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컬처라인_마을이 있는 풍경]문경새재아리랑 별곡
- 고성환
문경새재아리랑 별곡
도시사람들은 ‘깡촌에 사는 문경사람들은 뭘 먹고 사느냐?’고 곧잘 묻는다. 그들은 도시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직장이나 사업장으로 출근해서 저녁 늦게 돌아왔을 것이다. 밤낮 가리지 않고 세상을 밝혀주는 전등 아래 이곳저곳에서 돌아 온 가족들과 별 다른 이야기도 못 나누고 피곤에 지쳐 내일을 위해 머리를 눕혔을 것이다.
먹을 것, 즐길 것 줄이고 억제해서 통장에 동그라미를 늘려왔을 것이다. 그들이 묻는‘뭘 먹고 사느냐?’란 ‘돈 좀 있느냐?’는 완곡한 물음일 것이다. 뭘 해서 돈 벌고, 벌었으면 얼마나 되겠느냐는 다소 무시하는 질문의 에두른 표현일 것이다.
문경에도 사람들은 언제나 뭘 먹고 살았고, 또 살아간다. 그 속에서 재벌도 났고 인물도 났다. 서울보다 1.5배 넓은 땅과 서울 못지않은 자연경관을 갖고 있다. 일제 때부터 1990년대 초까지 ‘흑진주(黑眞珠)’라고 불리던 무연탄을 60여년 생산하면서 공기업인 석탄공사도 있었고, 재벌기업인 봉명탄광, 대성탄광, 장자탄광도 있었다. 길에 나가면“개도 돈을 물고 댕긴다.”고 했다. 다방에서 ‘사장님~’하고 아가씨가 부르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 대부분이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일어서기도 했던 ‘사장 풍년’의 땅이었다.
또한 점촌에서 문경읍으로 이어진 3번 국도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시내버스는 언제나 만원이었고, 탄광 사택들이 있던 대성, 불정, 남호에는 젊은 아낙들이 분내를 풍기며 이 시내버스를 이용했다. 그 중에는 탄광 막장에서 저 하늘로 먼저 간 사람의 아낙이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원색 옷을 입고, 짙은 화장을 한 채 버스를 타면 사람들은“춤바람이 났다.”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탄광에 다니던 광부들 중 대부분은 알뜰한 살림꾼들이라, 월급을 타서 재형저축, 비과세저축으로 목돈을 마련했으며 이 목돈으로 논을 샀다. 그리고 일주일마다 갑, 을, 병반으로 순환 근무하는 틈을 이용하여 벼농사를 알뜰하게 지었다. 휴일에 모를 심고, 출퇴근길에 논물을 보고, 피를 뽑았으며, 휴일에 타작을 했다. 이런 광부들을 ‘비락딱방매이’라 했다.
아주 슬픈 일도 많았으니, 탄광재해로 젊은 날에 남편을 잃고,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잃은 아들딸들이 많았다. 지금은 문경공업고등학교지만, 그때는 문경종합고등학교에 ‘광산과’가 있었고, 이 과를 졸업하면 대부분 광산의 ‘감독’자리를 받았다. 감독은 사원과 노동자의 중간 고리에 위치하지만, 광부들이 일하는 대로 월급을 받아서 대부분 고임금을 받는 선망의 자리였다.
이웃집 아재는 복지와 임금체계가 좋았던 봉명탄광의 감독이었는데, 남들이 자전거타고 다니던 1970년 중반에 벌써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겨 훤칠한 아지매와 결혼해 아들 하나, 딸 하나를 키우며, 과수원도 조성해 집이 늘 훈훈했다. 그런데 어느 날... 탄광에서 재해로 운명을 달리하니... 온 마을 사람들이 울었고, 아지매는 몇 번이나 혼절했다. 지금 짚어보니 정말 30세, 꽃다운 나이의 요절로 어느 누가 혼절하지 않을 수 있으리...
탄광이 있던 문경, 마성, 가은, 호계 산비탈에는 1970년대에도 전기불로 불야성을 이루었고, 멀리 호롱불 속에서 이 불빛들의 휘황함을 경외(敬畏)했다. 기적을 울리며 무연탄 가득 실은 화물열차가 끝도 없이 ‘고빼이’를 달고 달리던 소리를, 밭 매던 엄마 옆에서 듣던 어린 시절의 휴일 오후... 아~ 엄마의 땀방울 위에 튼실해졌던 내 몸은 어느덧 50을 넘고, 엄마는 90을 넘었다.
내가 50을 넘기는 동안 바람은 혼돈스럽게 문경을 쓸고 갔다. 주변을 어지럽게 내동댕이치는 시대의 변곡점에서 쓰나미 같은 파괴의 공포가 너무 억울했다. 그 속에서 망연히 서 있자니 이 땅을 땀 흘려 가꾼 이들에게 미안했고, 광부들이 바튼 기침을 하며 떠나는 모습이 너무도 처량했다. 거기에 형제자매들이 꿈을 싸서 문경새재를 넘어 갈 때는 아예 허탈했다. 그들은 여태 돌아오지 않았고, 한 생이 그렇게 사그라지고 있다.
화물기차의 경적이 끊긴 시간과 공간 위에 나이 들어 저 세상으로 간 이웃집 할배, 할매의 집들은 어둠을 몰고 텅 빈 채 허물어져 갔고, 그 자리가 아물어 이젠 숙성이 됐다. 그리고 그날의 상실은 ‘문경새재아리랑’으로 곰삭아 돌아왔다.
사람들이 돌아가는 삶의 구비는 문경새재 구비가 됐고, 사람들 번뇌는 아리랑이 됐으며, 그것이 합쳐‘문경새재아리랑’이 됐다. 물박달나무는 홍두깨방망이로 다 나가고, 시무푸리나무는 도루깨 노리로 다 나가고, 찹싸리나무는 곶감꼬지로 다 나가고, 뿌억싸리는 북어꼬지로 다 나갔다. 이렇듯 촌사람들은 나가서 새로운 도시사람이 됐고, 등 굽고 키 작은 나무와 사람들은 이곳에 남아 그리움을 먹고 살게 됐다.
문경새재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험한 고개만이 아니라, 한국인 모두의 가슴 속에 존재하는 삶의 고개가 됐다. 이곳 문경사람들은 한국인들의 공통분모 같은 새로운 ‘문경새재 아리랑’을 만들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영남에서 가장 서울과 가까운 곳에 사는 영남관문인 문경사람들의 마음은 언제나 열려있고, 떠나간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정(情) 깊은 사람이 되었다. 칠백리 낙동강이 발원하는 이 땅, 이를 닮은 사람들은 우주를 품고도 남을 넉넉한 마음으로 언제나 새로운 꿈을 일구며 살아왔다.
- 글쓴이 : 컬처라인
- 경상북도 북부권 11개 시군의 문화예술 관련 정보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