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안경애_영주 문화산책, 지역의 역사인물]400년간 보물 품은 소백산 희방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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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문화탐방
400년간 보물 품은 소백산 희방사를 찾아서
글/사진. 안경애
천년고찰 희방사의 창건설화
희방사(喜方寺)는 소백산기슭에 자리한 사찰로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에 있다. 희방사 가는 길은 풍기에서 죽령을 향해 가거나 단양에서 죽령을 넘어야 한다. 희방사 가는 5번 국도는 요즘은 중앙고속도로가 생겨 한결 호젓해졌다. 죽령옛길을 걷기위해 찾는 사람이나 희방폭포가 있는 희방사를 찾는 사람만이 이 길을 다닐 뿐이다. 아, 그리고 5번 국도상의 죽령주막 주모의 손맛을 추억해 일부러 죽령주막을 찾아드는 이들도 이 길을 찾는다.
희방사가 깃든 소백산의 봉우리는 연화봉으로 천문대가 있다. 소백산천문대는 국내 최초로 현대식 망원경을 설치한 천문대로 1974년 국립천문대로 설립한 후 1986년 소백산천문대로 개칭했다. 소백산천문대는 희방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예전 희방사는 5번 국도에서 가파른 길을 걸어 올라가야 했지만 이제는 희방사 앞까지 차도가 나 있다. 하지만 관람객들은 희방사매표소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희방폭포
희방사주차장에서 지근거리에 사시사철 시원한 물줄기를 쏟아내는 희방폭포가 있다. 폭포의 높이는 28m로 소백산에서 가장 긴 폭포다. 조선전기를 대표하는 문신이자 학자인 서거정은 희방폭포를 보고 ‘천혜몽유처(天惠夢遊處)’ 즉, ‘하늘이 내려준 꿈에서 노니는 듯한 풍경’이라 읊으며 감탄했다고 한다. 이 희방폭포가 자리한 희방계곡은 한 때 영주사람들에게 최고의 여름휴양지였다. 휴일이면 희방계곡에는 몰려든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 당시 계곡에서는 삼겹살구이가 성행해 계곡주변의 판판한 돌은 죄다 불에 그슬려 시커멨다. 아예 슬레이트 조각을 가지고 와 자랑스레 불판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슬레이트 골을 따라 삼겹살 기름이 빠져 돌판 보다 바삭하게 구워졌다. 그런 슬레이트가 이제는 1급 발암물질로 판명돼 방진 마스크에 방진복을 입은 후 철거해야하는 위험물이 됐다. 그 아찔한 슬레이트 위의 삼겹살파티도 1987년 소백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끝났다.
옛 희방사
643년(신라 선덕여왕 12) 두운조사(杜雲祖師)가 창건하였다고 하는 희방사는 호랑이에 얽힌 창건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두운조사가 이곳 천연동굴에서 수도하던 중 하루는 호랑이가 찾아 들어 앞발을 들고 고개를 저으며 무엇인가를 호소하는 듯해 두운조사가 살펴보니 목에 여인의 비녀가 꽂혀 있어 뽑아주었다. 그런데 그 호랑이가 은혜를 갚는답시고 서라벌의 호장(戶長) 유석(留石)의 무남독녀를 납치해 두운조사가 수도하던 동굴 밖에 두고 사라져버렸다.
두운조사는 여인이 깨어나자 다시 서라벌에 데려다 준다. 유호장은 은혜를 갚고자 희방사를 지어주고 희방사로 통하는 두 개의 다리도 놔주는데, 두 다리부터 놓았다고 한다. 두 다리중 하나는 풍기소방서 앞의 ‘유다리’이고, 다른 하나는 수철리의 ‘무쇠다리’이다. ‘유다리’는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있고, ‘무쇠다리’는 소실 된지 오래고 근래까지 둑다리로 이어져 오다가 1941년 중앙선 철도가 나면서 그마저 없어지고 마을이름으로만 남아있다. 바로 ‘수철리(水鐵里)’다.
희방사의 보물 월인석보·훈민정음 해례본
희방사주차장에서 연화봉 가는 길 입구에 '소백산 희방사 중창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 중창기념비는 1963년 세워진 것으로 우리나라 초대 문교부장관을 지낸 안호상(安浩相) 박사가 글을 썼다. 한글로 희방사의 역사, 창건주와 중창주들의 업적 그리고 희방사가 품고 있었던 보물 ‛훈민정음 해례본’과 ‛월인석보목판’이 소실된 경위를 기술하고 있다.
"소백산은 국내의 명산이오, 희방사는 신라의 고찰이다. 신라시대 두운조사(杜雲祖師)가 창건하였다. 조선시대 철종 때 강월대사(江月大師)가 4동 20여 칸의 당우를 중창했다. 6․25사변으로 <훈민정음 해례본>과 <월인석보 판목>이 소실되었다. 1957년 주지로 있던 담화화상이 절로 오르는 길을 내고 지장전을 중창해 현재 절의 토대를 마련했다. 담화화상은 제3창주로, 파사현정의 신념으로 자타성불과 불국토건설에 매진했다."
희방사는 '소백산 희방사 중창기념비'에 기술되어 있듯 월인석보목판과 그 판본(목판으로 인쇄한 책) 그리고 훈민정음 해례본을 소장하고 있었다. 조선시대 희방사는 월인석보라는 보물을 소장하고 있어 그 명성이 더욱 높은 사찰이었다. 그러나 이 귀중한 보물이 안타깝게도 6.25 한국전쟁 난리 통에 불태워져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도 불가항력의 천재(天災)가 아닌 순 인위(人爲)에 의해 소멸시켰으니 애석하다기보다 기막히고 어이없는 노릇이다.
