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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커스

  • [정창식_마을이 있는 문경시]민화(民畵) 꽃이 피었습니다
  • 컬처라인(cultureline@naver.com) 2023-11-28

 

 

마을이 있는 풍경

 

 

민화(民畵) 꽃이 피었습니다

 

글 정창식, 사진 김우용

   

 

 

모전천 변에 벚꽃이 피었다. 예년보다 일찍 개화한 까닭에 사람들은 미처 준비도 없이 급하게 벚꽃을 즐겨야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늘 벚꽃은 우리에게 마법과 같다. 자연의 갑작스런 변화에서 느끼는 생명의 경외감은 회색빛 겨울에 지쳐가던 우리에게 정말 마술과 같은 일이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을 생기있고 즐겁게 하는 반전(反轉)이기도 하다. 그러한 반전이 모전천 변에서 일어나고 있음은 사뭇 의미 있는 일이다. 모전천(茅田川)의 원래 이름은 반재이 도랑이다. 문경시민들은 언젠가부터 “반재이”, “반재이 도랑”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이 이름의 유래를 조사한 “문경의 옛 모습과 이름”(문경문화원 향토사연구소, 2007년)에서 ‘반전(反轉)이’라는 한문식 이름이 적혀 있다.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 장군이 당교(唐橋) 부근에서 소정방이 이끄는 당나라 군대를 몰살시킨 역사적 배경과 함께, “이러한 당군(唐軍)의 전세를 뒤엎고 전세가 바뀌었다고 하여 반쟁이 또는 반전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한다.”라고 기술하였다. 그렇지만 이곳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도랑에는 물이 불어도 반을 넘지 않았다고 했어요. 비가 많이 와도 반만 채워졌다는 거지요. 그래서 물이 반만 차는 도랑, 반재이 도랑이라고 불렀데요.”

그 지명의 유래에 대한 가부는 차치하더라도 모전천, 반재이 도랑의 벚꽃은 마술이며 반전(反轉)이 분명하다.

 

벚꽃이 피는 모전천을 안은 모전동(茅田洞)에는 또 다른 반전이 있다. 벚꽃 길을 벗어나면 오래된 주택들이 있는데, 골목 안쪽에 석채당(昔彩堂)이라는 이름의 민화(民畵) 연구소가 있다. 석채당이라는 이름에서 옛 그림과 관련되었으리라는 짐작이 들었다. 그랬다. 이곳은 우리 지역에서 유일하게 민화만을 전문으로 작업하는 김연화 작가의 화실 겸 교실이다. 도심의 한가운데에서 전문 작가의 작업실을 찾는다는 것은 조금 낯 설은 일일 수 있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이 뛰어났던 그녀는 문인화(文人畵)부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민화를 접하고부터는 도저히 헤어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민화(民畵)에는 책가도(冊架圖) 뿐만 아니라 신사임당이 그렸던 초충도(草蟲圖), 궁중의 화원이 그린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모란도(牡丹圖) 등 그 범위가 넓어요.”

일반적으로 문인화는 우리에게 “까치와 호랑이”, “문자도(文字圖)”, “어해도(魚蟹圖)” 등의 그림들만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웬만한 작품 한 점이 완성되려면 한 달 이상이 걸리는 경우가 허다해요.”

오방색으로 채색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있었는데 민화를 그리는 작가의 화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모양이다. 먼저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수많은 채색과 덧칠의 반복 그리고 바림의 과정 등이 이어진다고 한다. 이때 화선지가 중요한데, 채색과 바림과정에서 색이 번지거나 종이가 찢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한지에 옻칠을 한 종이가 필요하다고 한다.

*바림 : 색칠을 할 때, 한쪽은 진하게 칠하고 다른 쪽으로 갈수록 점점 엷고 흐리게 칠하는 일

 

 

작가가 창조한 공간을 둘러보았다. 마치 민화 작품을 전시한 갤러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민화와는 다른 모던하면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민화 작품들이 벽을 채우고 있었다. 일월오봉도, 화조도, 책가도, 모란꽃, 어류 등의 고답적인 그림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듯했다. 

 

  “원목에 채색을 했는데 의외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요.”

선반 위에 치우천왕 등의 얼굴 그림들이 그려진 작은 나무들이 가지런하게 얹혀있었다. 그리고 한지에 하나씩 그린 목어(木魚) 형태의 그림들이 벽면에 배열되어 있었다. 작가의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인 듯했다.

 

 

작가의 여러 작품에서 책가도라는 그림이 있다. 책가도는 책과 책거리 등을 그린 그림이다. 책거리는 책과 관련된 기물(器物), 즉 문방사우(文房四友)로 통칭되는 붓과 종이, 벼루, 먹 등에 화병과 도자기 등을 더한 말이다. 이 책가도를 보면 그 구성과 표현에 놀라곤 한다. 옛 그림이지만 현대적인 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책을 넣는 책장의 모습이 이채롭다. 책장을 상하좌우 규칙적으로 만들지 않고 가로세로 불규칙하게 배치하고 있다. 마치 서양회화의 모자이크와 유사한 프레임이다. 그와 같은 배치에서 오는 느낌은 이국적이면서 묘한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책을 쌓는 그림방식도 일반적인 시각의 평면구성을 무시하였다. 평면적, 측면적 시각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식 밖의 구성으로 그려져 있었다.

 

 

  “책을 위에서 그리고 옆에서 또는 정면에서 바라보는 그림이 동시에 표현되어 있어요.”

책가도는 선비의 공부방에 병풍으로 쳐놓거나 벽을 치장하는 그림이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그림을 보며 세상의 현상과 이치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익히려고 노력하였다고 한다. 책가도에는 그런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

 

 

작가는 대한민국기로미술협회, 영남미술대전 초대작가로 민화분야에서는 이미 경지에 올랐다. 수많은 초대전과 개인전을 열어 그 분야의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지금은 지역민들과 외지인들에게 민화 수업을 지도하면서 작품에 몰두하고 있다. 

  

살펴보면, 민화는 한국적인 정서와 미의식이 가장 많이 표현되는 그림이다. 최근에는 민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외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진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와 같은 훌륭한 작가들이 민화에 입문하면서 이 분야의 발전을 견인하고 있다. 

  

 

문화적 토양이 비교적 척박한 우리 지역에서 작가가 새롭게 그려내는 민화는 우리의 미적 소양을 고양시키고, 지역의 문화를 확장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들을 언제든지 관람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데, 마침 올해 전시를 계획 중에 있다고 하니 기대가 정말 크다.

 

 

모전천, 반재이 도랑의 벚꽃이 만개한 봄날, 민화(民畵) 꽃이 이곳 석채당(昔彩堂)에도 가득 피었음이다.

 

 

글쓴이 : 정창식
▪ 현 문경문화원 이사 ▪ 안동대학교 문화산업전문대학원에서 스토리텔링을 전공하였다. [주간문경]에 문경문화와 관련된 글을 연재하고 있다. 문경의 자연과 마을, 유적과 문화재 그리고 오래된 이야기들을 새롭게 봄으로써 문경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싶어한다. ▪ 저서 수필집 "아름다운 선물 101" (2010) 에세이집 『아름다운 선물 101』 은 우리 인생에서 있어서 스치는 인연들과의 소중한 관계, 베풂의 마음 등 일상에서 느낀 감정들을 엮은 책이다. 수필집 "문경도처유상수" (2016) 주간문경에 2010년부터 연재하고 있는 문경문화와 관련된 글 중 57편을 선별해 책으로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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