭머리 담배 맛 좀 보소! 하고 흩어 뿌렸다. 장꾼들은 이게 웬 떡이냐며 누각 아래로 떨어지는 담배 잎을 서로 밀치며 주워 돌돌 말아 곰방대 넣고 불을 붙여 피워보니, 담배의 향과 구수한 맛이 일품인지라 서로 구하려고 난리를 쳤다.
경북 영양군 영양읍 대천리 (사진. 이인학)
그렇게 영양군의 잎담배는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세상에 퍼져 나갔고, 품질이 좋아 유명 특산물로 전국에 널리 알려졌지만, 지금은 모두 ‘한때’가 되고 말았다. 잎담배 농사를 많이 짓지도 않거니와 당시 잎담배를 쪘던 황초굴은 예전의 위용을 잃고 찾아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저 담이 높은 헛간이나 창고처럼 느껴진다. 돋는 자연 속에서 철 지난 외투처럼 풍경에 걸려 있다. 허물어져 가는 황초굴을 보며 한때 뜨거웠으나 지금은 무심해진, 한때 간절했으나 이제는 애달프지 않은 것들에 관해 생각한다. 원망이나 그리움 체념과 미련을 걷어내고 나니, 고마운 시간만이 남는다. 사라져가고 지워지고 있지만 영양을 키우고 구매리를 유족하게 했던 황초굴 담뱃잎 마르던 시간. 그 미어지게 황홀했던 시간. 쓸모를 다한 것들에서 다시 꿈틀거리는 생명을 본다. 한해의 기운이 시작된다는 동지가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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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잎을 크기별로..(사진. 강병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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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범선
- 김범선(소설가) 경북고등학교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한국문인협회문단윤리위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회원 한국소설가협회중앙위원 작품 눈꽃열차, 비창1,2권. 황금지붕, 개미허리의 추억(상, 하권), 킬러밸리. 노루잠에 개꿈, 당콩밭에 여우들, 영혼중개사, 협곡열차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