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편해문_아시아의 아이들 놀이를 찾아서]뱀주사위 놀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
- 편해문(hm1969@hanmail.net)
뱀주사위 놀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
한국에 살면서 나이가 마흔이 넘었다면 뱀주사위 놀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이 질문은 다른 나라 사람한테도 동시에 할 수 있는 질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둘 모두에게서 같은 대답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다른 나라 할 것 없이 모두 안다는 것이다. 어려서 이 놀이를 한 번쯤 해보지 않은 사람도 없을 것 같은데, 이런 저런 아시와 중동을 다니며 아이들이 뱀주사위 놀이를 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는데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이 놀이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였다.
▲ 뱀주사위 놀이판
우리로 치면 문방구 같은 곳에서 뱀주사위 놀이판을 팔고 있었는데, 어렸을 때 우리가 가지고 놀던 뱀주사위 놀이판과 똑같아 더욱 궁금했다. 인쇄 상태 또한 어렸을 때 우리가 가지고 놀았던 놀이판과 크게 다르지 않아 더욱 그랬다. 이렇듯 눈에 띄다 보니 이참에 뱀주사위 놀이가 어디서 어떻게 생긴 것인지 한번 따져보고 싶었다. 이런 궁금함이 나를 다른 나라 아이들 놀이 속으로 데려가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되는 것 같다.
네팔의 야생 동물 공원이 있는 치투완에서도 뱀주사위 놀이판을 보았다. 반가운 마음에 어떻게 하는지 물었더니 우리가 놀았던 방법 그대로였다. 혹 기억이 나지 않는 분들을 위하여 잠시 설명하면, 주사위 숫자대로 한 칸씩 앞으로 가다가 운이 좋게 사다리를 만나면 몇 줄을 뛰어넘어 위로 오를 수 있지만, 혹 가다가 뱀한테 물리면 저 아래로 곤두박질을 치게 된다. 조금 다른 것은 처음에 반드시 1이 나와야 출발한다는 점이었다.
▲ 네팔에서 발견한 뱀주사위 놀이판
이 뱀주사위 놀이를 요즘 컴퓨터 속에 들어 있는 많은 게임과 견주면 단순하기 짝이 없는 따분한 놀이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요즘 아이들과 뱀주사위 놀이를 하면 어떨까? 싫어할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좋아하는 아이들을 여럿 보았는데, 상대편을 따돌리고 저만치 앞서 가다가도 결승점 코앞에서 뱀한테 물려 아래로 순식간에 떨어지는 재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리라. 아날로그 보드게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놀이에 요즘 아이들도 열광했다. 세대를 달리해도 이어지는 놀이의 힘이란 것이 이런 게 아닐까.
요즘 아이들 가까이에는 재미있는 놀이가 넘쳐난다. 그렇다고 아이들 놀이문화가 풍요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 어렸을 때 놀이란 것이 고작 이런 뱀주사위 정도 수준이었지만 그렇게 척박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뱀주사위판 둘레에 모여 굴러떨어지는 주사위 숫자를 뚫어지라고 눈을 맞추며 시간을 보냈다. 그것은 아주 훌륭한 몰입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주사위 하나와 종이 놀이판 한 장에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일까. 혹 뱀주사위 놀이에 우리를 남다른 재미의 세계로 이끌어주던 무언가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뱀주사위 놀이를 하던 내 어린 시절로 좀 더 깊이 들어가 봐야겠다. 돌이켜보면 내가 이 놀이를 하면서 들었던 감정의 변화는 그야말로 변화무쌍 그 자체였던 것 같다. 앞으로 달음박질, 주사위 숫자에 따른 환호와 한숨, 동무의 방해, 그리고 방해를 벗어나고 추격을 저만치 따돌렸을 때의 편안함과 해방의 즐거움, 그러다가 아차 하는 순간 뱀에 물려 나락으로 떨어질 때의 그 아득함이라니! 사실 뱀주사위 놀이는 우리가 인생에서 맞볼 수 있는 거의 모든 감정과 일찍이 만나게 해주었던 것 같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뱀주사위 놀이판에서 보이는 것처럼 뱀이 우글거리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많은 뱀을 피해 결승점 가까이 갔어도 99번째 마지막 한 칸에 또 가장 큰 뱀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인생일지도 모른다. 설령 그 뱀에 물려 바닥으로 떨어져도 다시 한 칸씩 나아가야 함을 잊지 않고 일깨워주기도 한다.
뱀주사위 놀이는 애초에 유혹과 함정과 타락이 춤을 추는 속세를 벗어나 하늘이나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구도의 놀이로 시작되었다. 지금 세상을 돌아다니는 뱀주사위판은 유럽에서 이런 구도의 성격을 지우고 단순화시켜 게임으로 만든 놀이판이다. 본디 뱀주사위 놀이판 꼭대기에는 마지막 숫자인 100을 지나 신의 세계나 천당과 같은 천상의 세계가 그려져 있다. 그러던 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공부 안 하면 뱀, 심부름하면 사다리라는 모양의 뱀주사위판이 만들어지기까지 한 것이다. 놀이에까지 공부 잘하는 아이와 착한 아이의 가치관이 들어온 셈이다.
Jain 84-square gyan chaupar board on cotton cloth.
Gujarat, dated 1834. 63 x 63 cm.
Calico Museum of Textiles, Ahmedabad.
(63 x 63cm. 1834. 인도 구자랏 아마다바드에 위치한 Calico Museum 소장.)
뱀은 그렇다 치고 사다리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이 사다리가 깨달음의 길을 가는 구도자에게 신이 주는 사랑, 은혜, 구원의 손길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산다는 것에 지칠 대로 지쳤을 때, 신은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을 뱀주사위 놀이판의 사다리가 상징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니까 사다리는 신이 고통의 세계에 사는 속세의 사람에게 내린 한줄기 샘물인 셈이다. 구원으로서의 사다리를 만났을 때 우리는 다시 힘을 내 한층 성숙한 사람으로 구도의 여행을 떠날 수 있지 않겠는가. 한낱 게임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뱀주사위 놀이가 내게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 글쓴이 : 편해문
- 어린이책 작가, 창작과비평사 ‘좋은 어린이책’ 대상, 어린이도서연구회 자문위원,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상임위원,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전문위원,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그랬어 편집위원. 쓴 책으로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어린이 민속과 놀이문화』,『옛 아이들의 노래와 놀이 읽기』, 『아기를 주시는 삼신할머니』,『산나물아 어딨노』가 있고, 전래동요를 음반과 함께 펴낸 『께롱께롱 놀이노래』, 『동무 동무 씨동무』, 『가자 가자 감나무 』가 있다. 아시아 아이들을 담은 사진집『소꿉』을 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