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유태근_그릇이야기]분청사기(粉靑沙器)
- 청마 유태근
분청사기(粉靑沙器)
- 제주분청사기로 다시 태어나다 -
▲ 제주분청사기철화정화 화문접시. 청마 유태근 作
우리민족 고유의 독자기술로 탄생
자유로움을 가진 한민족의 정서를 닮은 도자기
내재된 억눌림이 그릇을 통하여 표현된 자기가 바로 분청사기이다. 고려 귀족사회에서 힘들게 생활해왔던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그릇이며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내적으로 참고 참고 또 참으며 태어난 절대절명의 그릇으로 보인다. 분청사기는 이름도 없이 고려후기 부터 조선에 걸쳐 내려오다 1930년대 고유섭 선생이 처음으로 명명하였다.
분청사기에는 상감·인화·철화·조화·귀얄·덤벙·박지의 모두 7가지 기법이 있다. 이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에 걸쳐서 축척된 기술의 결정이 16세기 분청사기에서 정리가 된 듯 보인다. 그 중에서 상감기법·인화기법은 고려청자에서 많이 나타나며 나머지 철화·조화·귀얄·덤벙·박지 기법은 분청사기에서 나타난다. 지금 전 세계의 도자기 기법에서 분청사기의 7가지 기법을 벗어날 수 있는 작품은 없다. 그 만큼 중요하다. 그리고 이 7가지 기법이 한국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외국 도예가는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법 하나하나에 대한 깊은 연구는 아직 부족하다.
그 시대의 사회현상과 도공들의 고뇌를 한번 되새겨보고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단지 복사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기법을 통하여 지금 시대의 분청사기는 무엇인가,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고려후기 부패했던 귀족사회에 반기를 들 듯, 억눌려 있던 서민들의 거친 표현이 분청사기의 귀얄 기법이다. 거친 붓자국은 마치 태풍처럼 용솟음치는 강한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이 작은 붓자국 하나에도 動(동)! 움직임을 느낀다. 그 움직임은 바람으로 나타난다. 따뜻한 바람, 달콤한 바람, 포근한 바람, 거친 바람, 칼바람, 태풍같은 바람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형태가 없다. 그러나 귀얄기법으로 된 그릇을 보며 바람이 비로써 그 형태가 갖추어진다. 그릇 역시 머물러 있다가 바람으로 인하여 본인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토록 그릇의 문양이 중요하다.
분청사기 기법 중에 제일 어려운 것이 상감기법과 덤벙기법이다. 먼저 상감기법은 고려시대 숙련된 최고 수준의 기술과 장인이 청자태토위에 학과 구름과 기타 여러 가지 모양을 상감했다. 분청사기에서 나타나는 상감기법은 작은 꽃문양을 크기별로 도랑을 만들어 작은 완, 접시 등에 빼곡히 찍어서 상감했다. 왜 이작은 그릇의 앞과 뒷면에 새겼을까? 지금의 기술로 해도 반나절은 해야 하는 작업을... 얼마나 꽃이 그리웠으면.. 얼마나 꽃같이 화려하게 살고 싶었으면.. 한철이 아닌 사시사철 꽃과 함께 살고 싶은 염원을 담지 않았을까?
다음은 덤벙기법이다. 이 기법은 경제성이 별로 없다. 그 만큼 파손율이 높으므로 실패가 많다는 것이다. 고려청자는 태토가 어두워서 위에 아무리 밝은 유약을 발라도 어둡게 나타난다. 분청덤벙은 완전한 배색을 만들고 싶었던 도공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흰색의 흙물에다 담가 원래의 어두운 태토에서 밝은 흙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흙은 수분을 먹으며 밑으로 내려앉는다. 현재에도 전체적으로 덤벙을 하는 작가는 그리 많지가 않다. 고려 시대의 생활을 청산하고 새롭게 밝음의 세계로 가고 싶었던 서민들의 열망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이렇게 분청사기에는 우리의 슬픈 역사 속에서 시대적 상황을 극복하려는 서민들의 마음이 담겨져 있다. 그릇을 대상으로 하여 당시 배경들을 표출했던 산물인 것이다. 우리는 이 작품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그냥 좋다가 아니라 그 작품들을 대할 때 마음에 조용히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분청사기에는 21C를 멀리 내다보는 선조들의 혜안을 엿볼 수 있다. 21C는 융합과 창조의 시대이다. 분청사기에는 이러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분청사기는 7가지 기법 중 한 가지 기법만 사용되어진 것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2~3개의 기법이 동시에 사용되어 만들어졌다. 이는 지금보아도 아주 천재적인 기법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분청사기 박지·조화·상감문·항아리 등이 그렇다) 한 작품에 이렇게 많은 기법을 사용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또, 누가 이러한 디자인을 했을까? 많은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라 하겠다.
