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김상진_이야기가 있는 예천문화 탐방]희령군(熙寧君)과 어사금(御賜琴)의 신비(神秘)
- 김상진
희령군(熙寧君)과 어사금(御賜琴)의 신비(神秘)
▲ 희령군 어사금
2008년 한해가 다 저물어 가는 어느 날, 필자와 예천문화재대관 편찬팀들은 설레는 가슴을 다잡으며 용문면 구계리 이정사(夷靖祠)가 자리한 마을로 발길을 재촉했다.
그 당시 예천군과 예천문화원에서는 2년째 예천군의 모든 지정문화재들을 집대성한 예천문화재대관 편찬사업을 추진하는 중이었다. 이즈음 모든 자료들이 정리되어가고 막바지에 이르러 말로만 듣던 어사금(御賜琴)을 직접 볼 수 있는 중요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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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사 |
▲ 이정사(평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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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귀한 문화재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실재로 어사금을 문화재대관에 수록하기 위한 과정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우선 문화재청에 의뢰한 결과 어사금은 용문면 이정사 사당에 보관중이란 통보를 받고 이정사를 관리하는 후손을 수소문하여 만나 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정사에 보관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어사금이 그곳에 없다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황당하였지만 자초지정을 들어보니 납득이 되었다.
그렇다고 필자의 입장에선 순전히 그 말을 다 믿을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시골에 머물면서 조상들이 물려준 문화재를 관리하는 촌로들과 종손들의 사정을 들어보면 한결같이 도난의 위험 속에서 살기 때문에 편히 여행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문화재의 보관 장소는 특히나 함부로 발설할 수 없다는 얘기를 익히 들어 왔던 바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정사를 관리하고 있는 후손 이희원씨로부터 어사금을 빨리 접하고 제대로 촬영하여 대관에 수록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고 재촉하였다. 그리고 날짜를 다시 정하고 종손 이희석(李熙碩)씨의 허락이 떨어지면 직접 서울에서 어사금을 갖고 예천으로 올 것이라는 확답을 받았다. 결국 우리는 며칠을 더 기다리기로 하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묵은해가 넘어가고 2009년 새 달을 맞이하고 얼마 되지 않아 기별이 왔다. 종손께서 직접 어사금을 공개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단숨에 구계리로 달려갔다. 서너 명만 앉아도 비좁은 골방이었지만 어사금을 품고 있는 종손 이희석씨의 첫인상은 명문가 후예의 기풍과 조상에 대한 자긍심과 존경심을 함께 겸비한 단아한 선비 같은 느낌이었다.
희령군 어사금(熙寧君 御賜琴)은 지금까지 내가 희미한 사진들과 소문으로 들었던 이미지와는 너무도 다른 자태로 다가 왔다. 또한 형태의 아름다움은 물론이거니와 보관함까지 완벽하게 보존되어 6백여 년의 세월을 견딘 보물이라고 보기에는 경이롭고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희령군 어사금에 대한 이야기를 풀기 전에 먼저 어사금이 보관되어 있다는 이정사의 유래를 간단하게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이정사(夷靖祠)는 희령군(熙寧君)을 제향하기 위해 1792년(정조 16년)에 건립한 불천위(不遷位) 사당이다.
본래는 서울 동대문 밖 왕강동(旺崗洞) (현 창신동)에 양녕대군의 갑제(甲第)를 물려받아 여생을 거처하였던 그 곳 이라 볼 수 있는데 병자호란 때 병화로 소실되고 종손 지예(宗孫支裔)가 유리함몰(流離陷沒)되어 묘와 함께 향화(香火)가 영절되어 버렸다.
그로부터 약 150여 년 후 정조 때에 이르러 경향의 후손들이 회합하여 종손을 세우기 위해 연명 상소하여 1792년(정조 16년)에 희령군 후손 병성(秉誠)을 봉사손으로 하고, 어명에 따라 봉상시(奉常寺)에서 주재(主材)까지 하사하여 경북 예천군 용문면 구계리에 사당을 세우도록 하고 시호를 따서 이정사라 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도유형문화재 제294호로 지정되었고 앞서 어사금을 공개해 준 봉사손 이희석(李熙碩)씨(호적명 상두(祥斗))가 관리하고 있다.
