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김범선_이야기가 있는 문화탐방]맹동산 바람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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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있는 풍경
맹동산 바람개비
글 김범선
석보면은 영양군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으로는 영덕군 창수면과 영해면에 접하고, 남으로는 청송군 진보면에 접하고 있다. 석보면(石保面)은 원래 석보부곡(石保部曲)으로 고은현(古隱縣 영양군)에 속해 있었으나 조선 숙종 3년에 영해부에 편입되었다가 고종 32년(1895)지방 관제 개편 때 영양현(英陽縣)에 편입 되었다. 석보면은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아 삼의(三宜)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이 화매천(花梅川)을 이루어 입암면 흥구리에서 반변천(半邊川)과 합류하여 낙동강의 상류가 되었다. 화매천의 발원지인 삼의는 원래는 산밑골로 불렸다. 산밑골이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해 민둥산이라 불리던 맹동산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래전 이곳에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만나 볼 수 있는 경원과 의남이 살고 있었다.
“낭자, 금년 가을에는 혼례를 올립시다.”
“어머나, 성질도 급하셔라, 호호.”
“낭자는 내가 싫소?”
“그건 아니지만, 아버님이 허혼을 해주실지?”
“걱정 마오. 내가 찾아뵙고 허락을 받으리다.”
경원은 의남(宜男)낭자를 왈칵 껴안으며 속삭였다. 의남 낭자의 아버지 박을호는 김경원을 몹시 싫어해 같이 어울리는 것을 금했다. 그러나 의남은 인물이 좋고 훤칠한 경원에게 끌려 상사병에 걸릴 지경이었다. 총각 경원은 4대 독자로 5세 때 어미가 창수면 친정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아비 은광은 술주정이 심해 술만 먹으면 아내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래서 경원은 어미 없이 아버지와 함께 산 밑 마을 북쪽에 살면서 야산에 불을 질러 화전을 일궈 옥수수와 감자 농사로 끼니를 연명하며 어렵게 살았다.
그러나 의남 낭자의 아버지 박을호는 산밑골 제일 남쪽 아랫마을에 살면서 나무바가지를 파서 판매하고 사는 살만한 집이었다. 의남 낭자의 아버지는 가난한 홀아비와 화전민 총각에게 딸을 줄 생각이 없었다. 의남 낭자가 살고 있는 산 밑 아래 쪽 마을은 원래 박점이라고 불렀는데 박을호가 그 곳에 자리를 잡고 참나무 바가지를 만들어 영양과 영해장에 팔고부터는 사람들은 그 곳을 바가지점(店)이라고 불렀다. 옛날에 고지바가지는 밥이나 물을 푸는 생활도구로 쓰였다. 그러나 쇠죽을 푸는 바가지는 손잡이가 길게 달린 튼튼한 나무바가지를 사서 써야 했다. 지금은 소에게 사료를 먹이지만 옛날에는 소가 농사일을 모두 하기 때문에 사람처럼 소도 커다란 검정가마솥에 콩깍지와 잘게 자른 볏짚을 넣고 소여물을 끓여서 밥을 해줬다. 쇠죽을 쑤고 식지 않게 구유로 옮기는 정성은 농사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귀한 소를 매일 배불리 먹이기 위해 한 번에 두되씩 퍼 담을 수 있는 단단하고 매끈한 박을호의 바가지는 사람들이 서로 값을 치르며 사갔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맹동산 신령님께 비나이다. 사모하는 경원이와 혼례를 올리도록 비나이다.” 의남 낭자는 밤마다 맹동산 꼭대기에 올라 신령님께 두 손 모아 빌었다. 그렇게 낭자가 맹동산에 올라 백일동안 기도를 드리자 꿈에 하얀 수염이 길고 키가 큰 신령님이 나타나 이렇게 호통을 쳤다.
“왜 밤마다 내 단잠을 깨우느냐, 당최 시끄러워 잘 수가 있어야지!”
의남 낭자가 무릎을 꿇고 경원이와 부부가 되게 해 달라고 고하자
“너희 둘은 전생의 업연으로 부부가 될 수 없는 사이니라, 허나 내 청을 들어주면 나도 생각해 보마.”
“무슨 청이요?”
“경원이가 삼년만 영해 가산리에 사는 심술쟁이 대봉산 산신령 할멈의 시중을 들게 하거라.”
“삼년이나요?”
“그 할멈은 내가 봉화산 산신령 할멈을 좋아하는 줄 알고 내가 잠이 들면 바닷바람을 자신의 몸으로 막아서지 뭐야. 날 골탕 먹이려고, 그 좋고 시원한 바람을 막으니 도대체 두통이 낫질 않아.”
“왜요?”
“왜라니? 질투심이지.”
“그럼 산신령 할멈이 밤마다 바람을 못 막아서게 경원이가 매일 사고를 쳐서 혼을 쏙 빼놓으면 될까요?” “아니지! 생각이 어찌 그리 짧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걸 줘야지. 실은 그 할멈이 시루떡을 아주 좋아해. 경원이가 시중을 들러 가면 골이 날 때 마다 시루봉에 가서 시루떡을 가져오라고 시킬 거야.”
“시루떡을요?”
“응, 그 할멈은 시루떡을 먹으면 힘이 나서 더 세게 바람개비를 돌려 내 두통을 멈춰 주거든. 심술쟁이 할멈은 경원이가 삼년 시중을 들면 집으로 돌려보내 줄거야.”
“삼년을 꽉 채우면 정말 보내줄까요?”
