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백소애_쑤세미의 골방에서 만화읽기]“슬픔이란 어떤 걸까?” <아이사와리쿠>
- 백소애(cultureline@naver.com)
“슬픔이란 어떤 걸까?”
〈아이사와 리쿠〉
백소애
<아이사와 리쿠>
이 책은 알라딘 중고매장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하루에 한 컷씩 인터넷에 연재하며 인기를 모은 일본만화 〈오늘의 네코무라 씨〉의 작가라는 사전 정보도 없이 나는 책 표지와 속지만 대강 훑어보고도 구입을 망설이지 않았다.
연필로 소묘하듯, 만화의 밑그림을 그리다 만 것 같은 담백한 그림과 간결한 글. 소녀의 불안한 내면과 어른들의 갈등이 빚어내는 풀롯은 한편의 성장소설을 읽고 난 후의 감동을 느끼게 한다. 소녀의 이름은 바로 책의 제목인 ‘아이사와 리쿠’이다.
열네 살 소녀 아이사와 리쿠는 자상하고 성공한 사업가인 아빠, 똑똑한데다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한 엄마와 함께 도쿄에 살고 있다. 리쿠는 눈물을 곧잘 흘리곤 하는데, 그 눈물은 사실 가식의 눈물이다. 정말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뜬금없이, 혹은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싶거나, 불리한 위치에 있을 때, 필요한 것이 있을 때, 두 뺨에 또르르 눈물을 흘리며 운다. 그 청초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그녀의 최대 무기가 되었고 리쿠는 그걸 잘 활용할 줄 아는 맹랑한 여중생이다.
“
지루해 살짝 울어볼까… 난 사람들 앞에서만 눈물을 흘릴 수 있다.
아무도 보지 않으면 눈물의 의미가 없으니까.
”
쇼윈도 가족. 완벽하고 행복해 보이는 리쿠의 가정은 사실 그렇지가 않다. 능력 있고 자유롭고 멋진 아빠는 회사의 아르바이트생과 불륜 관계고 그 사실을 모르지 않는 엄마는 결벽에 가까운 모습으로 딸에게 호된 감정의 혼란을 겪게 한다. 일찍부터 감정을 숨기는 것을 절제의 미덕쯤으로 알아온 리쿠는 그래서인지 ‘가짜눈물’을 쏟곤 한다. 또래의 친구들이 사소한 아픔에 슬퍼할 때에도 리쿠는 공감하지 못한다. 그래서 궁금해 한다. ‘대체 슬픔이란 어떤 걸까?’ 하고.
어느 날 리쿠는 아빠의 그녀가 선물로 준 새를 손으로 짜부라뜨리게 되고, 엄마는 리쿠의 행동에 실망해 마침 자기 자신의 시간을 갖고 싶기도 하다며 리쿠를 간사이 고모할머니 댁으로 보낸다.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엄마를 대신해 새를 괴롭혔을 뿐이라 생각한 리쿠는 ‘성가신’ 엄마에게 반항하는 마음으로 간사이 행을 결정한다. 유기농이 아닌 것은 먹지도 않고 생수가 아닌 물은 마시지도 않고 애완동물조차 병균이 옮을까 만지도 않는 리쿠의 일상은 왁자지껄 고모할머니 집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큰 변화를 맞게 된다.
그저 잠시 다닐 시골 학교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아 도쿄 학교의 교복을 그대로 입고 다니는 리쿠는 이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정이 넘치는 고모할머니와 가족들은 특히 리쿠를 더욱 더 힘들게 한다. 죽을 뻔했던 새는 리쿠와 함께 간사이로 오게 되는데, 리쿠 가족에겐 그저 ‘새’로 불리더니 고모할머니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삐약이’란 이름을 갖게 된다. 마음껏 웃고 떠드는 고모할머니 댁의 모습은 감정을 다스리고 진심을 숨기는 리쿠의 가족들과 처음부터 너무나 달랐다.
