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준화_미술관 밖의 미술]공동체와 공공미술
• 류준화 2009-03-05

- 공동체와 공공미술 -

최근 서울시는 '도시가 작품이다' 를 슬로건으로 한 '도시갤러리프로젝트' 를 진행 하고 있다. 도시가 작품이 되면 그 곳에 살고 있는 삶도 예술이 된다는 취지로 진행 중인 이 프로젝트는 공공 장소에 미술품을 설치하거나 시민과 예술가가 함께 하는 예술 작업을 통해 시민들에게는 문화적 자긍심을 주는 동시에 서울이란 도시공간을 명품화하여 세계적인 예술문화도시로 거듭나게 하려는 기획이다. 이런 취지의 기획이 시대적인 요구와 맞아 떨어진 탓인지, 서울시를 필두로 하여 전국의 지자체와 기업들도 앞을 다투어 관련부서를 신설하거나 공공디자인을 공모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공공미술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중소도시는 물론이고 농촌에까지도 온갖 조형물이 하루가 다르게 들어서고 벽화들이 그려지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에 공동 화장실조차 제대로 갖추어 지지 않아 불편을 겪어야 했고, 길거리의 의자나 쓰레기통등 편의 설비들이 나무 모양을 흉내 낸 시멘트로 흉물스럽게 만들어져 설치되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마저 든다. 여하튼 공적 공간에 대해 관심이 늘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왜 공공미술인지, 공공미술이 무엇인지에 대해 문화예술인은 물론, 행정관료, 나가가 시민들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공공미술은 공개된 장소에 설치 또는 전시되는 모든 미술품을 일컫는다. 공공성과 공익성을 앞세운 미술이 미술관을 박차고 나와 전시장 안에서의 다양한 미술영역들을 사회곳곳으로 넓히고 대중 속에서 직접 소통하고자 한 것이 공공미술이다. 이러한 공공미술이 물리적 공간에 대한 미술개념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공간에 대한 미술개념으로 점차 확장하여 다채로운 공공미술의 사례들이 전개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공공미술의 다양한 사례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오브제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공공미술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공동체와 함께하는 커뮤니티 아트와 뉴 장르 공공미술이다.

오브제 중심의 공공미술이라 하면 먼저 건물 앞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조형물이나 광장 같은 곳에 설치되어 있는 기념동상, 기념비 같은 것을 떠올릴 수 있다. 건축물 앞에 세워진 거대한 환경조형물의 경우는 1982년에 입법된 건축물비용의 1%를 미술품을 설치하는데 사용하도록 강제한 '건축물미술장식법' 에 의해 생산된 공공미술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공공미술이라 일컫어지기도 하는데 미술관 안의 오브제작품을 그대로 미술관 밖으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해 엄밀한 의미에서 공공미술의 가치와는 거리가 있다고 보기도 한다. 아무래도 관이 민간에게 법의 준수를 강요하여 만들어진 조형물이다 보니 대부분 천편일률적이거나 주변의 경관이나 여타 조건과는 상관없는 조형물들일 경우가 많았다.

1% 미술장식법이 도시환경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취지로 입법되긴 하였어도 이 법의 존재이유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시행되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한 미술가들의 공적 공간에 대한 인식수준도 낮고 시민의식도 경제적 성장만큼 따라가질 못한 면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껌딱지 조각', '뻥튀기조각' 이라 폄하하여 부를 정도로 공공공해를 만들어 놓는꼴이 되어 버린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다 보니 '오브제 중심의 공공미술' 을 통해 공공미술에 대한 많은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 되었다. 미술이 미술관 밖을 나오기만 하면 공공의 것이 되는가? 공적 공간에 놓인 미술이 그 장소에 꼭 필요한 것인가? 공공 미술이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겐 어떤 의미인가? 등 현재 우리가 숨 쉬고 살고 있는 이 공간이 쾌적하고 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 되기 위해서 공공미술이 어떻게 개념 변화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실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많은 물음이 제기되고 그 성과가 누적되어 왔다.

미술계의 빅뉴스 중에서 공공미술의 방향에 큰 영향을 끼친 한 사건이 있었다. 1982년 뉴욕 번화가에 현대조각의 대표적 작가인 리처드 세라의 작품 「비스듬한 호 Tilted Arc」가 설치되었다가 1989년에 시민들의 반발로 철거되었다. 거대한 철재 강판이 광장을 가로지르며 세워진 작품이었는데 전통적인 공공미술 입장에서 보면 물리적 공간에 미술적 오브제를 설치, 전시하는 개념을 중시한 작품이지만 일반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작품은 공간에 대한 폭력, 미술의 강요, 가부장적 미술의 권위와 일상생활의 위계질서를 확인시켜주는 것일 뿐이었다. 결국 거장의 작품은 철거되면서 이후 공공미술의 공공개념을 장소적 개념(public space) 보다는 보는 사람, 공간, 환경 등 수용(Reception) 중심으로 시각이 확장되게 되었다.

리처드 세라, '비스듬한(기울어진) 호', 강철, 높이 3.6m 길이 36m, 뉴욕 연방정부 광장(1981).

이러한 비판적 과정을 통해 도출된 뉴 장르 공공미술은 일상생활의 창의적인 개입이라는 공공미술의 새로운 개념을 설정하고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피드백을 통해 공공의 장소가 소통과 교감의 장이 되는 그 과정전체를 공공미술로 보게 된다. 더욱이 인터넷의 자유로운 접근과 쌍방향 소통형 전자기술의 발달로 공공미술의 범주는 더욱 넓어지고 있는 중이다. 나아가 공공미술이 주변 사람의 창의력과 정치적 상상력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맡아 공동체의 실제 당사자가 공공미술의 '수용자'로서만이 아니라 '참여자'로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으로까지 확장되었다. 공공미술프로그램, 공동체벽화 같은 경우가 여기에 해당 된다.

이러한 뉴 장르 공공미술은 출발부터가 미술을 상품화하는 시장구조에 대응하는 미술활동이었다. 미술가들이 작품을 만드는 것 외에 살만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찾아내는 것이 도전의 방식이었고, 모더니즘미학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미술은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미술품들과는 달리 일반적으로 상품적 가치는 적다. 하지만 상품적 가치이상의 인간이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보편적 삶의 가치들을 일깨우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장소에 대한 주인으로서의 자각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공동체의 가치들을 가져다주고 있다.

현대의 도시와 공동체의 삶들은 점점 더 파편화 되고 모든 구성원들의 삶은 서로 연관되지 않고 그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모이고 서로 관계 맺게 할 수 있는 공적인 공간의 역할은 곧 현대인에게 치유의 공간이 되고 그 공간에 설치된 미술품은 상호 교감과 소통의 매개가 된다. 그래서 더더욱 공공미술은 지역의 역사와 자연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강력하고 의미 있는 관계를 창출하는 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훨씬 다양한 방식의 소통과 교감이 요구되며 사회구성원 모두의 공통된 가치 중심의 합의를 이끌어내어 함께 해결해 나가는 공동체의식의 실현이야말로 가장 희망하는 공공미술의 목표이다. 우리의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공공미술들에 애정과 관심 더 나아가  적극적인 참여들이 살만한 사회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실천의 한걸음이 될 것이다.

글쓴이 : 류준화

경북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과 석사과정을 이수하였다. 5회의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다수의 기획전 및 그룹전에 참가하였다. 현재 경북 봉화의 비나리 산골미술관을 운영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