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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효선_동해연안의 문화여행]봄볕이 익히는 보약, 머구나물 뜯는 풍경
- 남효선
봄볕이 익히는 보약, 머구나물 뜯는 풍경
“돌복상꽃이파리 날리는 산중서 머구나물 뜯다.”
오랫동안 고대하던 단비가 내렸다. 단비를 기다리며 지친 농심을 썩 흡족시키는 양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반가운 손님이었다.
봄비가 그치자 세상은 봄나물 천지다. 마당에만 나서도 봄나물이 퍼트리는 싱그러운 향내가 코끝을 감싼다.
똘복상꽃(야생 복사꽃)이 하늘을 가득 덮은 산중 오솔길에 젊은 부부가 아이를 데불고 봄나물을 뜯고 있다. 아이와 함께 은빛 봄 쑥을 캐는 아낙의 머리 위로 복사꽃이파리가 나비처럼 내려앉는다.
봄날, 제일 먼저 반기는 나물은 ‘머위(머구)’다. 동해연안 갯마을인 울진지방에서는 ‘머위’를 ‘머구나물’ 또는 ‘신선초’라 부른다. 머구나물은 국화과에 속하는 경엽으로 산간지나, 휴경논둑, 사토의 습지 등에서 자생한다. 특유의 쌉싸르한 맛과 향내 때문에 봄나물 중 가장 인기를 끄는 나물이다.
특히 유럽에서는 가장 탁월한 항암 치료약으로 인정받고 있는, 칼슘 성분이 많은 알칼리성 식품이다.
예부터 농촌의 아낙들은 똘복상꽃이 필 무렵이면 삼삼오오 대바구니를 끼고 머구나물 캐기에 나섰다. 딱히 마련할 반찬거리가 태부족이던 보릿고개 시절, 머구나물은 온 가족의 입맛을 돋운 소중한 먹을거리였다. 더구나 긴 겨울을 땅 속에서 잠자다 봄기운과 함께 땅을 뚫고 고개를 드는 머구나물을 우리 어머니들은 ‘초 봄의 보약’이라며 소중하게 여겼다.
▲ 이른 봄에 돋는 머구나물
▲ 머구나물을 뜯고 있는 아이
제 어머니 곁에서 쑥을 캐던 아이는 백구를 데불고 아빠와 함께 머구나물을 뜯는다.
난생 처음 뜯어보는 머구나물이다. 아이의 얼굴이 발갛게 물든다. 흡사 복사꽃물로 세수를 한 것 같다. 아빠의 손길만큼 아이의 손길도 분주하다.
머구나물은 이른 봄, 땅을 뚫고 금세 봄볕에 연록의 이파리를 펼치는 것을 최고로 여겼다. 요즘이야 겨울에도 머구나물을 비닐하우스에서 대량으로 생산하지만, 그래도 자연에서 돋아나는 것이어야 제격이다.
머구나물을 뜯는 아이의 손길만큼 백구도 신이 났다. 온 산중을 들고 뛴다. 아이도 나물을 뜯다 말고 백구와 함께 억새로 뒤 덮인 묵은 논을 달린다.
이른 봄에 돋는 머구나물은 이파리와 줄기 채로 살짝 데쳐 된장에 무치거나 막장에 무쳐 먹는다. 다 자란 머구나물은 줄기를 데쳐 초고추장에 무쳐 먹는다. 복사꽃과 새들만 분주한 산중 오솔길에 아이와 젊은 부부의 나물 뜯는 소리가 어울려 봄을 익힌다.
머구나물과 함께 귀하게 여긴 나물이 ‘정구지(부추)’이다.
▲ 정구지
"정구지 뜯어 팔아 자식들 공부시캤어"
“정구지 팔아서 아들 딸 공부시켰다.”고 할 만큼 어머니들은 정구지 나물 한 점 밥상에 올리지 못한 채 장날이면 잘 다듬은 정구지 나물을 팔아 가계를 일궜다. 한 뼘 크기로 자란 정구지를 베어 밥 위에 수북이 얹고 고추장에 비벼 한 입 가득 씹으면 봄이 통째로 몸속으로 들어오는 듯, 배는 금세 불러진다.
이 땅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들은 이른 봄, 집 곁의 빈터를 일군 손바닥만한 텃밭에서 정구지를 애써 가꿨다. 특히 정구지는 마당 한 켠 돌축 사이를 비집고 파릇한 순을 피워 올리며 봄을 알렸다.
“정구지는 형제간에도 나눠먹지 않는다.”는 속언이 유행할 만큼 귀한 존재이자 봄날, 최고의 나물이었다.
“정구지 팔아서 아들 딸 공부시켰다.”고 할 만큼 어머니들은 정구지 나물 한 점 밥상에 올리지 못한 채 장날이면 잘 다듬은 정구지 나물을 팔아 가계를 일궜다.
한 뼘 크기로 자란 정구지를 베어 밥 위에 수북이 얹고 고추장에 비벼 한 입 가득 씹으면 봄이 통째로 몸속으로 들어오는 듯, 박하사탕을 먹은 듯 입 안이 환해지고 배는 금세 불러온다.
▲ 개두릅
정구지가 한 뼘 이상 자라는 동안 개울가에 심어 놓은 ‘개두릅’이 연록의 속살을 몽실몽실 드러낸다.
개두릅의 본 이름은 '엄나무'다. 예부터 엄나무는 '악귀를 쫒는 나무'로 여겨 우리 선조들은 가시돋친 엄나무 줄기를 잘라 집 헛간 처마 위에 매달아 놓았다.
개두릅 나물은 참두릅 나물과는 달리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쌉쓰레한 향내를 듬뿍 품고 있어, 참두릅보다 훨씬 귀한 나물로 여겼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뿜어내는 기운으로 봄은 화들짝 세상을 깨운다.
- 글쓴이 : 남효선
-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안동대학교 대학원에서 민속학을 공부하였다. 1989년 문학사상의 시 부문에서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하였다. 한국작가회의, 경북작가회의, 안동참꽃문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둘게삼』이 있다. 현재 시민사회신문의 전국본부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