고모할머니 댁에는 손자인 도키오가 자주 오는데, 병약한 도키오는 특히 리쿠와 삐약이에 대한 애정이 넘쳐난다. 어느 날 도키오는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게 되고 도키오에게 큰 병이 있음을 짐작한 리쿠는 자신에게 병이 옮지 않느냐는 말을 할 정도로 여전히 냉소적인 도쿄 깍쟁이로 생활한다.
촌스러운 간사이 사투리를 증오하는 리쿠는 사람들과 얘기하기 싫을 때면 그저 달린다. 그런 리쿠는 달리기 실력이 무척 늘어 체육선생님이 탐낼 정도의 실력이 되어버린다. 전학 온 첫날 바로 리쿠의 가짜 눈물을 눈치 챈 나이 지긋한 선생님, 집안형편이 어려워 이전 학교 교복을 계속 입고 다닌다는 배려 넘치는 거짓말로 리쿠의 화를 돋우는 순박한 시골 아이들과 리쿠의 이기적인 마음을 알고도 사랑으로 대하는 고모할머니 식구들.
리쿠는 어느 날 부턴가 더는 눈물이 나오지 않게 되고, 차일피일 도쿄행을 미루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한편 쓰러진 도키오는 병원에서 무사히 수술을 끝내게 되고 리쿠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누나와 삐약이가 너무나 보고 싶다’는 도키오의 전화를 끊고 리쿠는 간사이의 골목길을 마구마구 달린다. 달리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한적한 부둣가에서 홀로 눈물을 흘리며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린다. 리쿠는 진짜 눈물을 흘리게 되고 그토록 궁금해 했던 슬픔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도도한 애늙은이 소녀의 성장기는 코끝이 찡해지는 마지막 에피소드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드디어, 기어이, 마침내 울 수 있게 된 소녀와 그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감정을 절제하며 차갑기 그지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리쿠의 엄마가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일탈을 꿈꾸며 옛 연인을 만나는데 그는 더 이상 상대를 상처 주는 것으로 애정을 확인하지 말라는 충고를 한다. 감정의 교류와 소통에 서툰 현대인들은 사랑을 하는 방법에도 서툰 것이다.
아낌없이 배려하고 애정을 나눠주는 고모할머니 댁 가족들과의 생활에서 진정으로 슬픔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법을 깨닫게 되는 리쿠의 성장기를 통해 우리는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슬퍼하는 ‘정주행’사랑법을 알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앞으로 리쿠의 가족이 해체되거나 혹은 관계가 회복되더라도 아이사와 리쿠는 이미 예전의 리쿠가 아닐 것이다.
- 글쓴이 : 백소애
- 강원도 태백 출생. 아이큐는 낮지만 머리가 좋다고 굳게 믿고 있음. 변덕이 심하고 우유부단하나 따뜻한 품성을 지니고 있다. 조카들에게 헌신적이며 인간성 또한 좋다.....고 믿고 있다. 학생 때 교무실에서 밀대자루로 바닥 밀면서 은밀히 훔쳐본 생활기록부에는 ‘예의 바르나 산만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한참을 갸우뚱 하다가 담임이 수학선생님이었기에 그냥 이해하기로 함. 다소 후진 취향을 지니고 있으나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쓸데없는 걱정과 호기심이 많음. 같은 계획을 몇 년째 하고 있으며 역시나 올해도 다이어트와 앞머리 기르기에 도전할 생각이며 과메기에 없어서는 안 될 다시마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 웹툰도 괜찮지만 만화책은 역시 종이책으로 보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아날로그 건어물녀. 좋아하는 것은 무한도전, 오뎅으로 만든 떡볶이, 삼겹살에 매실소주, 비오는 날, 생활의 달인,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괴짜가족 류의 저질유머. 비 오는 날 무한도전 틀어놓고 배 깔고 누워 만화책 보면서 빈둥거리며 사는 것이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