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 [임은혜_연극으로 만나는 세상]봄의 향연 ‘수달래 꽃 줄 엮기’
- 임은혜
봄의 향연 ‘수달래 꽃 줄 엮기’
청송에는 주왕산이 유명하다. 그리 험하지도 높지도 않은 주왕산에는 독특한 바위들이 많아서 이국적이다. 봄에는 투명한 햇살이 번져나는 연두 빛 잎사귀 사이로 진분홍 수달래꽃이 피어나고 가을에는 노랗고 붉은 단풍이 산을 물들이면 무릉도원을 그린 한 폭의 동양화 같다.
주왕산에 내려오는 전설도 독특하다. 먼 옛날, 주도라는 사람이 이 산에 이상국을 건설하려다가 살해되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그가 중국에서 왔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인도에서 왔다고 하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다. 인간의 역사 속엔 권력을 움켜쥔 자들이 있었고, 그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건설한다는 것은 반역 행위였기에 주도 역시, 권력의 화살을 피해갈 수 없었다. 전설에 의하면 주도는 신라의 왕이 보낸 마장군의 화살에 맞아서 죽었다고 한다. 그의 피가 강물로 흘러들어가 사흘 내내 끊이지 않고 강물을 붉게 적셨다고 한다. 그 핏물로 젖은 땅에서 피어난 꽃이 수달래꽃이다. 수달래꽃은 진달래보다 붉고, 철쭉꽃보다 약간 연한 꽃으로 주왕산에서만 볼 수 있는 자생화라고 한다.
이러한 전설을 배경으로 시작된 청송의 봄 축제가 수달래 축제이다. 사람들은 수달래 축제를 준비하면서 주왕산에 얽힌 주왕의 전설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조금씩 변형되어 구전되어 온 전설을 각자 다르게 이야기 하면서 네가 맞네, 내가 맞네, 그건 사실이 아니네, 사실이네 하면서 전설을 사실로 여기느라 열띤 언쟁을 하곤 한다. 특히 수달래 축제를 앞장서서 준비하고 계신 마을 이장님은 얼마 전에 최고령 어르신으로부터 듣고 왔다면서 자신이 들은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강조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주왕 전설을 옛날에 실제 일어난 일, 역사로 여기고 있다. 그로 인해 주왕 전설은 다양한 해석으로 변주되지 못하고 고정된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되어버린다.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인문학적으로 해석해 본다면 그 해석으로부터 새로운 상상력이 발동되고 축제의 다양한 놀이들이 떠오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여 주왕의 전설을 새롭게 해석하면서 만들게 된 행사가 ‘수달래 꽃줄 엮기 경연대회’이다. 주왕과 수달래꽃은 각각 무엇을 상징할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전설이나 신화는 각 시대의 집단 무의식과 소망을 반영한다. 주왕의 전설이 만들어졌던 시대의 청송 사람들은 어떤 소망이 있었을까?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청송은 지리적으로 고립되어있고, 겨울은 너무나도 춥다. 이 고립된 지역에서 겨울을 이겨낸다는 것은 생존을 위한 투쟁과도 같은 일이다. 고립감과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야 했던 산촌 사람들이 만들어낸 인물 주왕은 그들이 이겨내야 할 겨울, 동장군을 상징할 것이다. 떨쳐내고 싶은 고립감, 극심한 추위와 두려움을 의미할 것이다. 그 주왕을 죽이기 위해 말을 타고 뒤따라오는 마장군은 봄의 기운으로 볼 수 있겠고, 주왕의 피로 물든 땅에서 피어나는 수달래꽃은 겨울을 죽이고 승리한 봄의 환희일 것이다. 그러니깐 주왕이야기는 추위와 고립감 속에서 봄을 기다리는 지역 공동체의 구체적인 삶으로부터 만들어진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해석 속에서 주왕산 수달래 축제를 만들어가기로 했다.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그들이 중심에 선 축제, 겨울을 이겨낸 봄의 환희를 누리고 한해의 풍작을 기원하는 봄 축제를 위해 ‘수달래 꽃줄 엮기 경연대회’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꽃줄 엮기’는 서양의 ‘메이폴’과 라틴아메리카의 ‘세부깡’ 놀이, 우리네 민속의 ‘길쌈놀이’에서 찾아볼 수 있는 놀이인데 수달래 축제에 어울리게 만들어낸 말이다. 중앙에 꽃이나 솟대로 장식한 기둥을 세우고 여러 색깔의 긴 끈을 늘어뜨려 그 끈을 한 가닥씩 잡고 춤을 추면서 아름다운 무늬를 만드는데 12명의 참가자들이 서로 호흡을 맞추어 움직여야 조화롭고 아름다운 무늬가 완성된다.
지난해, 수달래 꽃줄 엮기 경연대회에 참가한 팀은 모두 14팀이었다. 마을을 대표해서 나온 팀도 있고, 학교를 대표한 팀, 공부방 아이들, 경로당 어르신들, 지역 풍물패, 엄마와 아이들로 구성된 팀, 다문화 가족 등 청송에 살고 있는 다양한 공동체가 꽃 줄 엮기 경연대회에 참가했다.
