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컬처라인_마을이 있는 풍경]예천 용문사에서 윤장대를 돌리다
• 컬처라인(cultureline@naver.com) 2018-09-10

 

 

이야기가 있는 문화탐방

 

 

예천 용문사에서 윤장대를 돌리다

 

 

글. 이인숙

 

 

 

예천 용문사

 

 

우리나라에는 신라시대 때 만들어진 3대 용문사가 있다. 용의 머리라고 일컫는 경기도 양평의 용문사, 용의 꼬리에 해당되는 경남 남해의 용문사, 마지막으로 용의 심장이라고 일컫는 용문사는 경북 예천에 있는 용문사이다. 그 중 예천 용문사는 신라 경문왕 10년(870) 두운(杜雲)선사에 의해 창건된 천년고찰로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에 자리 잡고 있으며, 고즈넉함과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조용한 가람이다. 

 

이곳 예천 용문사에는 목각탱화를 비롯하여 성보문화재 10여점이 현존하고 있는데, 지면을 빌어 소개하고 싶은 보물은 용문사 대장전(大藏殿-보물 제145호) 안에 안치된 목조 공예품 한쌍이다. 용문사에 오면 놓치지 말고 봐야 할 용문사의 백미이자, 여러 불구(佛具) 가운데 가장 이색적이며, 으뜸으로 손꼽히는 윤장대(輪藏臺-보물 제684호)가 바로 그것이다. 윤장대는 고려 명종 3년(1173) 대장전이 건립된 시기에 만들어 졌다고 추정되며, 높이 4.2m, 둘레 3.15m의 불교 경전을 보관하던 일종의 경장이다. 전륜장(轉輪藏), 전륜경장(轉輪經藏)이라고도 하는 이것은 내부에 불경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서 극락정토(極樂淨土)를 기원하는 의례를 행할 때 쓰던 도구이다.

 

 

윤장대

 

 

먼저 윤장대의 구조를 살펴보면, 윤장대는 불단(佛壇)을 중심으로 좌우에 1기씩 모두 2기가 놓여있는데 화려한 팔각정자 형태이다. 마루 밑에 회전축의 기초를 놓고 윤장대를 올려놓았으며, 지붕 끝을 건물 천장에 연결하였다. 아래 부분은 팽이모양으로 뾰족하게 깎아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하였고, 난간을 두른 받침을 올린 후 8각의 집 모양을 얹었다. 8각의 집 모양에는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각 면마다 8개의 문을 달았으며, 문은 좌우로 구분되어 4개의 문에는 꽃무늬 창살이, 다른 4개의 문에는 빗살무늬 창살이 정교하게 꾸며져 있다. 문을 열면 8면에 서가처럼 단이 만들어져 경전을 꺼내볼 수 있도록 하였다.

 

 

천년의 시간동안 변하지 않는 가치를 묵묵히 보여주고 있는 이 윤장대는 불교 목조예술품의 걸작으로도 그 가치가 충분하나, 윤장대 스스로 경전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현재는 훼손을 우려하여 손잡이가 자물쇠로 채워져 있으며, 일 년에 두 번 윤전법회가 있는 음력 3월 3일 삼짇날과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돌릴 수 있다.

 

 

 

 

 

이 신기한 물건의 뿌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먼저 옛 불교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티베트와 중국에서 천년보물 윤장대의 비밀을 찾아보자. 

티베트인들은 일상과 종교를 나누지 않고 살아간다. 사원이나 불탑뿐만 아니라 어디서든 “옴마니반메훔” 육자진언(六字眞言)을 외며 시계방향으로 마니차를 돌리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마니차는 마니륜 혹은 법륜이라고도 불리며 내부에 불교 경전을 넣어 놓은 일종의 경통(經桶)으로, 그 형태는 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것부터 집채 만한 크기의 아주 거대한 것도 있다. 이들이 마니차를 돌리면서 경을 읊조리는 일은 지난 잘못을 참회하고 공덕을 쌓으며 복을 비는 행위로, 한 번 돌릴 때마다 경전을 한 번 읽는 것과 같다고 믿고 있다.

티베트인들 중 문자에 어두운 사람들이 경전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같은 효험이 있다는 믿음은 유행처럼 번져나갔고, 이러한 믿음은 마니차의 대중화를 이끌어냈다. 경통을 돌리며 불심을 찾으려는 티베트의 마니차와 우리나라의 윤장대가 많이 닮아있다.

 

또 다른 흔적을 살펴보려면 중국 하북성 석가장시 융흥사(隆興寺)를 찾아가야 한다. 융흥사는 수(隋)나라 문제 때인 586년에 창건되었고, 본래 명칭은 용장사(龍藏寺)였는데, 청나라 강희제 45년(1706)에 융흥사라는 편액을 내리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이곳은 1400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가진 만큼 중국의 10대 사찰 중 하나로 중국의 여러 보물들을 품고 있으며, 그 보물 가운데에는  북송시대에 2층 누각식 목조건물로 지어진 전륜장각(轉輪藏閣)이 있고, 그 내부에는 7m 높이의 8각형 목재로 만든 전륜장이 있다. 이 전륜장 또한 대장경을 꽂아두는 회전식 책장으로 경전을 신앙의 중심에 둔 전륜의식의 꽃으로 자리매김했으며 깨달음의 바퀴로 중생의 교화와 공덕을 도왔다.

