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햇살이 바람을 타고 살랑 꽃소식을 몰고 오는 봄날입니다. 모처럼 한가로운 주말, 오후에는 백원역 장터에 다녀와야겠다 생각하는데 손전화가 울렸습니다. 지리산 이원규 시인 목소리였습니다. 올해 모터사이클 안전기원제에서 안전기원문을 낭독하기 위하여 도남서원에 와있는데 얼굴이나 보자는 부름이었습니다.
잠시 들른 도남서원 주차장에는 1,000여 대의 모터사이클과 라이더들로 꽉 차있었습니다. 여성 라이더도 많이 보이는데요. 그 많은 라이더들 중에 시인은 단 한 명이라는군요. 이원규 시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숨 쉬는 것과 더불어 걷는 것이다. 그 다음이 자전거를 타는 것. 내가 생각하는 이 세상의 ‘탈것’들 중에 가장 매력적인 것은 모터사이클”이라고 말하는데요. 그는 “날마다 이곳저곳 걷거나 혹은 달리면서 속도와 반속도의 경계를 넘나들고”시를 쓰는‘기마족’ 철학을 지닌 길 위의 시인입니다.
이원규 시인과의 반가운 만남도 잠시 아쉬움으로 접고, 두 시에 열리는 백원 장을 보기 위해 부랴부랴 백원역으로 갔습니다. 벌써 장터 들머리엔 마을 어르신들로 구성된 풍물패의 길놀이로 장이 흥겹게 열리고 있었습니다.
백원역(白元驛)은 상주역과 양정역 사이, 상주시 사벌면 원흥리에 있습니다. 1924년 12월 25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여 2008년까지 경북선 무궁화호가 운행되었으나 세상의 속도에 밀려 폐역되었지요. 지금은 역사를 드나들게 했던 문이 판자로 가로막힌 채 캄캄 적막을 끌어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새로운 봄바람이 불었습니다. 1년 전부터 사람들 발소리 흥성흥성 북적이기 시작했는데요. 한 달에 한 번, 셋째 주 토요일마다 장이 서게 된 것이지요. 자급자족의 정신을 펼치는 백원 장은 뜻 있는 선생님들과 학부모, 마을 사람들과 학생들이 즐거이 참여하며 형성되었는데요. 폐교 위기에 처했던 백원초등학교가 살아나고 폐역에 사람 냄새가 돌면서 활기를 얻고 있습니다.
<없는 게 없는 백원역 앞 장터>
백원역 앞 장터엔 마을 주민들이 농사지은 콩, 옥수수 등 곡물과 두릅, 원추리 등 봄나물이 소박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초중등 학생들이 들고 나온 학용품과 책, 완구, 옷가지 등 재활용품이 옹기종기 진열되어 있었고요. 고소한 냄새 풍기는 빵과 쑥떡, 어묵, 수제소시지, 두부, 부침개 등이 입맛을 당기고 직접 만든 예쁜 바느질 소품과 머리핀, 압화, 천연비누도 눈길을 잡았습니다. 심지어 오래전 농경사회의 풍경사진 같은 낫과 칼을 갈아주는 곳도 있었지요.
시장이 꼭 커야만 하고 갖추어진 물건을 사고팔아 이윤이 거래되는 곳만이 아니라는 걸 백원 장에서 배웁니다. 돗자리 깔고 탁자 하나 놓으면 근사한 점포가 됩니다. 정성으로 물건을 나누며 사람과 세상이 소통하고 하나 되는 장다운 장인 것이지요. ‘벼리네 별난가게, 오! 백원 달걀!, 꽃집 아가씨, 양지바른언덕, 리틀김만덕백화점, 쌍둥이네’ 등 아기자기한 간판들은 또 하나의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이 모종 이름이 모종?’ 재치 있는 간판을 세워두고 모종을 파는 중학생 주영이는 싱글벙글입니다. 시골집 마당 한쪽에 심을 요량으로 딸기 모종 세 포기를 샀습니다. “이 모종은 어떻게 가져온 거니?” 하고 물었더니 “아, 얘네들요. 우리 집 마당 텃밭에서 조금씩 떼어냈어요. 우리 집 텃밭은 완전 거덜났어요.” 하며 재미있는 웃음으로 답변합니다. 네일아트를 하는 정윤이 가게는 여자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입니다. 네일아트 솜씨도 이만저만이 아니고요. 줄을 지어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엽기만 합니다. 참 신기한 일이지요. 주말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자유를 즐길 만도 한데 장터에 나온 아이들은 하나같이 명랑한 웃음꽃입니다.
