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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커스

  • [백소애_쑤세미의 골방에서 만화읽기]소중한 일상 소중한 사람들 <은지의 하루만화>
  • 컬처라인(cultureline@naver.com) 2023-06-12

 

 

쑤세미의 골방에서 만화 읽기 

  

소중한 일상 소중한 사람들

<은지의 하루만화>

 

  글 백소애  

 

 

동네마다 심리상담소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이 무겁고 마음이 따뜻한 전문상담가가 상주해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고 슬픈 사연을 들어주는. 

길을 걷다가, 책을 읽다가, 밥을 먹다가, 화장실 앉았다가, 몰려오는 슬픔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이 갑자기 달려가도 충분히 다독여줄 수 있는 그런 공간,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한 동네에 한 명의 오은영 박사가 시급하다. 2014년 4월에도 그랬고, 2022년 10월에도 그런 생각을 한다. 

 

 

느닷없이 와락 몰려오는 슬픔 앞에 우리는 한없이 나약해진다. 이런 무력감을 또다시 느끼고 싶지 않다. 뉴스를 멀리하고, 종잡을 수 없는 알고리즘이 이끈 영상을 본다거나, 음악을 듣거나, 풍경을 보며 일명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무쓸모’ 대화를 나누고 ‘무기력’한 하루를 보내다가 문득 읽게 된 문장 하나.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이쁘다고 칭찬해주자. 매일 수고하는 나에게.”

 

 

 

 

《은지의 하루만화》는 아기자기한 팬시 문구 같기도 하고 도안집 같기도 하다. 글 솜씨가 뛰어나거나 그림 솜씨가 대단한 작품은 아니다. 그저 잔잔한 일상을 다룬 평범하고 짧은 만화일기로,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 간 작가의 일상에 대한 기록이다. 그럼에도 이 작은 책에 마음이 가고 눈이 가는 것은 아름다운 가을날 처연히 떠나버린 젊음에 대한 위무를 동화같이 귀여운 그림과 고요한 언어로 어루만지고 싶어서다. 

 

 

《은지의 하루만화》는 시골의 일상을 담은 만큼 초록빛 색감이 주를 이룬다. 여름 장마와 여름 나무, 테이블 위의 사과와 샐러드, 커피와 고양이, 화분과 책까지, 작가는 “사소해서 안도하게 되는 풍경”들을 그려낸다. 그러고는 집으로 돌아와 가면을 벗고, 그리운 아빠의 일상을 복원하는 상상도 해보고, ‘대단하지 않아도 그냥 좋은 것들을 찾아’ 밤의 드라이브를 떠나기도 한다. 집 근처에 있는 나무에 ‘포포’라는 이름을 붙이고, 실은 그 나무가 사람들 몰래 산책도 하고 책도 읽고 맥주도 마실 거라는 즐거운 상상을 한다. 우리 곁에 가장 익숙한 가족, 동물, 자연과 풍경, 사물 속 그 일상이 주는 평화로움에 대해 그림으로 이야기한다. 

 

 

여름을 스케치하던 그림은 가을로 들어서고 겨울을 맞이한다. 물고기와 새, 고라니가 있는 시골 풍경 속에서 작가는 ‘세상이 변했다지만 변한 건 사람뿐’이라고 말한다. 눈사람을 만들고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눈길을 산책하는 일상 속에서 고양이 별로 떠난 반려묘 시로와의 9년 세월을 추억하기도 한다. 정갈하고 채도 높은 일러스트는 그렇게 내내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고양이와 함께 엎드려 책을 읽고,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차를 마시고, 그러다 아늑한 이불 동굴을 만들어 잠자리에 들게 되는 ‘나의 동굴’을 마지막으로 《은지의 하루만화》는 끝난다. 빠릿빠릿해야 하는 급한 세상에 이다지도 느긋한 만화라니. 일기장을 훔쳐본 듯 책을 덮으면 모든 이의 일상이 새삼 아름다워 보인다. 여백이 있는 그림과 여운이 남는 문장이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이쁘다고 칭찬해주자. 매일 수고하는 나에게.”

  

 

은지의 하루만화, 류은지 지음, 고스트북스, 2020

 

 

글쓴이 : 백소애
강원도 태백 출생. 아이큐는 낮지만 머리가 좋다고 굳게 믿고 있음. 변덕이 심하고 우유부단하나 따뜻한 품성을 지니고 있다. 조카들에게 헌신적이며 인간성 또한 좋다.....고 믿고 있다. 학생 때 교무실에서 밀대자루로 바닥 밀면서 은밀히 훔쳐본 생활기록부에는 ‘예의 바르나 산만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한참을 갸우뚱 하다가 담임이 수학선생님이었기에 그냥 이해하기로 함. 다소 후진 취향을 지니고 있으나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쓸데없는 걱정과 호기심이 많음. 같은 계획을 몇 년째 하고 있으며 역시나 올해도 다이어트와 앞머리 기르기에 도전할 생각이며 과메기에 없어서는 안 될 다시마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 웹툰도 괜찮지만 만화책은 역시 종이책으로 보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아날로그 건어물녀. 좋아하는 것은 무한도전, 오뎅으로 만든 떡볶이, 삼겹살에 매실소주, 비오는 날, 생활의 달인,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괴짜가족 류의 저질유머. 비 오는 날 무한도전 틀어놓고 배 깔고 누워 만화책 보면서 빈둥거리며 사는 것이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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