 

묘하게 얽혀서 서로 닮아 있는 티베트의 마니차, 중국의 전륜장, 한국의 윤장대는 다른 이름으로 같은 의미를 가진다. 전륜장은 굴러가는 수레바퀴를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붓다의 가르침을 흔히 법륜이라 하여 수레바퀴에 비유하고 있는데, 수레바퀴가 때와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굴러가듯 부처님의 가르침 또한 특정인물이나 장소에 머물지 않고 모든 곳에서 모든 중생을 교화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매우 어렵게 느껴지는 불경을 글이 어두운 중생들을 위해 한번 돌릴 때 마다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쌓게 한 부처님의 굴러가는 수레바퀴는 모든 경계를 지우고 불국정토와 속세 사이를 하나로 묶는 쌍방향 소통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럼 윤장대는 어떻게 고려로 오게 되었을까?

 

수많은 문인들은 󰡐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땅에는 항주(杭州)가 있다.󰡑라고 항주를 칭송하고 있다. 항주는 송나라의 수도로 항주 고려사(杭州 高麗寺)가 있는 곳이다. 이 사찰은 927년 창건 당시 혜인선사(慧因禪寺)라 하였는데, 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인 의천(義天, 1055~1101)이 사찰의 중창을 도운 뒤부터 고려사라고 하였다 한다. 고려사는 중국의 명승지 10경인 서호(西湖) 인근의 천년고찰로 화엄종의 중심이다. 당시 고려는 송나라로 부터 발달된 문화를 받아들이기를 원했고, 송나라는 고려의 힘을 빌려 거란과 여진을 물리치기 위해 화친(和親)을 도모하여 서로 활발한 교류를 하였다. 또한 고려왕조는 불교를 사상적 기반으로 삼아 왕에서 천민에 이르기까지 불교를 숭상해 승려들을 중국으로 보내기도 했는데, 이런 연유로 고려의 승려들과 고려사는 자연스레 인연이 닿았다. 고려사는 송나라시대 고려의 영사관처럼 여겨졌으며, 때문에 한중 불교문화 발전에 기여한 인물들 중에는 고려사를 경험한 고승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 중 의천은 중국에서 화엄종과 천태종, 선종, 율종 등을 배우고 귀국 후 불교경전에 대해 해설하고 전파하였는데, 아마도 고려에서 윤장대를 볼 수 있는 것은 이 때 의천과 그의 제자가 송나라에서 불법을 공부하며 얻은 것으로 본다. 

 

 

 

 

 

 

 

고려의 많은 사찰 중 왜 용문사에 윤장대를 두었을까? 

 

예천 용문사는 두운선사가 두운암이라는 암자를 만들면서 창건된 이후 현재의 예천 용문사로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사찰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신라를 정벌하러 내려가다 두운선사를 만나려고 이 사찰을 찾았으나 운무가 자욱하여 지척을 분간치 못했는데, 어디선가 청룡 두 마리가 나타나 길을 인도하였다 하여 용문사라 불렀다고 한다. 사찰의 이름을 붙였던 왕건은 용문사를 각별하게 생각하여 칙명으로 936년(태조 18)에 사찰을 크게 중수했을 뿐 아니라, 매년 150석의 쌀을 하사하였다고 전해진다. 

 

1972년 대장전 건물 수리 시 발견된 중수상량문(重修上樑文)에 윤장대를 설치한 연유를 ‘인도의 고승이 대장경을 용궁에 소장하였다.’는 고사에 유래를 두고 있으며, 용의 전설이 있는 용문사에 윤장대를 설치하여 국태민안을 기원했다고 한다. 이는 고려시대에 이곳에서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많은 법회가 열린 것으로 미루어 보아 용문사가 호국사찰(護國寺刹)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도 윤장대가 이곳에 설치 된 당위를 뒷받침 해 주는 듯하다. 

대장전 중건 시 두운대사가 제자 자암(資嚴)을 시켜 건물과 윤장대 2좌(座)를 당삼칸(堂三間)에 설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윤장대 내부에 천계(天啓) 원년(元年, 1621년) 중수(重修)라는 묵서(墨書)가 남아있다.

 

 

사람들은 복을 빌고 소원을 빌기 위해 윤장대와 마니차를 돌린다. 불교의 경전이 좀 더 쉽고 가깝게 느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됐지만, 원을 그리며 윤장대를 돌리는 일은 선각자들의 또 다른 가르침이 숨어 있는 듯하다. 윤장대의 손잡이를 쥐고 있는 동안만이라도 힘든 마음을 내려놓거나, 돌리는 시간 동안 모난 마음도 함께 둥글게 만들어 보거나, 지금 마음속의 간절함을 얘기하거나 자신의 마음과 마주하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법륜스님은 마음은 형체가 없고 성질 자체가 꾸준하지 않아 매 순간 끊임없이 일어났다 사라지며, 마음이 처한 조건과 상황에 따라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한 반쪽자리 행복에 대해 설파했다. 또 법구경(法句經)에서 행복과 불행에 대해 부처님의 경지를 이렇게 설파했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고,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은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먼저 깨달은 자들은 현재를 그대로 두고도 행복할 수 있는데 마음의 변덕에 속아 자신 안의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그래서 비우지 못하는 건 아닌지 찬찬히 들여다보면 몸과 마음의 고요가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윤장대를 밀어 돌리는 그 시간에 알려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글쓴이 : 컬처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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