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

문화포커스

  • [울진지방 생활문화]울진사람들은 왜 대구, 새치, 퉁수, 멸치 따위의 생선 ‘김장 속’을 즐겨 만들까
  • 컬처라인(cultureline@naver.com) 2023-02-20

 

동해연안의 생활문화

 

  

울진사람들은 왜 대구, 새치, 퉁수, 멸치 따위의

생선 ‘김장 속’을 즐겨 만들까

 

글. 남효선

 

  

김장철이 돌아왔다. 전통사회에서 김장과 땔감 마련은 서민 가계가 겨울을 나기 위해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주요한 살림살이이다. 주부들은 치솟는 물가고에 김장철을 앞두고 시름이 깊어진다. 김장철을 앞두고 배추, 무 등 김장 필수 채소류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지만 여전히 시름이 가시지 않는다. 김장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채소류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울진지방에서는 김장 속으로 고춧가루, 젓갈 등 기본양념에 생선을 함께 넣어 담그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김장 비용이 곱절 이상 든다. 

 

 

예전,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긴 겨울을 날 김장과 땔감을 장만하는 일은 농어촌 살림살이에서 뺄래야 뺄 수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김장은 이듬해 봄까지 온 식구가 먹어야 할 소중한 먹거리인 까닭에 제 때 김장을 장만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식구들은 끼니때마다 맨 밥으로 겨울을 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일이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농촌의 아낙들은 여름에 옮겨 심은 배추가 속이 제대로 들어차는지, 벌레가 들지 않는지를 살피기 위해 매일 배추밭으로 나갔고, 배추벌레를 일일이 손으로 집어냈다. 식구들의 소중한 밑반찬인 김장거리에 가능한 농약을 덜 뿌리기 위함이었다.

 

11월 중순으로 접어들면 울진지방은 김장 담기로 부산해진다. 김장은 대개 집집마다 날을 잡아 돌아가면서 담갔다. 김장 담그는 일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어서 온 식구가 함께 담그거나 이웃끼리 품을 보탰다. ‘김장 품앗이’인 셈이다.

 

 

 

◆ 울진지방 김장의 두드러진 특징은 ‘생선 김장’

 

울진지방의 겨울나기 대표 음식인 김장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대부분의 가정에서 생선을 넣어 삭히는 이른바 ‘생선 김장’을 담그는 것이다. 동해를 낀 해촌이라는 지리적, 생업적 특성이 음식문화 형성에 강한 영향력을 끼친 셈이다. 울진지방의 대부분 가정에서 김장 속에 생선을 잘게 썰어 넣는 것은 울진지방 음식의 대표적인 특성인 ‘늘려먹기’에서도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농촌과는 달리 해촌에서는 간장이나 고춧가루 등 밭작물로 만드는 다양한 양념류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때문에 바닷가 사람들은 이들 양념류에 대체할 다른 방식으로 맛을 내고 간을 맞추기 위해 생선으로 삭힌 간수나 젓갈 따위를 사용해 왔다. 울진지방의 젓갈류는 대개 죽변항이나 후포항 등 울진 연안의 크고 작은 항포구에서 직접 생산되는 생선류로 장만했다. 꽁치간수, 멸치간수, 메가리간수, 오징어간수가 대표적이다.

 

 

울진지방의 봄철에 성어기를 이루는 꽁치는 ‘보리꽁치’라 하여 살집이 통통하고, 기름기가 자르르 흘러 맛이 좋기로 이름났다. 보리 팰 무렵에 잡히는 꽁치라 하여 보리꽁치라는 이름을 얻었다. 보리 팰 무렵 죽변항은 싱싱한 꽁치를 가득 싣고 만선을 이뤄 항구로 들어오는 꽁치잡이 어선들로 만원을 이룬다. 이 무렵이면 죽변항 어판장에 해촌의 아낙들은 ‘꽁치갈무리’로 새벽부터 해거름까지 하루를 분주하게 보낸다. 꽁치간수는 외지 상인들에게 상품으로 팔지 못한 파지나 상처가 난 꽁치 등으로 담근다.

 

꽁치잡이철이 지나면 메가리잡이철이 이어진다. 메가리(전갱이)는 울진지방에서 젓갈담기용 생선으로 회자될 만큼 젓갈용 생선으로 인식돼 있다. 울진지방 사람들이 김장 속으로 즐겨 사용하는 생선은 대구, 이면수(새치), 퉁수, 횟대기, 물가자미, 멸치 등이다. 이중 퉁수와 대구는 시원한 맛을, 이면수와 횟대기, 물가자미, 멸치는 깊고 구수한 맛을 낸다. 최근에는 시원하고 구수한 맛을 동시에 얻기 위해 퉁수, 이면수 따위를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이 중 횟대기는 살점이 단단하고 기름기가 적어 맛이 졸깃하고 담백해 김장 속을 비롯 식해(食醢) 용으로 선호했다.