<주영이의 "모종" 집 간판>
백원 장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물건 값에 있습니다. 웬만한 물건은 몇백 원밖에 하지 않아 사면서도 오히려 미안하기까지 한데요. 물건 값이 1,000원을 넘을 경우 100원이 따라붙습니다. 1,100원, 2,100원, 10,100원 등이 바로 그것인데요. 이 100원이 아주 소중한 이웃의 생명을 보듬습니다. 길거리 떨어져 있어도 잘 줍지 않는 동전 100원이 참으로 큰 힘을 발휘합니다. 조금씩 모이고 모여 이미 네팔 지진참사 돕기에 보내지기도 했고 나눔의 집 등 이웃돕기 후원에 쓰이기도 합니다. ‘100원’은 백원역의 ‘백원’을 재치 있게 살린 사람살이의 숭고한 정신이며 소중한 세상의 가치입니다. 요즘 물건 값은 보통 4,900원, 9,900원 등 100원을 깎아주는 값으로 호객하는 게 유행인데요. 오히려 100원을 더 붙여도 살맛나는 장, 백원입니다.
하윤이 할매 조영옥 시인께서 손수 내려주는 커피도 5백 원입니다. 탁자에 진열된 이계삼 칼럼집 『고르게 가난한 사회』 책을 한 권 샀더니 고맙고 송구하게도 선생의 책 『긴 망설임의 끝, 선택의 행복』을 사인해주시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다 뜻밖에 맞은편에 앉아계신 우포늪 지킴이 이인식 선생과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겸사겸사 일부러 장을 보러 오셨다고 하네요. 선생께서는 구부러진 나무연필과 갓 볶은 원두가 들어있는 커피봉지를 보여주면서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거라며 흐뭇해하셨습니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장 규율에 따라 예쁜 머그잔에 담겨 나온 커피를 마시며 장터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그 조그마한 공간에 어찌 그리 많은 물건이 있고 먹을거리가 있고 사람들이 많은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연필과 괴불주머니가 특히 마음에 들어 연필 세 자루와 괴불주머니 한 개를 골랐습니다. 좀 여러 개 사서 지인들에게 선물을 하면 좋겠다 싶었지만 다음 사람들을 위하여 참았습니다. 워낙에 정성과 따듯함이 배어있어서인지 물건들이 금방금방 팔려나갑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장터는 점점 왁자지껄 흥이 넘쳐납니다.
바른 길은 바로 가지만
굽은 길은 함께
굽이치는 법도 알거늘
그 길밖에 모른다고 쯧쯧
그저 그렇거니
함부로 덤부로 말하지 말라
꽃 그늘은 있거나 말거나
으드득 지친 노곤함과 함께
퍽퍽한 생애도 싣고 가거늘
-윤임수, 「경북선」 전문(『상처의 집』, 실천문학사, 2005)
경북선은 경부선의 김천과 중앙선 영주를 잇는 단선철도로 경상북도의 내륙을 통과하는 철도입니다. 한국철도공사에서 일하고 있는 윤임수 시인의 첫 시집 『상처의 집』에 실린 “삶의 고난을 어깨 너머 활짝 웃는 달로 치환할 수 있는(박수연 평)” 시편들을 따라가다 이 「경북선」에 이르러 잠시 심호흡을 합니다.
윤임수 시인은 상주역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습니다. 또한 그는 옥천 이원역에서도 근무를 했는데요. 윤 시인에게 “백원이 큰가, 이원이 큰가?” 안부를 전하면 “그래, 백원이 훨씬 크지.” 답하며 웃곤 하지요.