필자는 희령군의 13대손 병성(秉誠)이 무슨 인연으로 용문면 구계리에 터를 잡고 거주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금당실을 비롯한 이 일대가 정감록(鄭鑑錄)에서 말한 십승지(十勝地)여서 숱한 역사의 질곡을 이겨내고 지금까지 어사금을 잘 보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실제로 이 마을에 처음 들어섰을 때의 느낌은 우선 아늑하고 편안한 동네라는 것과 이정사 언덕 위에서 바라본 풍광은 좌청룡, 우백호가 살아있는 길지중의 양택이 아닌가 하며 서로 입을 맞추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희령군의 이 거문고는 오동나무 · 밤나무 · 생사 · 무명 · 우피를 재료로 하였으며 전면은 동판(桐板)에 옻칠을 하였고, 용구(龍口)와 봉미(鳳尾)로 양단(兩端)을 구분하였으며, 우피(牛皮)로 장식되어 있다. 6현(絃)은 생사(生絲)를 밀랍 처리하여 내구성 있게 하였고 좌단은 뼈로 고정하였으며, 6개의 안족(雁足)과 12진리(軫裡) 또한 가벼운 오동나무로 배면(背面)에는 세 개의 홈을 파서 음율을 조화있게 구성하였다, 중앙에 `내사 희령군(內賜 熙寧君)'이라고 새겨져 있어 태종대왕이 희령군에게 하사한 어사금임을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다.
거문고의 크기는 길이가 120.3㎝이고 폭은 15.9㎝이며 두께는 12㎝인데 그리 크지는 않지만 단아하고 당당한 기품이 서려있는 공예품이다. 문화재 전문가들의 견해를 빌리자면 이 어사금은 국내에 현존하는 거문고 중 가장 오래 된 것이며 가장 작은 거문고에 속한다고 한다.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는 역사적 가치로 보나 작품의 예술성으로 보나 국보급의 소중한 문화재로서 우리 예천의 큰 자랑거리가 아닌가 싶다.
당시 희령군이 광주군 율현리(현 서울시 강남구 세곡동)에 정착하면서 가보로 사당에 소장하다가 병자호란 때 사당이 소실되자 긴급히 옮겨서 4대손인 함(涵)이 상주 외서봉암(外西鳳岩)으로 남천(南遷)하면서 보존하다가 10대손 덕화(德華)가 11대손 기완(基完)과 더불어 정재대(丁載大)에게 중수하도록 하였다.
그 후 덕화의 증손 병성(秉誠)이 어명으로 희령군의 13대 봉사손으로 정해져서 이정사를 세우고 그 아래 별감에 어사금을 소장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긴 하지만 여러 차례의 도난사고와 위험요인으로 인하여 현재는 도유형문화재 제241호로 지정되어 모처에 잘 보관되어 있다.
어사금은 글자 그대로 임금이 하사한 거문고이다.
조선(朝鮮) 태종(太宗) 대왕이 그의 여섯 번째 왕자인 희령군(熙寧君)이 음율(音律)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직접 아끼던 거문고를 하사하였다. 그 후 희령군의 자손들은 이 거문고를 어사금(御賜琴) 이라 하여 대대로 가보(家寶)로 생각하여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임진왜란(壬辰倭亂)과 병자호란(丙子胡亂)을 겪는 와중에 종가 계통의 후손이 끊어져 버리고 경기도(京畿道) 광주(廣州)에 있던 희령군 사당(祠堂)마저도 불타버리고 말았다. 희령군이 분가할 때 궁중(宮中)에서 가지고 나온 물건이라곤 모조리 불타버리고 말았는데, 이상하게도 어사금(御賜琴) 하나만 용케도 남게 되었다.
어사금과 관련하여 병성(秉誠, 1771~1839)의 대에 전해 내려오는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해 가을, 갑 속에 있는 거문고에서 소리가 울렸는데, 그 소리는 깊이 있으면서도 영롱하고 그윽한 소리여서 온 가족이 모두 이상스럽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당시의 임금인 정조(正祖)가 병성(秉誠)에게 희령군의 사당을 모시게 하라는 분부의 교지(敎旨)가 내려졌는데, 당시의 사회 제도로 보아 희령군의 사당을 모신다는 것은 여간 명예(名譽)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을 미리 알려 준 어사금은 정말로 신비로웠다고 하겠다. 이후 희령군의 사당을 수축하고 후손들에게 대대로 이 사당을 모셔 받들게 하였는데, 그 후에도 어사금은 후손들에게 스스로 신비로운 소리를 내어 자명금(自鳴琴)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길조(吉兆)를 알려 주었다고 하니 과히 종중의 가보중의 가보가 아닌가 싶다.
필자가 희령군 어사금을 직접 만지며 살펴보면서 저토록 아름다운 악기를 평생 가까이 하면서 거문고를 탄 희령군에 대한 인간적 면모와 가계(家系)에 대해서도 무척 궁금하여 짧게나마 되짚어 보고자 한다.