“그럼, 삼년이면 할멈도 심술이 풀려 시원한 바닷바람으로 내 아픈 머리를 식혀 주고 네 남편도 집에 보내 줄 거야. 난 몸속에 화(火)가 가득 차 있어 바람으로 차게 시키지 않으면 머리에 불이나.”
“정말, 그렇게만 하면 경원이랑 평생 살 수 있는 거죠?”
“그렇다니까 그러네. 허나,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게 있어. 삼년에서 하루라도 모자라면 그 심술쟁이 할멈이 경원이를 절대 안 놔줄거야.”
“삼년을 꼬박 산신령 할멈에게 가 있으면, 경원이 없이 저는 혼자 어떻게 살아요?”
“흥! 그거야 네 사정이지.”
“네? 그럼 3년이면 경원이 얼굴도 가물가물할 텐데..”
“나는 모른다니까.”
“한 달에 한번 아니 육개월에 반나절이라도 좋으니 경원이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아니면 저 혼자 그 많은 세월을 어떻게 감당해요.”
“어헛, 정 그렇다면 내가 할멈한테 얘기해서 하루 정도는 널 보러 올 수 있도록 얘기해 보지.”
“한 달에 하루요?”
“예끼! 일년에 하루! 그 이상은 안 돼. 그것도 감지덕지 한 거라고.”
“혹여 내가 잠을 잘 때 대봉산 산신령 할멈이 바람을 막지 않고 보내주면 밤을 어둠 속에서 헤매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밤을 대낮처럼 밝게 해주지.”
“어떻게요?”
“맹동산에 밤낮으로 바람개비를 돌려 빛으로 어둠을 밝혀 주리라.”
의남 낭자는 꿈에서 깨어났다. 온 몸이 땀에 듬뿍 젖어 있었다. 이튿날 점심 무렵에 어찌된 일인지 의남의 아버지가 그녀를 부르더니 경원이와 혼례를 허락한다고 말했다. 의남은 뛸 뜻이 기뻐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결혼을 해서 맹동산 연자골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신혼살림 3일 후에 그녀는 약속대로 남편을 대봉산 산신령 할멈에게 보냈다. 할멈은 약속대로 1년에 하루를 집으로 보내주어 두 사람이 합방을 하게 했다. 첫해에 의남은 첫째 아들이 태어나자 그 이름을 상삼의(上三宜)라고 지었다. 둘째는 중삼의(中三宜), 셋째 아들이 태어나자 하삼의(下三宜) 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렇게 3년을 보내고 마지막 날에 의남의 남편 경원은 답곡리(畓谷里)에 있는 시루봉에 올라가 떡을 가지고 내려오다가 문득 3년 동안 자기가 가져다준 시루떡이 어떤 맛인지 궁금했다. 걸음을 멈추고 떡을 한입 베어 물었다. 너무 달콤한 맛이었다. 갑자기 경원은 의남이 떠올랐다. 그녀가 너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 곧장 시루봉의 북쪽으로 내려가 의남이 있는 연자골의 집 대문으로 들어섰다. 경원이 의남을 부르자 그녀는 남편이 부르는 소리에 놀라 방문을 박차고 나왔다. 경원이 손에 들고 있던 시루떡을 내밀자 의남이 이게 뭐냐고 물었다. 경원이 달려온 연유를 말하자, 의남은 깜짝 놀라 시루떡을 돌려주며 대봉산으로 빨리 돌아가라고 호통을 쳤다. 경원이 시루떡을 받아들고 정신없이 달려 대봉산 울타리에 들어서자 갑자기 “꼬끼요” 하고 닭이 울기 시작했다. 이렇게 경원은 3년의 마지막 하루를 겨우 채울 수가 있었다. 경원이 대봉산 신령님께 시루떡을 내밀자 신령님이 말하기를,
“네가 삼년을 다 채웠으니 이젠 집으로 돌아가거라. 맹동산 신령과 약속대로 이젠 산으로 가는 바람을 막지 않겠다.”
맹동산은 주변의 산보다 높이가 높고 동해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강해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고 잡초만 자랐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무가 없는 맹동산이라고 불렀는데 세월이 흘러 맹동산(민둥산) 꼭대기에 바람개비(풍력발전소)를 만들었으니 산신령이 세 아들의 어머니인 의남과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경원과 의남의 사랑이 맹동산 산신령의 두통을 해결해 주었다는 이야기에서 보듯 석보면 맹동산으로 가면 동해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느낄 수 있다. 그 바람은 맹동산 풍력발전단지로 더 유명해졌는데, 해발 800m 능선을 따라 86기나 되는 거대한 바람개비가 돌고 있다. 투명한 푸른 하늘을 이고 초록벌판 위에서, 각기 다른 방향을 가리키며 바람의 결을 그대로 드러내는 하얗고 거대한 바람개비들. 풍경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눈을 크게 뜨고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먼동이 트거나 붉게 노을이 깔리는 하늘 아래서 혹은 밤하늘 빽빽한 별빛들을 스치며 천천히 도는 바람개비를 보면 자연이 건네는 조용한 격려를 받는다. 보이지 않으나 분명 존재하는 것들의 힘이 그립다면 영양 석보의 바람개비 앞에 서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글쓴이 : 김범선
- 김범선(소설가) 경북고등학교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한국문인협회문단윤리위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회원 한국소설가협회중앙위원 작품 눈꽃열차, 비창1,2권. 황금지붕, 개미허리의 추억(상, 하권), 킬러밸리. 노루잠에 개꿈, 당콩밭에 여우들, 영혼중개사, 협곡열차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