월인석보(月印釋譜)는 목판본으로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세조가 지은 ‘석보상절(釋譜詳節)’을 합편하여 세조 5년(1459)에 목판본으로 간행한 국역 불교성전(佛敎聖典)이다. 원본이 완전히 전하지 않아 당초 몇 권으로 되어 있었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30권 이내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책은 조선왕조가 지은 석가의 일대기라고 할 수 있다. 석보는 석가모니의 연보, 즉 그의 일대기라는 뜻이다.
월인천강곡 권1, 권2
석보상절은 세종 28년(1446)에 소헌왕후 심씨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종의 명으로 수양대군(후의 세조)이 김수온 등의 도움을 받아 ‘석가보(釋迦譜)와 석가씨보(釋迦氏譜)를 참고해 한글로 번역해 편찬한 것이다. 1447년 세종은 석보상절이 완성되자 이에 부합하여 각각 2구절마다 찬가찬송(讚歌讚頌)의 형식으로 지은 500여수의 송시(頌詩)들을 첨가한 장편 한글 찬불가를 지었는데, 이것이 ‘월인천강지곡’이다.
월인석보는 조선 초기 불교문화의 정수로 중요한 초기 한글자료이자 국어학과 국문학의 귀중한 연구 자료다. 특히 권1의 첫머리에 실린 ‛훈민정음’의 언해는 국어학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목판본, 초간본 10권(권1·2·7·8·9·10·13·14·17·18) 8책과 중간본 4권(권21·22·23·25) 4책이 보물 제745호로 지정되었으며, 초간본 2권(권11·12) 2책이 보물 제9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월인석보를 새겨 책으로 찍어내던 월인석보목판은 모두 57판으로 추정되는데, 11판은 분실된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목판은 총 46판이고 그 중 31판이 보물 제582호로 지정되어 있고, 나머지 15판은 비지정이다. 충남 논산 불명산 쌍계사에 봉안했다가 현재 공주 계룡산 갑사에 소장되어 있다.
월인천강곡 권1, 권2 펼침
월인석보목판은 한국전쟁 전까지 희방사에도 있었다. 희방사는 선조 1년(1568)에 권1, 권2를 다시 새겨 400년 가까이 소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희방사 월인석보목판은 한국전쟁 중인 1951년 1월 13일 오후3시 UN군에 의해 건물 4동이 소실되면서 소장하고 있던 중요문화재인 월인석보목판 222판, 월인석보 21권, 훈민정음 목판 400판과 훈민정음 해례본 등이 한 줌의 재로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월인석보 서적과 훈민정음 목판도 화마(火魔)에 희생됐다. 1950년 영주군수는 소백산일대에 소개령(疏開令)이 떨어지자 월인석보를 영주군청으로 이관하겠다며 경비로 10만원을 요청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때 경상도에 신청한 이관비용 10만원은 당시 시가로 백미 7~8가마 값에 불과했다고 한다.
월인석보 희방사본 권1과 권2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이 소장본은 서지학자 안춘근(安春根)의 구장본(舊藏本)으로 필사본이라고 한다. 이진환(李震桓)이 1920년대에 필사한 책으로 판각을 위해 정성들여 쓴 판하본(版下本)으로 추정하고 있다.
희방사 전경
현재 희방사는 월인석보 권1, 권2 판본을 소장하고 있다. 1568년 희방사에서 복각한 판본인지, 아니면 1920-30년대(6.25 한국전쟁 전)에 인출한 후쇄본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희방사 주지 설송 스님은 현재 희방사가 소유하고 있는 월인석보 권1과 권2 판본에 대해서 ‘1954년 희방사를 중건한 안대근(安大根)스님으로부터 1986년에 전해 받은 책’이라고 한다.
월인석보 희방사본 권1 표지에는 ‘팔상성도도(八相成道圖)’, ‘훈민정음(訓民正音)’,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라고 씌어 있고, 첫 장에는 ‘세종어제월인천강지곡(世宗御製月印千江之曲)’, ‘소헌왕후동증정각(昭憲王后同證正覺)’이라 쓰여 있다. 2권 말미에는 ‘隆慶二年戊辰十月慶尙道 基小白山池叱方寺改版(융경이년무진십월경상도풍기소백산지질방사개판’이란 간기(刊記)가 있다. 선조1년 1568년 10월 경상도 풍기 소백산 지질방사(희방사의 옛 이름)에서 <월인석보> 권1,2를 새로 새겼다’는 뜻이다.
꽃들이 떨어진 자리를 대신하는 6월의 신록은 산뜻하고 싱그러우며 한낮의 태양 앞에서도 기세당당하다. 희방사를 향하다 보면 이런 신록의 패기를 느낄 수 있는데, 그 힘은 등산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걷는 길 내내 가슴을 펴고 심호흡에 집중하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잡념 없이 희방사 앞에 서면, 마음이 모아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기쁜 마음이란 이런 것일까? 대웅보전에서 지장전까지 손을 모으고 느리게 발을 떼보면 품고 있던 염원들은 이미 당도해 있었지만 알아채지 못했고, 욕심이 더해져 쉽게 놓을 수 없었던 뜬구름만이 간절했음을 알게 된다. 바람이 부는 대로, 풍경 소리가 따라간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싶다면 희방사를 찾을 일이다.
- 글쓴이 : 안경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