축제가 시작되기 한 달 전에 참가신청을 받았다. 참가팀들은 워크숍을 통해 꽃줄 만드는 방법과 꽃줄 엮는 방법을 배웠다. 꽃줄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도 점수에 들어가기 때문에 참가팀들은 저마다 정성껏 솟대를 깎아서 기둥 꼭대기에 매달았고 오색 천을 준비해서 줄을 만들었다. 경로당 어르신들은 우리가 직접 경로당에 가서 꽃줄을 만들어 드리고 꽃줄 엮는 방법을 알려드렸다. 그런데 어르신들은 꽃줄 엮는 방법을 이해하셨다면서 몸이 안따라주셔서 그런지 자꾸만 틀리셨다. 한쪽 방향으로 계속 가야하는데 가다가 방향을 바꿔 가시는 분, 안가고 서 계시는 분, 천을 들었다 내렸다 해야 하는데 그냥 들고만 가시는 분. 연습이 잘 안되자 동료에게 화를 내시는 분, 그러다 말다툼이 생기고... 강사로 간 나는 그 분들을 달래느라 혼이 났다. 마을 이장님이 “조용히 하시고, 강사님 말씀 좀 들으세요!”라고 몇 번을 외치시면서 도와주셨지만 할아버지들은 듣지도 않고 한참 동안 말다툼하신다. 이장님이 나에게 미안해서 그런지 당신이 알아서 가르쳐드리겠노라며, 오늘은 이정도만 가르쳐주시면 된다고 하신다. 할 수 없이 어르신들께 “사이좋게 마음을 모아서 줄을 엮으셔야 제대로 됩니다. 그럼, 축제장에서 뵐게요. 파이팅!”하고 인사를 했더니 어르신들은 언제 다퉜냐는 듯이 “아이고, 선상님, 고맙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가이소.”하신다. 골목에서 놀다가 다투고 금새 또 잘 노는 동네 아이들 같다.
드디어 경연대회 날, 어르신들은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천천히, 그럴싸하게 줄을 엮기 시작하셨다. 그런데 순간, 대형이 흐트러지더니 줄이 엉키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은 또다시 서로에게 소리치고 다투기 시작했다. 반주패가 소리를 높여 풍물을 울렸다. 어르신들은 줄을 꼬면서도 계속 말다툼을 하신다. 어르신들의 투박하면서도 솔직한 모습이 관중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수달래 축제가 시작되기 전부터 마을 곳곳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꽃줄 엮기 연습을 하느라 잔치 분위기이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교 운동장에 모여서 연습하는 열정들이 대단했다. 유력한 우승후보로 소문이 났던 파천면의 농우산악회 사람들은 밤마다 마을 공터에 모여서 연습을 했는데 어느 날 일본 관광객들이 지나가다가 그들의 연습하는 걸 보고는 박수를 치면서 재밌게 구경을 했고 과자까지 풀어놓고 갔다고 자랑하셨다. 마을 공동체가 언제든지 보여줄 공연물이 생긴 것이다. 부동면 여성봉사단체에 소속되어있는 분들은 ‘아줌마 레인저’라는 단체 이름을 만들어서 아이들과 짝을 지어 참여했는데 밤마다 나무닭움직임연구소 작업장의 운동장에서 연습했다. 직장인들과 농사짓는 분들이기 때문에 저녁시간에만 연습을 해야 했다. 아줌마들은 아예 코펠과 버너를 가져와서 가족들과 함께 저녁밥을 지어먹어가며 연습하기도 했다. 아이들을 꽃의 요정으로 분장시키고, 엄마와 아이가 짝을 지어 꽃줄 엮기를 하면서 서정적으로 수달래 꽃줄 엮기를 연출해낸 이 팀, ‘아줌마 레인저’가 열혈 아줌마의 힘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우리 단체가 청송에 내려온 지 5년이 되고서야 청송군 문화관광과에서 처음으로 수달래 축제에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지역 축제가 해마다 똑같은 프로그램으로 반복되다보니 지루하기 짝이 없고, 지역 주민들에게도 외면 받고 관광객들의 눈길도 끌지 못해서 매년 축제장은 늘 텅 비어있고 예산만 낭비하는 축제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청송군 문화관광과 축제계장 강병극씨가 수달래 축제를 새롭게 되살리고 싶다며 우리를 찾아왔다. 그 분은 주왕산 수달래 축제를 마을 주민이 중심이 되는 축제로 만들기 위해서 발로 뛰어다녔다. 주민들과 함께, 지역민들의 대동 한마당이 되는 축제로 만들어보고 싶다며 우리에게 조언을 구했고, 우리가 제안한 수달래 꽃줄 엮기 경연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죽어가던 축제가 지역주민들의 열정과 관심 속에서 되살아났다. 청송지역의 주민들이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꽃줄 엮기 경연대회에 참가한 팀들은 물론 그들을 응원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 가족들, 친인척들이 모였다. 저마다 준비한 꽃줄을 정성껏 엮어내고, 그것을 지켜보며 손뼉을 치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이들 모두 새로이 찾아온 봄날에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그 해의 풍작을 비는 마음으로 함께 했다. 50개의 줄을 엮는 대동 꽃줄은 지역주민과 주왕산을 찾은 관광객들이 함께 엮으며 신명나는 봄의 향연을 만끽했다.
기나긴 겨울동안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열고 축제의 공연물을 준비해온 다양한 공동체들, 각기 다른 공동체의 창조물들과 더불어 온몸으로 축제를 누린다. 공동체가 움직이면 축제도 살아난다.
만물이 움트고 생기가 무르익어가는 봄날, 나는 수달래 꽃줄을 엮는 사람들 속에서 공동체의 자유, 기쁨, 우애로 가득 찬 축제를 본다.
- 글쓴이 : 임은혜
- 극작가, '나무닭움직임연구소'는 청송군 청송읍 송생리에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