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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커스

  • [정창식_마을이 있는 문경시]생활 문인화
  • 컬처라인(cultureline@naver.com) 2024-02-07

 

 

마을이 있는 풍경

 

 

생활 문인화

 

글 정창식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우리 지역의 여성 문인화가(文人畵家)를 소개받았다. 단아한 모습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몇 번의 만남과 함께 작가의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작가에게 그런 마음을 전했더니 집을 방문해도 좋다고 했다. 작가는 문경문화예술회관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도안(桃岸) 박종순 작가. 작가는 일찍이 서예를 하는 친정아버지와 문인화로 필명을 알린 친정 오빠 밑에서 자연스럽게 문인화를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2010년 한국문화협회 서예 문인화대전 은상을 시작으로 2017년 경상북도 서예대전 문인화 초대작가가 되어 명실상부한 문인화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개인전과 초대전 경력이 적지 않은 중견작가가 되었다. 올해는 대한민국 서예대전에 4회째 입선하고 권위 있는 국내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제가 그리고 있는 그림을 ‘생활 문인화’로 부르고 싶어요.”

 

작가의 안내로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작가의 작업실과 함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작품들 대부분 광목, 무명, 삼베, 모시, 옥사(玉絲), 명주 등과 같은 직물, 우리가 흔히 ‘천’이라고 부르는 소재에 그려져 있었다.

 

 

예로부터 문인화는 옛 선비들이 여가 활용을 위해 그리던 그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직업으로 하는 궁궐의 전문화원이 그리는 그림들과는 구별하였다. 최근에는 직물에 그림을 그리는 ‘천아트’라는 이름의 분야가 일반인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천아트와 문인화는 다르다. 천아트는 생활 속에서 대상들을 찾고 그리는 형식이 다양하지만, 문인화는 옛 선비들이 즐겨 그리는 사군자와 모란 등 일정한 대상과 기법이 전통적으로 한정되어 있다. 작가는 전통적인 문인화를 직물 등과 같은 생활 소재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를 구별하여 “생활 문인화”로 부르는 것이다.

 

 

작가가 즐겨 그리는 그림은 모란이다. 화려한 모습의 모란꽃들이 천 위에서 부귀와 영화로움을 맘껏 뽐내고 있다. 그 모란 그림은 가정과 일반 사무실 등 생활공간에 잘 어울린다. 사실, 작가는 모란을 자신의 그림에서 으뜸으로 여기지만 매화 또한 그에 못지않다. 짙은 묵과 거친 붓으로 한 숨에 그린 듯한 나뭇가지는 무심한 세월을 이겨낸 고매(古梅)를 표현하고 붉은 물감을 찍듯 만개한 꽃은 입춘 무렵의 강한 생명력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었다. 그래서 작가의 매화도는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모란이 광목이나 무명에 어울린다면 매화는 은근한 모시와 옥사에 그릴 때 더 어울린다. 그리고 창가에 걸어둔 매화도에 으스름 달빛이 비치면 옛 문인들의 흥취가 어떤 것인지 조금이라도 알게 되는 즐거움을 얻는다. 작가의 작업 공간을 더 둘러보았다. 매화와 국화가 천 이외에 방석과 기와 등에도 있었다. 그래서 작가가 자신의 그림들을 “생활 문인화”라고 소개하는 이유를 알겠다.

 

 

작가의 그림들은 지역민들로부터 적지 않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렇듯 작가를 알게 된 것도 작가를 사랑하는 주위 사람들 덕분이었다. 작가는 배우기를 좋아한다. 문인화를 처음 접한 것은 친정 오빠였지만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운 것은 지역의 기관에서 운영하는 문화프로그램을 통해서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옛 선비들이 종이 외에 섬유에도 글씨와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그때부터 손수건과 차 도구를 덮는 다포(茶包) 등에 그림을 그려보곤 했다. 그리고 완성된 작품을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했더니 사람들이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생활 문인화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한다. 

 

 

 “제가 좋아서 하는 작업을 하니까 너무 좋아요.”

그 말을 듣고 문득, 공자가 논어에서 제자에게 가르친 말이 떠올랐다.

 “知之者는 不如好之者요. 好之者는 不如樂之者이라.”

배움에 대한 마음가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자의 말이지만 작가의 표현은 이보다 더 완곡하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고 즐기는 자는 미쳐서 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작가는 우리들에게 해야 할 일은 좋아하는 그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을 작가에게 물었다. “법고창신(法古昌新)”이라는 짧은 답이 돌아왔다. 우리의 정신을 담은 새롭고 다양한 작품들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생활 문인화에 오랫동안 천착(穿鑿)하면서 법고창신의 마음으로 작품 활동에 매진하는 작가에게서 우리 지역 문화예술의 미래가 보였다.

 

 

거실에는 안동 하회마을 어느 고택에서 구했다는 오래된 다탁이 놓여있었다. 이 공간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면서 일어섰다. 그리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계단 위 천정에 한지로 만든 등(燈)이 걸려있었다. 노란 국화 그림이었다. 작가의 그림이다. 문득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가 생각났다. 그제야 작가의 모습이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저 시(詩)속의 누님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집을 나왔다. 언덕 위에 문경문화예술회관이 보였다. 문경문화예술회관은 올해 삼십 주년을 맞이했다. 돌이켜보면, 도안 박종순 작가도 이곳에서 삼십여 년을 절차(切磋)하고 탁마(琢磨)해오며 무르익은 문화의 향기를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들은 그저 익은 열매를 감미(感味)하면 될 뿐이다.

 

바람이 불어왔다. 그때 작가가 그려낸 모란과 매화가 떠올랐다. 그리고 봄이 왔으면 했다. 하지만 겨울 초입에 봄을 그리는 지나친 성급함에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글쓴이 : 정창식
▪ 현 문경문화원 이사 ▪ 안동대학교 문화산업전문대학원에서 스토리텔링을 전공하였다. [주간문경]에 문경문화와 관련된 글을 연재하고 있다. 문경의 자연과 마을, 유적과 문화재 그리고 오래된 이야기들을 새롭게 봄으로써 문경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싶어한다. ▪ 저서 수필집 "아름다운 선물 101" (2010) 에세이집 『아름다운 선물 101』 은 우리 인생에서 있어서 스치는 인연들과의 소중한 관계, 베풂의 마음 등 일상에서 느낀 감정들을 엮은 책이다. 수필집 "문경도처유상수" (2016) 주간문경에 2010년부터 연재하고 있는 문경문화와 관련된 글 중 57편을 선별해 책으로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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