 

횟대기

 

최근 죽변항과 후포항에는 ‘횟대기 식해’ 전문 판매점이 다수 들어설 만큼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울진의 대표적 전통음식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식해는 울진지방을 비롯 동해 연안 어촌에서 발달한 염장 발효 음식으로 토막 친 생선에 소금과 무채, 밥을 섞어 발효시킨 음식이다. 김장 속은 미리 장만해 놓은 대구나 새치 등 생선에 다진 마늘, 생강, 대파, 당근, 쪽파, 미나리, 청각, 갓 따위를 넣어 버무린다. 바다 나물인 청각을 반드시 넣는데, 이는 시원한 맛을 내기 위해서다. 양념과 김장속이 마련되면 비로소 김장 담그기에 들어간다. 

 

바닷물에 절인 배추를 큰 함지에 가득 담아 가운데 놓아두고 한 사람은 한 포기씩 꺼내 양념을 바르고, 또 한 사람은 양념을 바른 배추에 김장 속을 골고루 넣어 잘 여며 놓는다. 이 과정이 끝나면 미리 잘 씻어 말려놓은 커다란 단지에 먼저 양념한 무를 깔고 그 위에 양념과 생선을 넣은 속을 적당히 넣은 배추를 포개어 놓는다. 또 그 위에 양념을 한 무를 한줄 깔고, 김장 속을 넣은 배추를 포개어 놓는다. 이윽고 한 단지가 가득 차면 맨 위에 양념과 김장 속을 바르지 않은 절인 배추포기를 포개어 놓는데, 이를 “우거지 넣는다.”고 한다.

 

 

김장 담그기가 끝나면 남정네는 미리 파 놓은 웅덩이에 김장독을 묻는다. 비로소 이듬해 봄철까지 먹을 소중한 김장 담그기가 마무리된다. 김치냉장고가 보편화되면서 ‘김장독파기’ 관행은 거의 사라진 민속이다. 먹을거리가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 많은 식구가 한 지붕 아래서 살던 70년대까지만 해도 보통 집집마다 김장독을 3~4개씩 묻었다. 김장 담그는 날이면 아낙들은 양념과 김장 속을 듬뿍 넣은 겉절이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한잔씩 돌렸다. 으레 김장 담그는 집에서 밥은 물론이고, 살림살이가 넉넉한 집에서는 돼지고기를 삶아 겉절이를 곁들이며 한바탕 잔치를 벌였다.

 

 

 

◆ “김장은 바닷물로 담궈야 제맛이지”...울진지방 ‘바닷물 김장’ 민속

◆ “귀한 소금도 아끼고 배추도 제대로 절이고...”

 

김장을 담그는 날이면 아침부터 마을 아낙들이 삼삼오오 김장하는 집으로 몰려든다. 소금이 흔해진 최근에 들어서야 김장배추는 소금으로 절이지만 불과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동해 연안 농어촌에서는 거의 배추를 이거나 지고 바닷가로 나가서 바닷물에 배추를 절였다.

 

 

“옛날 김장 때, 그때는 바닷물에 가서 배추를 씻어 왔어. 그때는 소금이 귀해서 소금 아낄라고 그랬는 거도 있고, 또 바닷물에 배추로 절이면 맛이 있어. 울진에는 소금 만드는 염전이 여러 군데 있었는데, 살래면 값이 비쌌어. 아침에 큰 다라이에 배추 담아 이고 바닷가로 가서 배추를 씻어. 식구가 많은 집에서는 신랑이 지게에 배추를 짊어지고 가지. 그러면 여자들이 배추를 바닷물에 씻어, 대발에 척척 걸쳐서 물을 찌워. 그래 저녁에 집에 이고 와서 김장을 담가.”

 

평생 갯마을에서 살아 온 전옥희 할머니(89)의 얘기다. 배추를 바닷물에 절여 김장을 담는 일이 요즘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30여 년 전 이 땅의 어머니들은 소금 한 줌이라도 아낄 요량으로 찬 가을바람을 맞으며 바닷가로 나가 배추를 절였다.

 

배추를 바닷물에 절인 것은 소금이 귀하기도 했지만 바닷물에 배추를 직접 절이면 배추 숨이 골고루 죽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바닷물에 절인 배추로 담근 김장 한 포기 한 포기 속에는 이처럼 지독한 가난을 이겨 온 우리 어머니들의 지혜가 듬뿍 배어 있는 셈이다. 바닷물에 배추를 절여 집으로 돌아와 하룻밤을 재우면 소금간이 맞춤하게 들었다.

 

울진지방에서는 지금도 ‘바닷물 김장배추 절이기’ 관행이 전승돼, 죽변항 인근 골장포구 갯바위에는 ‘배추 절이는 장소’가 전해진다. 김장철이 되면 이곳에서는 골장포구 사람들은 물론 인근 주민들의 바닷물에 배추를 절이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글쓴이 : 남효선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안동대학교 대학원에서 민속학을 공부하였다. 1989년 문학사상의 시 부문에서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하였다. 한국작가회의, 경북작가회의, 안동참꽃문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둘게삼』이 있다. 현재 시민사회신문의 전국본부장으로 있다.
목록