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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커스

  • [마을이 있는 풍경_문경시]봉황이 날개 짓하는....
  • 컬처라인(cultureline@naver.com) 2023-03-20

 

 

마을이 있는 풍경

 

 

봉황이 날개 짓하는....

 

글 정창식, 사진 김정미 

   

 

봉서(鳳棲)는 분지 형태의 산촌 마을이다. 산 정상 부근 고개 너머에 있는 이 마을을 사람들은 잿봉서라고도 부른다. 산 중턱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길가에는 논과 밭들이 이어져 있다. 산이라는 척박하고 제한된 환경에서 농사지을 땅이 부족했던 사람들은 골골(谷谷)마다 개간을 했다. 지금은 잡목과 풀들로 우거져 있을 뿐이다. 1970년대 만 해도 이 마을에는 사십여 호(戶), 삼백여명이 거주하였고, 산 아래 북쪽에 위치한 굴골 마을은 백오십 여 호, 칠백 여명에 이르는 주민들이 이웃하며 살았지만 지금 이 마을은 십 여 호가 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잿봉서 마을은 그리 간단하게 쇠락의 길을 걷지 않고 있다.

  

 

9세기 경 통일신라시대의 ‘봉서리 삼층석탑’이 마을 언덕 폐사지 터 암반 위에 기도처럼 세워져 있는데.... 그런 기도 때문일까? 오랜 옛날 마을에 살았었다는 봉황(鳳凰)의 전설이 다시 사람들의 마음에 돋아나고 있다. 

 

가을날 봉서마을을 찾았다. 계절을 느끼고 싶은 마음에 아내를 재촉하여 차를 몰았다. 월방산 자락에 있는 봉서마을로 가는 길은 이제 차도가 되어 교통이 원활해졌다. 주변은 나무와 바위로 가득하고 눈을 들면 흰 구름과 푸른 하늘이 보였다. 차창으로 가을이 보였다. 삼층석탑도 그대로였다. 마을을 보호하고 있는 솔숲을 돌아 병암정(屛巖亭)과 봉천사(鳳泉寺)에 들렀다.

  

 

병암정은 18세기 우리지역의 유학자인 부훤당(負暄堂) 김해(金楷, 1633~1761)의 6세손인 병암(屛巖) 김현규(金顯奎, 1765~1842)가 1832년에 지은 정자이다. 그는 병암정기(屛巖亭記)에 이렇게 적었다.

 

“....산봉우리가 우뚝하여 아홉 겹으로 둘러져 세상을 벗어나니 자연이 만든 병풍이다. 그윽하여 성(城)처럼 높지만 드러나지 않고 우뚝한 봉우리들은 서로 손을 잡고 인사하는 모습이다.”

  

 

병암은 정자 뒤의 바위를 일컫는 이름이다. 정자를 감싸고 있는 듯한 바위를 아홉겹 산봉우리로 비유하면서 자연이 만든 병풍이라고 일컬었다. 그리고 그 바위 한 켠에 병암이라고 각자(刻字)하였다.

  

 

지금까지 병암정을 상징하는 것은 정자 앞에 우뚝한 이백년이 훌쩍 넘은 소나무였다. 그리고 그 소나무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은 여름 내내 소나무 곁에서 붉은 꽃을 피운 배롱나무였다. 그런데 가을 날 절 입구에서 바라본 병암정은 더 이상 소나무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었다. 보라색 꽃무리와 회색 변성암 바위가 병암정과 소나무를 더욱 풍요롭게 하고 있었다. 

 

 

보라색 꽃무리! 그랬다. 꽃무리는 개미취라고 부르는 꽃을 말함이다. 그 바위에 올라 꽃무리를 바라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보라색 물결은 이제 이곳을 상징하는 시그니처(Signature)가 되었다. 사실, 이 마을을 들어서는 산중턱에서부터 차량과 사람들이 엄청났다. 여태까지 이곳을 드나들었지만 이렇게 많은 차량과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이곳 지역민들만이 아닌 전국에서 몰려든 방문객들이었다. 모두 개미취 꽃무리를 보러온 행렬이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병암정 옆에 위치한 봉천사 주지인 지정스님의 노력이 적지 않았다. 스님은 이 절에 오기 전 예천 회룡포에 위치한 장안사에 있었다. 그 당시 “회룡포 해맞이”를 지역의 대표행사로 만들어 성공시켰다고 한다. 스님이 이 절에 오면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도 “봉천사 해맞이” 행사였다. 절 마당 바위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고, 이곳의 일출모습을 찍은 사진은 2018년 “문경관광 전국사진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그 때 부터 이곳은 외지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지난 해였다. 그 때도 보라색 물결로 가득한 저 개미취 꽃무리가 절 주변에 가득 펼쳐져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회색의 변성암 큰 바위였다. 개미취 꽃무리가 있는 언덕배기에 어느 날 갑자기 솟아난 듯,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 십여 미터가 넘는 커다란 바위가 나타난 것이다. 어느 날 절의 스님이 칡넝쿨과 잡풀로 우거진 저 언덕을 헤쳤더니 지금의 저 모습이 드러났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이곳의 지역문화를 알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지난 해 부터 이곳에서 “봉천사 개미취 축제”를 열고 있다. 올해는 두 번째 축제가 되는 것이다. 축제 기간 중에 찾아온 저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문득, 이 마을에 오랫동안 살았다는 어느 주민의 말이 떠올랐다.

 “6.25 전쟁 첫 해 여름, 한 달 동안 이곳에 만여 명의 사람들이 피난 왔어요.”

이 마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전화(戰禍)를 피해 귀중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마을 곳곳이 사람들로 가득하였는데, 마실 물과 음식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큰 화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했다.

 

 

그러한 공덕(功德)때문일까? 이 마을에는 오래된 옛집과 흙담들 그리고 마을을 보호하는 소나무들로 도시화와 산업화에 지친 사람들에게 치유(治癒)의 장소가 되고 있다. 더 나아가 이제는 조성된 아름다운 풍광들로 찾아오고 싶은 곳이 되어가고 있다. 이 마을이 쇠락의 길을 걷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오래되어 더욱 새로워졌기 때문은 아닐까? 천여 년의 시간을 지켜온 봉서마을의 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 해가 저물고 있었다. 잊었던 낮달이 산 위에 보였다. 아직도 바위 위에는 젊은이들이 돌아갈 생각도 없이 보라색 꽃무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가을 병암정 앞 수백 년 된 소나무 어딘가에는 그 옛날 마을의 이름(鳳棲)이 된 봉황이 날개 짓을 하며 비상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 언젠가 마을에 산촌의 평화와 도시의 영화(榮華)로움이 공존할 때쯤 봉황은 저 하늘 위로 분명 비상할 것이다.

 

 

 

 

 

 

글쓴이 : 정창식
▪ 현 문경문화원 이사 ▪ 안동대학교 문화산업전문대학원에서 스토리텔링을 전공하였다. [주간문경]에 문경문화와 관련된 글을 연재하고 있다. 문경의 자연과 마을, 유적과 문화재 그리고 오래된 이야기들을 새롭게 봄으로써 문경문화의 가치를 높이고 싶어한다. ▪ 저서 수필집 "아름다운 선물 101" (2010) 에세이집 『아름다운 선물 101』 은 우리 인생에서 있어서 스치는 인연들과의 소중한 관계, 베풂의 마음 등 일상에서 느낀 감정들을 엮은 책이다. 수필집 "문경도처유상수" (2016) 주간문경에 2010년부터 연재하고 있는 문경문화와 관련된 글 중 57편을 선별해 책으로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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