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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식_마을이 있는 문경시]칸나(Canna) 피는 푸른 언덕 – 창구(蒼邱)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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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있는 풍경
칸나(Canna) 피는 푸른 언덕 – 창구(蒼邱)마을
글 정창식
사진 김우용
칸나
“백로가 하얀 궤적을 울리며 푸른 산 사이를 빗금 지으며 날아갈 때/ 나는 정말 행복하다/ 너는 행복하니/ 칸나가 피어있는 내내 칸나는 행복하다.“
이봉하 시인은 “칸나가 피어있는 내내”라는 시에서 칸나가 피어있는 내내 행복하다고 노래했다.
칸나는 여름의 꽃이지만, 가을까지 핀다. 올해 이른 봄 마당에 칸나를 심었다. 꽃대만 보이던 칸나가 여름이 되자 부쩍 자랐다. 그리고 늦여름이 되어 붉은 꽃이 무리지어 피어났다. 여름 내내 소나기를 맞으며 온 몸을 휘청거리던 칸나는 정말 행복했을까? 시인은 시에서,
“행복하니? / 어제 소나기 맞아 휘청거렸지만 지금 난 행복하다.” 고 했다.
그런 칸나를 보며 행복해지고 싶다면, 산북면 창구마을을 찾아갈 일이다. 집 화단에 심은 칸나들의 고향이 그곳에 있다.
창구마을
창구(蒼邱)마을은 산북면의 끝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은 입구에서부터 칸나와 함께 아름답다. 그러나 사실 오래 전부터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은 초등학교 건물이다. 현재는 분교인 창구초등학교는 개교 73주년을 맞는 오랜 전통의 학교이다. 학교 주변은 마을을 보호하는 솔숲이 있었는지 남아있는 주변 소나무들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학교 교문 앞과 오른편 보건소 언덕 위의 소나무들이 그 흔적을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초등학교 입구 소나무
일부 남은 소나무와 솔숲과 함께 마을을 이채롭게 하는 것은 돌담이다. 언제부터였는지 마을에 돌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처음부터였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 그 돌담이 넘어지고 허물어져도 사람들은 다시 돌을 올려 담을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돌담 아닌 집이 없다.
마을돌담길
마을 삼거리에 낡고 오래된 집이 보였다. 바깥에 액자가 걸려있었다. 가까이서보니 한문으로 “창구서당”이라고 적혀있었다. 옛날에 마을의 서당으로 쓰였던 것일까. 마을사람들은 옛 서당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오며 가며 보고 있었다. 무너진 돌을 버리지 않고 다시 돌을 얹어 돌담을 지켜온 것처럼 옛 것에 대한 정취와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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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구서당 |
공소의 성모마리아상 |
창구마을은 칸나마을로 잘 알려져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오른편에는 점촌동성당 창구공소 건물이 있다. 1950년대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공소는 마을 신자들 스스로 예배를 드리는 성전이다. 그 공소 뒤에 언덕이 있다. 여기가 칸나언덕이다. 이곳에서 지난해까지 매년 ‘칸나음악회’가 네 차례 열려왔었다.
주민들 모습
이처럼 ‘칸나음악회’가 창구마을에서 열리게 된 데에는 연유가 있다. 오래전, 초등학교를 퇴임한 성당 신자 한 분이 창구공소와 그 주변을 관리하였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시내에서 이곳에 와 청소를 하고 꽃을 가꾸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을 앞 큰 도로를 지나던 어느 할머니가 꽃밭을 관리하던 그에게 다가와 혹시 홍초(紅草)는 어디에서 볼 수 있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빨간 꽃을 보고 싶다고 했다. 홍초는 칸나를 일컫는 다른 이름이다. 그가 할머니에게 여기에 칸나는 없다고 했더니, 아쉬운 듯 쓸쓸히 등을 돌려 길 아래로 내려갔다.