희령군은 선천적으로 성품이 착하고 도량이 넓으며, 시․서․예․악(詩書禮樂)에 대한 공부에 매진했으며 특히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효심 또한 지극하여 부왕의 총애가 두터웠고 형제간의 우애 또한 돈독하였다고 한다. 특히 양녕대군 · 효령대군에게는 어진 아우로서, 충녕대군에게 양위(讓位)시에는 희령군의 조력이 큰 힘이 되었다 한다.
충녕대군이 왕(세종대왕)이 되어 희령군과 정인지, 권제, 안지 등에게 명하여 「용비어천가」를 짓게 하여 조정의 악장으로 삼았으며, 1433년(세종 15년)에 희령군으로 봉해졌고, 1453년(단종 1년) 당시 권문세가인 “윤처공(尹處恭)의 집을 희령군에게 내려주라.”고 호조에 전지(傳旨)하였고 한다.
희령군은 태종대왕의 6남으로 숙의(淑儀) 최씨(崔氏)의 소생이다. 휘는 타(袉), 시호는 이정(夷靖)이다. 고종 때에 현록대부(顯祿大夫) 영종정경(領宗正卿)으로 추증되었는데. 이 품계는 조선시대 정일품(正一品) 종친(宗親)에게 주던 최고 품계(品階)이다. 정일품의 상계(上階)로서 흥록대부(興祿大夫)보다 상위 자리이다. 대군과 왕자군에게 봉작과 함께 주었으며 종친부의 일을 총리하는 최고의 명예직이라 할 수 있다.
배위는 둘로 순창군부인(淳昌郡夫人) 신씨(申氏)는 찬성(贊成) 숙생(淑生)의 딸로서 자녀가 없다. 평산군부인(平山郡夫人) 신씨(申氏)는 군수 사렴(士廉)의 딸로 3남을 두었다. 장남은 화성군(花城君) 감(堪)이고, 차남은 영원정(寧原正) 배(培)이며, 3남은 곡강도정(曲江都正) 게(垍)이다.
화성군은 숭헌대부 창원군(昌原君)을 비롯하여 4남을 두었다. 창원군의 장남 덕의정은 명선대부이다. 차남 숭헌대부 영원정은 명선대부 인천부수를 두었으며 인천부수는 창선대부 임해령(臨海令)과 명선대부 덕은감을 두었다. 덕은감은 호가 이제재
(夷齊齋)로서 단종대왕이 손위 손위하다: [동사] 임금의 자리를 내어놓다.
할 때 어가 전후에서 남몰래 영월까지 따라갔고 승하 시 슬픔에 겨워하면서 단종의 옥체를 엄흥도(嚴興道)와 함께 겨울에 땅에 묻고 밀양 고답리에 은거하였다. 1460년(세조 6) 9월 27일 굶은 지 5일 만에 피를 토하고 별세하였다.
그 후 1866년(고종 3년)에 충절이 높다 하여 증 이조참의 덕은도정(德恩都正)을 제수받았다. 그 실기가 있는데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이 서문을 썼다고 한다.
희령군파 세보는 1841년 <신축보(辛丑譜)>, 1900년에 <경자보(庚子譜)>, 1957년에 <정유보(丁酉譜)>, 1980년에 <경신보(庚申譜) >등 네 차례 편찬 간행되었다고 한다.1957년에 도유사 철옥(喆鈺)과 부유사 순화(淳和) 등 종현들이 <정유보>를 편찬하였고, 병자호란 때 잃어버린 희령군 신도비는 1958년 후손들의 종의(宗議)에 따라 도유사 주진(周鎭) · 부유사 순화(淳和) · 성진(星鎭) 등을 비롯해 종현들이 공의 묘(墓)앞에 재건(再建)하였다.
희령군의 인품을 닮은 자손들은 크게 번창하여 대소 관원을 비롯하여 문무 대소과와 고품가작(高品嘉爵)에 이르기까지 충신열사 · 효자 · 효부 · 열녀 · 문장훈업(文章勳業) 등 인재가 배출되었음은 물론이다.
평생 동안 독서와 음악을 즐기는 가운데 겸허한 마음으로 살다 세상을 마친 희령군의 삶이, 각박한 시대에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그 분의 따뜻한 인품이 어사금 거문고를 통하여 오랫동안 후세에 전해 질 것을 굳게 믿는다.
- 글쓴이 : 김상진
- 현. 예천문화원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