제주분청사기로 다시 태어나다
나는 2007년 여름에 문득 독도도자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잊혀지려하면 일본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을 하고, 이러다간 백년, 이백년 후에는 우리의 땅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독도에 대한 자료들이 이렇게 많이 쏟아지고 지금도 찾고 있는 시기에 무슨 이유로 뭘 믿기에 일본은 이렇게 점점 수위를 높여 가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이유로 또 도예가라는 신분으로 이 시대에 뭔가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2007년 울릉도를 경유하여 독도에 들어갔다. 선상방송에서 독도는 천연기념물이기 때문에 풀 하나, 돌멩이 하나 가지고 오면 현장에서 구속이라는 방송이 흘러 나왔다. 망망대해를 거쳐 독도에 도착했다. 주변은 경찰들이 지키고 있고, 시료를 채취할 수 있는 조건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허탈한 마음으로 울릉도로 돌아왔다. 독도를 대신해 울릉도에서 시료를 가지고 돌아온 후 나의 답답한 심정을 주변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낫지 못하는 병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나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듯이 독도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연구가 끝나면 그 시료를 버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료를 얻어 독도 도자기를 연구하게 되었다.
완벽한 독도그릇을 만들 수는 없지만 10~15%의 독도산 돌·해양식물 등을 넣어 상징적인 도자기를 만드는 방법을 택하였고 연구한 결과 2009년에 작품을 완성하였다. 5점을 만든 후엔 시료가 바닥이 났다. 그래서 대안으로 울릉도의 시료를 가지고 연구하였고 독도와 거의 똑같은 형태로의 결과를 얻게 되었다. 이에 착안하여 같은 화산폭발로 형성된 제주도를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2011년에 계획을 세우고 여러 조사를 하게 되었다. 2012년 여름 완도에서 차를 배에 싣고 제주도에 들어갔다. 곳곳을 다니며 제주도의 시료를 채취했다. 돌, 흙, 옹기 등을 채취해 돌아왔다. 10개월의 연구 끝에 제주 분청사기 도자기를 만들게 되었다.
제주는 옹기(허벅) 외에는 자기로 된 도자기가 없다. 왜냐하면 제주도의 인구와 환경으로 볼 때 옹기(허벅)로써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충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과거 그 시대에는 연구할 필요성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근래에는 제주도에도 많은 도예가들이 활동하고 있고 육지에서 운반되어진 재료를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생각된다.
내가 제주 분청사기 작품을 만드는 것은 다음 몇 가지 이유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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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내가 평소에 만들고 싶었던 색상과 질감의 분청사기는 제주도의 흙과 재료여야만이 가장 좋은 느낌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15C의 분청의 느낌은 그 시대에서 원하는 느낌이었고 필자가 원하는 분청사기의 느낌은 지금 시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환경의 느낌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어야 한다고 본다. 즉, 지금시대를 대변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개념을 담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창조․빠름의 사회 환경 속에서 느림의 미학을 담아 낼 수 있어야 한다.
둘째, 표현되어지는 여러 가지 문양 또한 시대의 아픔과 염원 등 여러 의미를 담아 낼 수 있어야한다.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 휴전선 비무장 지대의 철새를 표현했으며 그 철새들이 전 세계로 날아가 분단된 한국의 현실을 널리 알려 통일의 길을 여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의 표현이다. 또 원은 긍정의 의미 즉, 통일을 의미하며 물고기의 표현은 다산과 총명함 그리고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중재의 역할을 해달라는 의미이다. 군사분계선에서 가장멀리 떨어져있는 제주도, 이번 제주 분청사기 그릇에 군사분계선과 통일의 의미를 담은 것은 민족의 뜻을 한곳에 모으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셋째, 제주도는 자연환경과 풍토로 볼 때 차를 재배하는 기후로써 아주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현재도 많은 양을 재배하고 있으며 그것에 걸맞은 대표적인 그릇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
전통은 언제 어디서든 머무르지 않는다. 전통은 항상 계승·발전 되어왔다. 지금도 변화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꾸준히 변화할 것이다. 현재는 없다. 과거와 미래만 존재 할 뿐이다.
- 글쓴이 : 유태근
- 현) 문경대학교 도자기공예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