칸나언덕
그 해, 그는 할머니를 생각하며 공소 뒤 언덕을 개간했다. 그리고 다음 해 봄 칸나를 심었다. 여름 꽃이 피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오지 않았다. 마을의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막연히 할머니를 기다렸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홍초가 없다는 말에 크게 아쉬워하던 할머니의 눈과 굽은 듯 쓸쓸해 보이는 등이었다. 그때, 사람들이 이곳에서 칸나음악회를 열자고 했다. 그리고 혹시, 소문을 듣고 찾아올 할머니에게 저 붉게 핀 칸나, 아니 홍초를 맘껏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5년이 되었다.
지난해에도, 마을 사람들을 초청해서 음식을 대접하였다. 그리고 음악인들을 불러 흥겨운 노래를 함께 했다. 칸나와 함께하는 축제인 셈이었다.
지영대 바오로, 닮기 어렵지만 닮고 싶은 사람
“올해는 칸나가 더 예쁘게 피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칸나가 핀 것을 보고, 음악회를 열지 못하는 것을 무척 아쉬워하네요.”
그는 음악회를 할 수 없는 여건에 아쉬워하면서도 밝게 웃었다.
지영대 바오로, 그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성당의 곳곳을 청소하고 꽃과 나무들을 가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다. 가만히 보면, 그는 삶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길인지를 깨달아 이를 직접 실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깝고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지만 누구나 닮을 수 없는, 그러나 닮고 싶은 삶을 사는 그런 이다.
“올해는 코로나로 음악회를 할 수 없어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과 칸나를 구경하며 사진을 찍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어요.”
그와 더불어 매년 칸나를 심고 가꾸어 마을사람들과 ‘칸나음악회’를 함께 해온 이들이 칸나를 배경으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칸나음악회를 함께 해 온 사람들
그는 지금, 홍초를 보고 싶어 하던 그때의 할머니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칸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칸나를 보는 내내 행복하기를 기도했다.
“매일 바라보는 일상이지만 조금씩 바뀌어 지는 풍경들이 있어 행복하기만 하다/ .... 나는 정말 행복하다/ 너는 행복하니/ 칸나가 피어있는 내내 칸나는 행복하다.”
그렇다. 칸나가 피는 창구마을은 칸나가 피어있는 내내 행복으로 가득할 것이다. 시인이 노래한 저 시구처럼. 아마도 홍초를 보고 싶어 하던 그 할머니도 어디선가 칸나를 보고서 행복해 할 것이다.
칸나언덕에 서서, 문득 마을 쪽을 바라보았다. 유서 깊은 마을들이 그렇듯 이 마을에도 곳곳에 깊고 깊은 그러나 이제는 알 수 없는 전설들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아마 칸나에 대한 지금의 이야기도 언젠가 저 알 수 없는 전설들처럼 잊혀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칸나가 피는 동안만이라도, 마을사람들의 내밀한 이야기들에 귀 기울여 왔던 저 아름드리 소나무들과 이끼 낀 돌담들에 가을볕과 달빛이 내려 그들의 눈과 귀를 잠시 졸게 하면 좋을 듯하다. 그때에 조용히 그들에게 칸나를 노래한 시인의 마지막 시구를 들려주고 싶다.
“칸나가 피어있는 내내 칸나는 행복하다.”
푸른 언덕, 창구마을에는 올해에도 칸나가 붉게 피었다.
칸나언덕
- 글쓴이 : 정창식
- ▪ 현 문경문화원 이사 ▪ 안동대학교 문화산업전문대학원에서 스토리텔링을 전공하였다. [주간문경]에 문경문화와 관련된 글을 연재하고 있다. 문경의 자연과 마을, 유적과 문화재 그리고 오래된 이야기들을 새롭게 봄으로써 문경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싶어한다. ▪ 저서 수필집 "아름다운 선물 101" (2010) 에세이집 『아름다운 선물 101』 은 우리 인생에서 있어서 스치는 인연들과의 소중한 관계, 베풂의 마음 등 일상에서 느낀 감정들을 엮은 책이다. 수필집 "문경도처유상수" (2016) 주간문경에 2010년부터 연재하고 있는 문경문화와 관련된 글 중 57편을 선별해 책으로 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