대학원 다닐 때 나는 경북선 기차를 타고 청리, 김천을 거쳐 경산에 있는 학교를 오가곤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경북선은 발이 되고 길이 되고 삶이 되었지요. 기차는 “바른 길은 바로”, “굽은 길은 함께/굽이치는 법”을 알아야 자신의 길을 똑바로 가게 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니 “그 길밖에 모른다고” “함부로 덤부로 말하지 말” 일입니다. 우리네 삶이 어찌 바르고 간명한 길만 있겠는지요. 어찌 또 가파르고 굽이치는 길만 있겠는지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사람 사는 맛이 나서 좋아여. 평상신 조용하기만 한데 동네서 풍물도 치고 사람들이 이케 찾아오고 하니 참말로 좋고 말고지. 근데 장날 우리 가게서 사갈 건 별루 없어. 그래도 신이 나여.” 풍물소리에 추임새를 얹어주시던 장터 앞 백원상회 아주머니 말씀입니다.
“지난 장에는 상추를 만 오천 원어치나 팔았어. 내가 농사지은 걸 여서 이래 팔고 하니 좋지. 사가는 사람도 이래 흙 터서리 묻어 싱싱한 걸 가져가니 좋다고 그래. 오늘은 우리 딸네도 온다고 했어. 장이 서니 재밌디야.” 백원역 길가 밭을 가꾸는 할머니께서도 한 말씀 거드셨습니다.
세상의 속도는 날이 갈수록 빨라집니다. 기차 역시 그렇습니다. 나에게 “이 세상의 ‘탈 것’들 중에 가장 매력적인 것은” 기차입니다. 기차를 처음 타본 건 여덟아홉 살 무렵이었습니다. 김밥과 삶은 달걀을 싸서 고모 손을 잡고 서울어린이대공원을 가던 때였습니다. 그때 기차 안에서 먹었던 김밥과 사이다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단체 소풍을 갈 때도 기차와 함께였지요.
<단색과 반짝이 네일 500원>
추억으로 가는 길엔 늘 기차가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빨라지고 휙휙 변해간다 해도 추억은 또렷이 살아있습니다. 세상의 속도에 밀려 작은 역들이 폐역이 되고 기차 또한 그냥 지나치기 일쑤이지만 추억은 여전히 철커덕 철커덕 레일을 밟습니다.
지금도 기차는 도시나 시골이나 편안하게 나를 이끄는데요. 책을 읽거나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어디를 가는 일은 설레는 일입니다. 특히 요즘 작은 역을 지날 때는 개나리 가지가 기차 창문까지 늘어지거나 고라니가 기차 옆 논에서 노는 것도 보게 됩니다. 먼 산에 구름처럼 어우러진 산벚과 조팝나무 무더기를 보게 되면 탄성이 절로 나오지요.
이원규 시인은 봄꽃은 사람의 속도로 걸어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터사이클을 타는 것은 “바람 불면 바람의 정면으로 달리거나 혹은 측면의 바람에 온몸을 기대는 일”이라는데요. “삶의 급격한 경사를 만나면 내 몸과 마음도 그만큼의 긴장을 팽팽히 유지하고, 코너를 만나면 또 그만큼의 기울기로 유연하게” 몸을 던지는 기차의 품새와 다를 바 없지요. 그래서 “많이 걷고 많이 달리는 것”은 어쩌면 작고 낮은 곳, 백원역 장처럼 느려서 비껴난 세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한 절절한 삶의 방편일 것입니다.
거실 탁자에 놓인 나무 연필 세 자루를 쥐어봅니다. 복숭아나무, 싸리나무, 대나무 뿌리 연필입니다. 아빠가 버려진 나무에 심을 박아 만들어주셨다며 연필을 팔던 예쁘장한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생각나 저절로 환해집니다. 복숭아나무 연필에선 어쩐지 복숭아 꽃향기가 납니다.
<복숭아나무, 싸리나무, 대나무 뿌리 연필>
백원역에 작은 북 카페, 공부방 같은 게 꾸려져 굳게 닫힌 문이 다시 활짝 열리길 소망해봅니다. 기차가 하루 단 한 번이라도 잠시 서서 휴우~ 숨을 한 번 크게 내쉬다 가면 좋겠습니다. 이 봄, 신산하고 “퍽퍽한 생애”를 끌어안은 백원, 함창, 영주역을 지나 해 뜨는 정동진까지 굽이굽이 사람의 속도로 달리는 경북선 기차를 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